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지원 마감 앞두고 통합논의 급물살, 정부정책 악용도 많아져

지난해 말 충남의 천안공업대학 정문에는 한 장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3년제인 천안공업대학이 4년제 공과대학으로 승인받았음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4년제인 국립공주대와 지난해 말 통합해 숙원인 4년제 승격의 효과를 본 것이다.충남대와 충북대 등 여러 대학이 통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통합이 이뤄져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의 승인까지 얻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단순히 대학이 합쳐 외형만 키운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향상시킨, 진정한 의미의 통폐합이라는 것이 대학측의 설명이다.공과대 정원을 1,193명에서 950명으로 줄인 반면, 교수수는 그대로 유지해 1인당 학생수를 크게 높여 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데다 조직 재정비를 통해 연간 200여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학교측의 한 관계자는 “올해부터 ‘공주대’라는 이름으로 신입생을 유치하고 있는데 등록률이 99.5%(2월22일 기준)에 이를 정도로 호응이 좋다”며 “올 1학기 중에 학교명을 제3의 이름으로 확정,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연합대학 효과 미지수대학 구조개혁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대학교육 시장 변화에 따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한 체형 조절에 나서는 대학이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 방안이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교육부는 2009년까지 국립대학 입학정원의 총 15%에 해당하는 1만2,000명과 사립대학 8만3,000명 등 총 9만5,000명을 감축, 국립대학간 통합 유도, 특성화 강화 등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또 현재 358개 대학 가운데 2009년까지 87개교를 통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도 확보했다. 대학간 통합 지원 자금 400억원, 구조개혁 선도대학 및 전문대학 지원금 400억원 등 올 한해 총 800억원을 집행한다.교육부의 발표에서 주목할 것은 재정 지원기간이다. 오는 5월 말 구조개혁의 실적을 평가한 후 지원대상을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던 충남대-충북대, 경북대-상주대, 부산대-밀양대, 경상대-창원대 등의 통합논의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할 통합이라면 재정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5월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계산이다.지난해 10월 통합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에 합의한 충남대와 충북대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에 발맞춰 진행되던 양교의 통합논의는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따라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2월19일 충북대가 개최한 세미나 자리에서 교육부와 양교의 관계자들이 만나 5월까지 최소한 학칙의 변경만이라도 합의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통합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충남대의 배병선 홍보팀장은 “충북대와 충남대 통합일정이 지연된 것은 충남대의 총장선거 일정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라며 “신임총장 체제가 출발하는 3월부터 양교의 통합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통합 대학은 하나의 캠퍼스로 운영될 것이라며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학교간 통폐합의 부담을 줄이면서 비슷한 효과를 내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전남대, 순천대, 목포대, 목포해양대, 여수대 등 광주 전남지역의 5개 국립대학이 추진하고 있는 ‘연합 대학’이 대표적이다. 경쟁력 있는 학과의 일부 수업을 교류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다. 개념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각 대학들간의 거리가 학과교류를 할 만큼 가깝지 않다는 지역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수가 적은 교수들의 경우 학과 교류를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관측이다.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의 김태경 사무관은 “연합대학의 개념은 모호한 게 사실”이라며 “어쨌든 통폐합은 아니므로 ‘대학 내 구조개혁 선도대학’의 카테고리하에서 재정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사립대 통합 활발하게 전개사립대학에도 통합 바람이 불고 있다. 국립대와 마찬가지로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2002년 같은 재단이던 성심외국어대학을 흡수 통합한 영산대가 대표적인 사례다.이 대학은 양교를 합쳐 4,500여명에 달하던 정원을 2,740명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교원 확보율, 교사 확보율 등이 획기적으로 높아져 교육환경이 향상됐다. 이외에 부산가톨릭대학(99년 지산보건전문대 흡수), 홍익대(2004년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 흡수), 대전 한국정보통신대학(2004년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과 통합) 등이 통합을 완료한 상태다.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사립대학도 여러 곳이다. 고려대가 병설 보건대와 통합을 추진할 방침이고, 삼육대와 삼육의명대, 동명정보대와 동명대, 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 등 같은 재단 내의 대학 통합이 진행 중이며 경원대, 경원전문대, 가천의대, 가천길대학 등 4개 대학의 통합 프로젝트도 논의되고 있다.사립대학간의 통합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지만 이들 대학의 통폐합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대학간의 의견차를 줄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도 지루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같은 재단 내의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이 통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하겠지만 재단이 다른 사립대학간의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제3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교육부 사학지원과의 이상연 사무관은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이 홍익대로 흡수된 사례를 들며 “사립대학의 경우 재단 통합이 먼저 이뤄진 후 학교간 통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학교간 통합에 어려움이 있는 대부분 사립대학들은 학내 구조조정을 통한 위기돌파를 모색하고 있다. 정원 미달률이 높은 학과의 폐지와 유사학과의 통합 등 학과조정, 정원과 교직원 감축 등 인적 구조조정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특히 야간학과가 무더기로 폐지되고 있는 점이 눈에 뛴다. 서울시립대, 국민대, 숭실대 등 서울 소재 대학이 야간학과를 전면 폐지하거나 일부 폐지했고 청주대, 대구 영남대, 부산외국어대 등 지방대들도 앞다퉈 야간학과의 정원을 축소하고 있다. 이는 야간대학 학생의 대부분이던 고졸 직장인의 수가 급격히 준데다 사이버대학 등 대체 교육기관이 생기면서 지원자가 크게 감소한 것이 주요원인으로 지목된다.많은 대학에서 학과 폐과,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확한 현황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례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폐과인지 통폐합인지, 단순히 명칭변경인지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명칭만 바꾸어도 학과 변경으로 기록된다”며 “학칙상으로만 폐과를 한 것인지, 진짜 학과를 없앤 건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김병주 책임연구원은 “대학의 재정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사립대학, 특히 지방 중소 사립대학의 경우 정원 미달은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급박한 현실의 문제”이지만 “정원미달, 학과 개편 등은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비쳐져 지원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대부분 소문내지 않고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대학 구조개혁이 경쟁력과 생존의 조건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악용하는 일부 사립대학이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익을 최우선시하는 일부 재단이 비용 감소라는 이유로 무분별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교수를 감원하는 일은 지방대의 경우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원 미달에 따른 비용감소를 위해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하면서 교수정원까지 줄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방안이 발표되면서 구조조정의 명분을 얻은 사립대학들이 학과 정원이 미달될 경우 해직을 감수한다는 내용의 불법적인 ‘해직 동의서’를 받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심지어 재단측의 지시에 반발하는 교수를 해직하기 위해 해당 학과를 폐지한 후 이름만 바꿔 새로운 학과를 설립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전국교수노동조합의 김제남 사무국장은 “피해 당사자들이 추가적인 불이익을 우려해 숨기고 있음에도 노동조합에 이미 여러 건의 피해 사례가 보고된 상태”라며 “현행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고수되는 한 사립재단의 무분별한 수익 챙기기 현상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