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계, 스타모델 모시기… ‘체계적인 지원 필요’ 지적도

2004년 12월18일.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홍콩 몽콕 지역에 있는 국내 저가 화장품업체인 ‘미샤’ 매장은 1,000여명의 젊은이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홍콩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원빈이 직접 미샤 매장을 방문해 팬 사인회를 가졌다.원빈이 찾은 홍콩 미샤 1호점은 일주일전인 12월11일 개점한 매장. 그의 방문으로 ‘미샤’라는 브랜드는 언론과 입소문을 통해 홍콩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미샤를 제조ㆍ판매하는 (주)에이블씨엔씨의 양순호 해외사업본부장은 “아시아지역에서 쇼핑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홍콩에서 빠른 시간 내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며 “예상보다 언론매체의 반응이 뜨거워 놀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국내 제조업체들의 한류마케팅이 뜨거워지고 있다.중국·일본·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가전, 자동차, 화장품 업체 등은 한류스타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브랜드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한류마케팅의 원조로 알려진 LG생활건강의 드봉화장품은 베트남 현지에서 랑콤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로 도약하며 ‘한류’의 힘을 거침없이 보여줬다. 중국에서는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주인공인 ‘안재욱 신드롬’이 불면서 안재욱이 광고모델로 활약한 삼성전자 컴퓨터 모니터가 중국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이처럼 성공사례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화장품업계를 중심으로 가전, 정보통신 등의 기업들이 앞다퉈 한류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어떤 기업들이 움직이나화장품업계의 한류마케팅이 가장 활발하다. 이중 2002년부터 아시아 7개국에 진출한 태평양 ‘라네즈’가 대표적이다. 태평양은 2003년 10월에는 탤런트 이나영이 홍콩과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현지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라네즈 백화점 매장을 방문하는 이벤트를 열며 한류 붐을 일으켰다.지난해 9월부터는 전지현의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홍콩에서 개봉한 뒤 전속모델인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운 TV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며 동남아를 몰아치고 있는 ‘전지현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저가 화장품업체인 더 페이스샵은 지난 연말 홍콩, 대만 등 아시아 4개국에 매장을 열면서 영화배우 권상우를 모델로 영입해 화제를 모았다. 홍콩방송을 통해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방송되면서 현지 업체들이 광고모델로 적극 권상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권상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을 열 때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포스터가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귀띔이다.가전기업들도 한류마케팅에 적극적인 편. 탄탄한 브랜드인지도에다 제품력까지 겸비한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한류열풍으로 날개를 달았다.삼성전자는 ‘삼성시티’로 이름을 붙인 현지화 활동과 ‘디지털 호프’(Digital Hope)라는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를 한류 열풍으로 이어가고 있다.올해 초 아시아권 음악팬들의 최대 축제인 ‘2005 MTV 아시아 어워드’를 공식 후원키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삼성전자는 한류스타를 현지모델로 직접 기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화와 사회공헌활동 등을 통해 한류 붐을 극대화시킨다는 전략이다.LG전자는 중국에서 영화배우 김희선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등 신세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주안점을 뒀다. 지난해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김희선 팬 사인회가 성황을 이루면서 현지 언론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후 LG는 중국 TV와 잡지의 백색가전 광고에도 김희선을 등장시키며 바람몰이 중이다.LG는 또 동남아 지역에서 태권도대회 후원을 통해 기업이미지 제고에 힘쓰고 있다. LG가 처음 베트남 가전시장 1위에 올랐던 2002년은 ‘LG배 국제태권도대회’가 시작된 해였다.LG 관계자는 “한류 열풍을 직접적인 매출증대로 연결하기 위한 방안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정보통신업계도 주고객인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한류스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SK텔레콤은 베트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유리구두>의 여주인공 김현주를 초청해 ‘S-Fone’ 10만 돌파 축하사인회를 가지는 등 ‘김현주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정대현 베트남 지사장은 “2006년까지 100만 가입자를 확보해 베트남에 한류 열풍을 능가하는 ‘한국CDMA 열풍’을 일으킬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중견 휴대전화업체인 VK도 전지현을 모델로 기용해 중국시장을 공략, 짭짤한 효과를 거뒀다.패션업체와 중소기업들도 한류마케팅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다. 지난해 7월 중국 중신그룹 계열사 ‘중신심천공사북경공사’와 조인식을 갖고 중국에 진출한 (주)신원의 여성복 브랜드 ‘씨’(SI)는 탤런트 김태희를 한ㆍ중 양국에서 전속모델로 발탁했다. 신원은 김태희를 모델로 한 지면광고, 프로모션 등 다각적인 마케팅활동에 나섰다.중국에 유니폼을 수출하는 ‘유니세이프’는 고객에게 한국가수 CD,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증정하는 마케팅으로 매출을 크게 늘렸다. 중국 현지 의류생산업체인 ‘담앤담 인터내셔널’은 한류스타가 자사제품을 착용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중국에서 개최하는 패션쇼에 ‘난타’ 공연을 넣어 효과를 거뒀다.이밖에 호텔업계, 여행사 등도 일본에서 불고 있는 ‘욘사마’ 열풍을 이용해 일본에서 대대적인 마케팅활동을 벌이고 있다. ‘욘사마’ 배용준을 광고모델로 활용한 롯데면세점에는 <겨울연가> 관광지를 다녀온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트렌드와 문제점제조업체들은 한류가 현지에서의 영업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협회가 중국·동남아 수출업체 9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6%의 응답자가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스타에 의존하거나 치밀한 활용전략 없이 일회성 이벤트로 한류마케팅에 나선다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실제로 제조업체들의 한류마케팅은 인기 있는 스타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사인회를 열거나 CF로 내보내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스타에 집중된 마케팅은 리스크도 크다. 최근 연예인 X파일 사건과 같이 좋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해당 연예인을 기용한 제품 이미지가 퇴색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한때 아시아시장을 주름잡았다가 한순간에 뒤로 밀린 홍콩 느와르처럼 한류 열풍 또한 거품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일회성이 아닌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한류마케팅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류열풍이 단명할 수 있다는 염려를 갖게 한다. 단순히 스타의 ‘반짝’ 이미지에 기대기보다는 우리나라 전통문화, 음식, 패션, 바둑 등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서 적극 알릴 때 지금의 한류열풍이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스타 연예인을 섭외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이 현지에서 한류를 실감하면서도 제품마케팅과 연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다.이재출 무역연구소 산업연구팀장은 “(중소업체들의 경우) 자금사정상 직접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대면마케팅을 해야 한다”며 “10~20대가 선호하는 품목들의 경우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를 나눠주는 등 실정에 맞는 마케팅기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