3월15일 오후 8시 여의도 KBS 별관 뒤 식당가. 벌써부터 취객 몇몇이 실랑이 중이다. 2차를 가자는 주사파의 강권과 집에 가겠다는 귀가파의 대결이다. 결국 무게중심은 2차 쪽으로 기운다. 낙오자(?) 없이 멤버 전원이 근처 상가지하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슷한 시각, 근처의 또 다른 상가 출입구도 떠들썩하다. 인원점호를 마쳤는지 잠시 뒤 이들 넥타이부대는 택시를 나눠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유명한 유흥가도 아닌 여의도 오피스 주변에서, 더구나 초저녁치고는 좀체 보기 힘든 풍경이다. 기자가 귀가를 서두른 오후 10~11시에는 상가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취객이 쏟아져 나왔다. 열에 아홉은 인근의 룸살롱ㆍ카페나 강남으로 자리를 옮기는 분위기다. 덩달아 택시는 대기시간이 꽤 짧아졌다. 세우기가 무섭게 휑하니 다시 헤드라이트를 밝힌다. 호객꾼도 바쁘기는 마찬가지. 한복을 차려입은 도우미가 음료수와 라이터를 나눠주며 취객을 유혹한다. 평일임에도 불구, 여의도의 밤은 이렇게 취기와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이보다 앞선 오후 7시. 증권맨 사이에서는 비교적 고가로 통하는 M한식당에 들어섰다. 얼추 봐도 좌석만 200여개에 달하는 제법 큰 식당이지만, 빈자리가 별로 없다. 예약을 받은 큰 테이블을 빼면 거의 만석이다. 서빙 중인 한 아줌마는 “요즘 들어 부쩍 바빠졌다”며 “손님이 없는 것보다 좋지만 정신이 너무 없다”고 말한다. 손님 중 절대다수는 회사원처럼 보였다. 넥타이에 정장차림의 남녀손님이 대부분이다. 구석자리에서는 회식모임도 벌어졌다. 20~30명이 구호를 외쳐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추가주문이 줄을 잇고 일부에서는 제때 서빙하지 않는다며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동석한 J애널리스트는 “가격이 부담돼 웬만하면 오지 않는 곳인데 이렇게 붐빌 줄은 몰랐다”며 “지난 겨울에 왔을 때와 비교된다”고 전한다. 남자지배인은 장사가 잘돼 좋겠다는 이야기에 “주가상승이 남긴 떡고물 아니겠냐”며 웃어넘긴다. 그는 여의도야말로 시황에 울고 웃는 대표적인 상권이라고 덧붙인다.술자리도 꾸준히 느는 추세다. 고사(枯死)로 표현되던 지난 침체장 때와는 상황이 반전됐다. J애널리스트는 “예전에는 술을 마셔도 여의도 밖까지 일부러 나갔다”며 “괜히 상사 눈에 띄면 손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굳이 흥청망청 술자리를 만들 필요까지 없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피하지도 않는다. 송치호 메리츠증권 홍보팀장은 “지수가 올랐다고 당장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만은 좋아졌다”며 “어떤 이유든 술자리가 느는 건 사실”이라고 전한다. 증권사와 거래 중인 S사 L사장은 “2월부터 저녁접대가 주 1~2회 늘었다”며 “술이라면 몸을 사리던 사람들이 장 분위기가 좋아지니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H증권 사당지점 투자상담사 C씨는 “장 마감 후 친한 고객들과의 술자리가 잦아졌다”며 “생존경쟁 차원에서 고객관리에 열심이다”고 밝힌다. 주말에는 골프접대까지 다시 생겨났다는 전언이다.술집 분위기도 많이 ‘업’(Up)됐다. 손님이 없어 개점폐업인 채 권리금까지 포기하던 1년여 전과는 딴판이다. ‘일찍 안 가면 자리가 없다’는 넋두리까지 되살아났다. 여의도는 원래 독특한 시스템의 카페로 유명하다. 대형 상가건물 지하나 2~3층에 주로 위치한 이들 카페는 중저가지만 말상대를 해주는 아가씨가 있어 샐러리맨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간단하게 한잔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강남권에 밀리고, 침체장에 타격을 받다 보니 카페수가 전성기 때보다 급감했다. M빌딩 2층의 B카페 사장은 “살아남으니 좋은 날이 온다”며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지난해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에 따르면 3~4개월 전만 해도 밤 12시면 대충 문을 닫았었는데, 요즘에는 새벽 2~3시까지 불을 밝힌다. 주가가 오른 날에는 매출이 좀더 낫다고 귀띔한다. 그간 뜸했던 단골 증권맨이 다시 찾기 시작한 것도 연초 이후의 일이다.이뿐만 아니다. 증권가가 밀집한 동여의도 일대에는 새 유흥업소가 속속 개업 중이다. 가령 T빌딩 외벽에는 전에 없던 J안마시술소 간판이 시선을 끈다. 3~4개층을 모두 사용할 만큼 대규모 시설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판단착오였다. 최근 한번 가봤다는 K부장은 “술로 속 버리는 것보다 안마나 받자는 생각에 들어갔다”며 “1차만 하고 갔는데도 카운터 옆 신발장이 절반 이상 차 있었다”고 전한다. 이들 업소의 피크타임이 밤 12시 전후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기다. 10회면 1회 무료쿠폰 등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증권맨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에는 이를 벤치마킹한 경쟁업소까지 가세했다. D증권 홍보팀 관계자는 “점심 때 여의도에는 유흥업소 전단지가 수두룩하다”며 “증권가에 돈냄새가 나긴 나는 모양”이라고 말한다.