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자가 정원보다 1만여명 적어… 대대적 새판짜기 불가피

새 학기를 코앞에 둔 지난 2월 말. 새내기 맞을 준비로 분주한 대학 캠퍼스의 한쪽에서는 눈물겨운 신입생 유치경쟁이 벌어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의 일부 대학을 제외한 상당수 지방 사립대학들이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한명의 신입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추가모집에 나섰던 것. 신문 등에 광고를 내고 교수와 직원들을 동원해 눈물겨운 호소를 하기도 했다. 특히 동해대, 우석대, 중부대, 경남대 등은 추가모집에서 1,000명 이상을 뽑아야 정원을 채우는 상황이라 더욱 치열한 상황을 연출했다.대학들이 학생을 잡기 위해 내건 구호도 다양했다. 입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대학이 있는가 하면 무료 해외연수를 내세워 학생들을 공략하는 대학도 등장했다. 일부 대학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PDA 등을 지급한다는 약속을 내걸기도 했다. 정원 채우기에 비상이 걸리면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조건들인 셈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조사결과 전국 93개 대학이 2월 말까지 2만8,000여명의 정원부족 인원을 채우기 위해 추가모집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추가모집에서도 상당수 대학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대학들이 이처럼 애걸복걸하며 학생 모시기에 나선 이유는 정원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대학의 주인이자 수요자인 학생이 모자라는 탓이다. 일례로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04학년도의 경우 미충원율(4년제 기준)은 11.7%로 10%를 넘어섰다. 특히 지방대의 경우 18.5%를 기록해 일부 대학은 생존마저 위협받는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아직 공식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2005학년도에는 미충원율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더욱 나빠진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일부 지역의 대학들은 미충원율이 무려 30%를 넘나든다.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된 전남지역 대학을 보면 무려 32.97%나 되고, 전북지역 역시 29.12%를 기록해 자칫 대학들이 이대로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원도(23.9%), 제주도(21.78%), 경북지역(18.90%) 대학들도 사정은 매우 나쁜 편이다. 대학 강의실이 텅텅 비어가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러다가 대학들이 아예 문을 닫는 상황이 곧 생길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이유는 간단하다. 대학들이 모집인원을 늘렸으나 정작 입학자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대학들이 입학인원은 신경 쓰지 않고 무턱대고 덩치를 키우기에 나선 결과다. 정부 역시 대학신설을 대거 허가, 대학 수를 크게 늘리는데 일조했다. 더욱이 해마다 대학진학 의사가 있는 고3학생수나 재수생수가 줄어들고 있는 점도 대학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구체적으로 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수가 2005학년도의 경우 61만146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4학년도보다 6만여명이나 감소한 수치다. 대학가에서는 이런 추세가 당분간 지속돼 대학입시에 큰 변수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에 비해 2005학년도 대학정원(전문대 포함)은 62만940명으로 응시생수보다 1만여명 가량 많다. 입학대상 학생이 모자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응시생이 정원을 가까스로 넘겼으나 올해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구조적으로 대학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원을 채울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대학의 위기는 단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학 내부적으로도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휴학생의 급증이다. 겨우 학생을 뽑아놓아도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 학교재정을 크게 위협한다.특히 지방대는 그야말로 풍전등화를 연상시킬 만큼 위태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대학마다 차이가 적지 않지만 일부 지방 사립대의 휴학률은 45~50%를 오르내린다. 적을 두고 있는 학생의 절반 가량이 학교를 쉬고 있는 것이다. 강의실이 텅텅 비고 일부 과목은 수강생이 없어 폐강되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연출되는 것이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일부 대학은 아예 학생수가 적다는 이유로 특정 학과를 없애 교수들과 큰 마찰을 빚기도 한다.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가운데 휴학생마저 급증하면서 대학 입장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수입이 급격하게 줄면서 학교 운영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펑크난 수입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학교수입의 상당부분을 학생들 등록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학생수의 대폭 감소는 학교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지난해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3학년도 180개 사립대학의 운영수입에서 등록금 의존율은 67.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재단전입금 비율은 9.7%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학교수입에서 3분의 2 이상을 학생들이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등록금 의존도가 80% 이상인 대학도 60개교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대구예술대, 협성대, 대신대, 서원대 등 5개교는 90%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많은 지방대의 재정위기는 또 다른 위기를 낳는다. 재학생 중 상당수가 서울 등지의 대학으로 옮기기 위해 편입에 골몰하는 것이다. 자연 전공공부는 뒷전이고 학교 분위기 역시 썰렁하기 그지없다. 지방대를 다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한 김모씨(23)는 “지방 사립대에 다닐 때 독문학 전공이었지만 전공공부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며 “입학하자마자 편입시험에 대비해 다시 고3으로 돌아가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변 친구들 중 30% 정도는 편입공부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렇다고 대학의 위기가 지방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도 사정은 좀 다르지만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정원을 채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망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현 추세대로라면 서울 소재 대학들도 조만간 정원문제로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일부 대학은 지금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지만 학교 이미지를 고려해 추가모집을 하지 않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특히 지명도가 떨어지는 일부 대학들은 좀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하려는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해마다 편입정원이 6만여명이나 돼 1년에 한번씩 학생들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서울에 있는 일부 대학들도 학생들을 빼앗기는 것으로 분석된다.중상위권 대학들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수가 매년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이제는 외국의 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여건이 넉넉지 않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서울대조차 일부 학과의 경우 대학원 정원이 미달돼 고심하고 있을 정도다.우수한 고교생들이 해외대학으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도 현실이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우수학생이 의과대학 등으로 빠져나갈 뿐만 아니라 일부는 아예 해외대학으로 나가는 상황이라 교수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사립대학들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거창한 마스터플랜을 공개하지만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대학의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구조조정이나 대학혁신을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은 대학을 기업에 빗대 “경영혁신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교육전문가인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도 “지금의 지방대학들을 보고 있노라면 1,100억원을 들인 지방대 육성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며 “더 늦기 전에 정부에서 다각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