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설정액 5년만에 최대치 … 선진국형 투자스타일로 진화

펀드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부동산이나 예금 등에 의존하던 국내투자자들이 펀드에 돈을 밀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시중의 뭉칫돈은 물론 개인투자자들의 쌈짓돈도 펀드로 몰려들고 있다.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펀드설정액은 185조9,070억원으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145조370억원에 그친 2003년에 비해 28.2%나 성장한 수치다.펀드의 규모도 커졌다. 펀드 하나당 평균 운용액이 2003년 211억원에서 286억원으로 35.5%나 불어났다. 이는 전년에 비해 설정액은 증가한 반면, 펀드의 수는 6,881개에서 6,500개로 331개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펀드가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것이다.최근 들어 펀드에 돈이 몰리는 현상은 당연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예금에 의존하던 금융재테크가 채권, 투자증권, 주식 등에 골고루 투자하는 선진국형 투자로 진화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펀드규모는 20.1%로 미국(67.4%), 프랑스(58.3%), 캐나다(36.1%)에 비해 매우 적다.선진국이 펀드에 많이 투자하므로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은 물론 성립하지 않는다. 국내투자자들이 펀드로 몰리는 현상은 최근 금융시장의 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금융시장의 변화와 펀드의 궁합이 제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예금금리로는 못살아국내 개인 금융자산가들은 최근까지 주식이나 투자증권 등 위험성 자산보다 예금이나 현금 같은 안전성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경우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현금과 저축은 13.4%에 불과한 반면, 주식과 투자증권은 각 22.7%, 30.8%에 이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현금과 저축의 비중이 무려 60.4%에 달한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싱가포르(24%), 홍콩(44%), 대만(56%) 등 아시아 주요국과 비교해도 국내 금융자산가들의 저축 의존율은 상당히 높다. 수익성보다는 안전을 택한 결과다.안전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예금의 수익성은 나쁘지 않았다. 80년대 초반까지는 정기예금금리가 20%를 오갔고 그후로도 10%대 전후여서 웬만한 펀드수익률에 버금갔다. 딱히 펀드나 투자에 신경 쓸 이유가 없던 셈이다.하지만 예금이 돈을 불려주는 시대는 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시들기 시작했다. 97년 12.6%였던 정기예금금리가 매년 떨어지더니 2001년엔 사상 최초로 5% 이하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대까지 추락했다.3%대 금리는 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에 해당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11월 실질금리는 -0.42%로 나타났다.은행에 돈을 맡겨봐야 이자는커녕 원금보전마저 어려워진 상황이 벌어지자 정기예금 이탈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에만 3조5,000억원이 은행을 떠났고 올 들어서는 1월18일 기준으로 국내은행에서만 1조7,000억원이 빠져나갔다. 보다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은행예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상당액은 펀드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월의 경우 투신사들은 18일까지 5조5,000억원을 신규유치했다.펀드와 예금의 수익성 차이는 간단한 시뮬레이션으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랜드마크투신에 따르면 월 적립금액 50만원으로 1억원을 만드는 기간은 금리 4%의 은행적금을 이용할 경우 13년 2개월이 걸리지만 연간수익률 9%인 펀드에 투자하면 10년 3개월이 걸린다. 무려 2년 11개월이나 펀드가 빠른 것이다.강세를 띠고 있는 주식시장의 흐름도 펀드투자를 유혹하는 주요원인이다. 펀드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활황은 높은 수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주식시장의 활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증권업계는 관측한다. 900대인 종합주가지수가 연내에 1000대를 돌파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주가 추가상승을 기대하는 신규자금의 유입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정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과 함께 코스닥시장이 초유의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관련, 삼성증권은 현재 최저 상태인 금융자산의 주식투자비중(5.6%)이 2000년 이후 평균치인 6.2%로만 상승해도 6조5,000억원이 증시로 추가 유입될 것이며 6.8%에 이르면 약 13조원의 추가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우량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는 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대신증권연구소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업 수익성에 의한 주가 상승 모멘텀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익성이 악화됐던 중견그룹들이 구조조정을 거친 이후 수익성이 개선된 효과가 주식시장에 추가로 반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우량주 위주의 투자효과는 대우증권의 보고서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98년 이후 투자대상별 누적수익률을 따져본 결과 시가총액 상위 5위 기업들의 누적수익률은 398%에 이르렀다. 반면 강남권 아파트는 98%에 불과했다.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이 어떤 재테크보다 효과가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활기를 띠고 있는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방법은 간접투자인 펀드뿐만 아니라 투자종목을 투자자가 직접 선택하는 직접투자도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개인투자자들의 직접주식투자 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전달에 비해 1조7,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간접투자인 펀드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우선 위험관리 측면에서 간접투자는 직접투자보다 유리하다. 