여의도 인근 상권도 회복되는 추세다. 일례로 여의도발 택시는 사납금 걱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경기침체로 손님 태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다른 지역과는 양상이 다르다. 적당한 시간에 목만 잘 잡아 대기하면 언제든 ‘과수요’다. H운수 K기사는 “그나마 여의도에서는 헛발질할 확률이 낮다”며 “모범(택시)들이 죽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한다. 가령 분당ㆍ성북 등 장거리 한번이면 짭짤한 요금을 받는다. 대리운전도 여의도에서는 전성기를 맞았다. 대리운전 6개월째인 30대 남성은 “우리들 사이에서는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 여의도”라며 본인도 하루저녁에 3번까지 뛴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술집 근처에서 명함을 들고 서성이면 백발백중 대리운전사라는 구별법까지 생겨났다. 불붙은 전광판은 편의점ㆍ노점상에까지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증권맨의 씀씀이가 이들의 매출증가로 이어질 게 뻔해서다.밝아진 분위기는 여의도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증권사 객장이 밀집한 거리라면 으레 비슷한 광경이 벌어진다. 명동 증권빌딩이나 신도시 도심거리가 대표적이다. H증권 명동지점장 K씨는 “예전에는 증권사 직원이 단골고객에게 위로 겸 식사를 샀다면 요즘에는 거꾸로다”며 “최근 단기간에 짭짤하게 재미를 안겨준 인기직원은 모시기도 힘든 귀한 몸이 됐다”고 전한다. 밤 12시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셔터를 내리던 명동 상권도 지수상승을 반기는 분위기다. 술자리 이슈도 단연 주식이다. 거점점포로 최상위 부자고객을 커버하기 위해 꾸려진 일선 PB(Private Banking)점 부근의 상권도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청담ㆍ도곡동 등 증권사 VIP지점이 몰려 있는 지역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최근 들어 증권맨의 출입이 부쩍 잦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증권사 PB인 H씨는 “지수 1000을 뚫으면서 고객과의 만남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요즘 제때 퇴근해 본 적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돋보기 여의도 벚꽃축제축제 일주일에 몇 달치 수입 벌충여의도 상인들 사이에서는 ‘3전4기’의 주가 1000 돌파보다 더 반가운 게 있다. 이른바 ‘벚꽃축제’다. 날씨만 받쳐준다면 어정쩡한 붙박이 증권맨보다 뜨내기 상춘객의 매출기여도가 높다고 봐서다. 그도 그럴게 여의도 벚꽃을 보려는 사람만 매년 200만~300만명에 달한다. 게다가 상춘기간도 짧다. 벚꽃이 피고 지는 단 1~2주에 엄청난 매출이 집중 발생한다. 여의도 편의점들 중 절대다수가 4월 매출에서 선두를 달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인근 식당가도 마찬가지다. 축제기간에는 주ㆍ야간 공백 없이 24시간 풀가동이다. 높은 회전율은 순익증가로 직결된다. 렉싱턴호텔 주변의 H식당 주인 최모씨는 “벚꽃축제를 전후해 매출차이가 적어도 2~3배 난다”며 “짭짤한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H식당은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3~4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더 배치할 계획이다.‘벚꽃축제’를 둘러싼 물밑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올해의 경우 4월5일부터 12일까지로 아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 눈앞에 닥쳐서는 밀린다는 판단에 적극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특히 노점의 경우 자리경쟁이 한층 치열할 전망이다. 윤중로 초입의 붙박이 노점상이라고 밝힌 한 아줌마는 “한철장사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백번 낫다”며 “벌써부터 목 좋은 곳을 잡기 위해 사전답사를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한다. 잘만 하면 4월 한달 벌어 몇 달치를 벌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벚꽃축제의 흡인력은 나날이 거세지는 추세다. 실제로 엄청난 교통정체ㆍ혼란에도 불구, 매년 행사규모는 커진다. 일각에서는 벚꽃축제의 대명사인 진해가 부럽지 않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바꿔 말해 여의도 일대의 몸살이 심할수록 주변상권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