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 매칭전략 활용한 투자 활발… 하반기 채권값 오를 여지도 있어

요즘 채권형펀드 투자자는 한마디로 천당에서 지옥을 넘나드는 심정이다. 지난해는 채권형펀드의 ‘전성기’였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채권형펀드는 한해 동안 평균 5.75%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는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는 물론 주식형펀드보다 높은 수익률이었다. 내수침체와 지난해 8월 이후 한국은행의 잇단 콜금리 인하로 채권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채권값은 상승)한 결과였다. 지표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금리는 지난해 초 연 4.8%대에서 연말 3.2%대로 떨어졌다.하지만 새해 들어 상황은 180도 돌변했다. 재경부가 지난해 말 8조원 규모의 1월 국고채 발행계획을 발표한 게 시발점이 됐다. 특히 10년물의 입찰물량이 3조원 이상으로 급증한 게 직격탄이 돼 연초부터 장기채권을 중심으로 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채권시장의 극심한 혼란은 채권형펀드 수익률에 고스란히 악영향을 미쳤다.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연초 채권형펀드에 가입했던 고객들은 1월 한달 동안 평균 0.63%의 손해를 봤다. 연초 1,000만원을 맡겼다면 63만원 정도 손해가 났다는 얘기다. 3개월 수익률도 겨우 0.04%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상태다. 금리가 더 오르면 지난해 10월에 채권형펀드에 가입한 고객마저 원금을 떼일 가능성이 높다.문제는 이처럼 폭등한 채권금리가 앞으로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적어도 현 수준에서 횡보를 할지 아직은 미지수라는 점이다. 새해 들어 백화점 매출과 신용카드 사용액이 증가하는 등 내수경기 회복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윤항진 동원투신운용 투자전략팀장은 “내수경기가 현재 기대처럼 실제로 회복될지 아닐지는 앞으로 나올 경제지표에서 확인될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채권금리는 지난해 말 기록했던 3.2%대가 저점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만일 내수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타게 되면 채권금리는 올 연중 내내 상승 추세를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채권가격이 올해 계속 하락세를 보일 것이란 것과 동의어다. 채권형펀드 역시 지난해만큼의 고수익은 불가능해지게 된다. 실제 많은 채권 펀드매니저들은 “올해 채권형펀드 농사는 이미 망쳐버렸다”고 체념하는 상황이다.이런 상황에서 채권형펀드는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아예 채권형펀드 투자를 기피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자산을 주식형상품 같은 위험자산에만 투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1월 같은 금리급등과 이에 따른 채권투자의 마이너스 수익률은 예외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설사 금리가 올 한해 내내 상향 추세를 그린다 해도, 그 속도가 올해 초처럼 급격하지 않고 완만한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원금과 일정액의 이자는 받을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산의 일정액은 안전자산인 채권(펀드)에 투자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김휘곤 한국펀드평가 평가조사팀장은 “채권형상품 투자에 앞서 다급히 써야 할 돈인지, 여유자금인지를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금성격에 따라 투자전략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단기자금은 채권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초단기상품인 MMF(머니마켓펀드)로 운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MMF는 평상시에는 장부가로 평가된다. 물론 일시적인 금리급등으로 MMF가 편입한 채권가격이 변동, 장부가평가액과 시가평가액이 0.5% 이상 차이가 벌어지면 시가로 전환(수익률 하향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채권금리가 단기간에 3%포인트 더 급등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이런 위험은 없다고 펀드매니저들은 설명하고 있다. 장부가로 평가되면서도 환금성이 뛰어나고, 수익률은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에 맞먹는 MMF만큼 단기자금을 굴리기에 좋은 채권형상품은 없다.장필균 대한투자증권 상품개발팀 차장은 “3개월 가량 여유 있는 자금은 만기가 짧게 남은 채권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채권을 사서 만기까지 보유하면 도중의 금리변동과 상관없이 가입시점의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른바 ‘매칭 전략’이라고 불리는 것이다.실제 최근 금리급등 이후 일부 거액자산가들은 이런 매칭 전략을 적극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분리과세가 적용돼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 제외되는 국민주택채권이 대표적인 투자대상이다. 지난해 말까지 연 3.5%에 불과하던 국민주택채권1종(5년물 기준) 금리는 현재 4.3%대로 치솟았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세금을 떼더라도 연 2.8%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이재순 제로인 비계량평가팀장은 “지금 당장 쓸 필요가 없는 자금은 단기금리 흐름에 연연해하지 말고 만기가 1년 이상인 장기 채권형펀드에 지금 가입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채권형펀드의 수익률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채권보유자가 일정기간마다 받는 이자(쿠폰)가 하나고, 매일 변하는 유통수익률(시장이자율)에 의한 채권가격 평가익이 있다. 이중 채권형펀드 수익률을 좌우하는 것은 쿠폰이자다. 채권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다면 이 쿠폰이자로 원금과 일정액의 수익은 가능하다.권한욱 한국투신운용 채권운용전략팀장은 “아직은 공론화되고 있지 않지만 올 하반기에는 2002년 이후 재정정책과 저금리로 부양된 미국경기가 둔화세로 접어들면서 2006년 이후의 세계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국내 금리도 영향을 받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채권형상품의 매력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권팀장은 “또 올 초 금리급등을 야기한 게 채권공급 증대였다는 것을 뒤집어보면 하반기에는 채권공급이 줄어든다는 얘기”라며 “하반기 수급상황 개선으로 채권이 강세를 띨 공산도 있다”고 덧붙였다.몇몇 펀드매니저들은 요즘 주식형펀드 부문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적립식으로 장기 채권형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지금과 같은 채권 약세장에서 적립식투자를 하면 채권 매입단가를 낮출 수 있다. 금리상승이 더 이어지면 단기적으로 투자손실이 생길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채권금리가 다시 하락할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채권형펀드에 장기투자할 때는 당연히 우량펀드를 골라 가입하는 게 좋다. 사실 우수한 채권형펀드를 고르는 것은 수익률이 천차만별인 주식형펀드만큼 절박한 문제는 아니다. 채권형펀드는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만큼 수익률 편차가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가지 따져볼 사항은 있다. 이재순 팀장은 네 가지 점을 확인한 후 펀드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우선 규모를 봐야 한다. 펀드규모가 적어도 1,000억원은 넘는 게 좋다. 주식형펀드도 그렇지만 채권형펀드도 펀드규모가 클수록 시장충격이 와도 영향을 덜 받는다.다음으로 편입채권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해야 한다. 국고채와 함께 회사채에 분산투자된 펀드가 유리하다. 회사채는 이자수익이 상대적으로 높아 지금처럼 금리상승에 따른 채권가격 하락 손실분을 상쇄시킬 수 있다. 셋째로 연기금, 일반기업 등 기관자금이 없는 펀드가 좋다. 이들 기관은 종종 금리 불안기에 먼저 자금을 빼 상대적으로 정보가 뒤처지는 개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의 펀드성과를 검토하는 게 좋다. 금리하락기는 물론 상승기에도 모두 상위권 수익률을 거둬 안정성이 높은 채권형펀드를 골라야 한다. 이재순 팀장은 “발품을 팔면 변동금리부채권(FRN) 투자나 스왑거래 등을 통해 금리변동에 따른 수익률 변동을 막을 수 있는 채권형펀드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휘곤 팀장은 “사실 채권금리의 향후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단기형인 MMF부터 장기 채권형펀드, 회사채펀드 등 다양한 채권형펀드에 자산을 분산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