개인이 직접투자를 할 경우 자금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분산투자가 여의치 않은 반면, 간접투자는 소액이라도 얼마든지 분산투자를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투자금은 적을지라도 전체 운용액이 크기 때문이다.운용능력과 자산배분 능력 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전문운용사가 투자를 집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간접투자는 주식에 대한 이해가 낮은 초보자도, 여유자금이 많지 않은 소액투자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실제로 대부분의 펀드는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 펀드평가업체인 펀드닥터에 따르면 2004년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은 성장형이 5.36%, 안정형이 4.66%, 안정과 성장 혼합형이 8%로 모두 예금금리를 앞서고 있다. 이중에는 수익률이 30%에 육박하는 상품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잘만 고르면 힘들이지 않고 자산을 불릴 수 있다. 마이너스 수익을 낸 펀드는 극소수에 불과했다.가치투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펀드의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사실 지금까지 주식투자로 이익을 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손해를 보고 주식투자를 포기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박’을 꿈꾸는 단기성 투자에 매몰된 투자성향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환경에서 단기수익은 적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가치투자는 발을 붙일 수 없었다.하지만 최근 투자자들의 성향이 바뀌고 있다. 우량한 회사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편이 이리저리 종목을 갈아타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 예를 들어 90년에 SK텔레콤 주식 1,000만원어치는 2004년 말 기준으로 7억5,000만원에 이른다. 15년 없는 돈 셈치고 기다린 사이에 자산이 75배나 불어난 것이다.장기투자는 급작스러운 위기에도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펀드는 기본적으로 투자실적에 따라 수익금을 배분하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펀드는 안전하지 않다는 오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전체 투자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익률이 높아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주가가 폭락하더라도 폭락 전후의 중간 수준에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 부동산 등에 분산투자를 하는데다 주가에 따라 탄력적으로 투자를 집행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주가지수가 1000에서 500으로 떨어져도 750선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장기투자라는 이유로 외면받던 펀드에 돈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견해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노후대비 최고 비책은 펀드투자펀드는 사상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노령화 추세와도 잘 어울리는 금융상품이다. 노후대비는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장기투자를 할수록 수익률이 높아지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동산에 치중하고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전문가들은 부동산 위주의 자산운용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매매의 활기가 떨어져 부동산 가치는 장기적으로 정체 또는 하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미국의 고령화연구소는 노령화에 따라 향후 30년 이내에 적어도 30%의 부동산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대표적인 노령화 국가인 일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90년대 거품이 빠진 후 부동산가격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물론 불황의 장기화가 큰 이유겠지만 인구의 노령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우리의 경우에도 부동산가격이 예전처럼 폭등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이어가고 있는데다 노령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세차익이나 임대업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감소할 전망이어서 간접투자에 대한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다양한 상품과 편리함도 펀드의 매력이다. 사실 종전까지 펀드는 수만 많을 뿐 천편일률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다는 볼멘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시행되면서 펀드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어 이런 불만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투자대상, 기법, 기간, 투자액 등 얼마든지 투자자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적립식펀드를 비롯해 인덱스펀드, 스타일펀드, 시스템펀드 등 상품유형은 갈수록 다양해질 전망이다. 또한 정기예금처럼 특별한 만기가 없어 언제든지 출금, 다른 펀드로 갈아탈 수 있다는 점도 펀드의 장점으로 꼽힌다.돋보기 국내 간접투자의 역사무늬만 ‘펀드’에서 재테크 첨병으로 발전국내의 간접투자의 역사는 1969년 증권투자신탁업의 제정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상품은 70년 선보인 대한투자증권(옛 한국투자공사)의 ‘안정성장 1월호 주식투자신탁’이었다. 현재까지도 운용되고 있는 이 펀드는 그러나 수탁고가 2,000만원에 불과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초기의 펀드는 투자상품이라는 펀드의 본래 모습과 다소 거리가 먼 양상이었다. 투자상품이라기보다 오히려 예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정부의 지원, 억지로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펀드가 본격적인 투자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의 일이다. 박현주펀드와 바이코리아펀드로 대표되는 뮤추얼펀드가 ‘황금알 낳은 거위’로 각광받았다. 특히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라고 알려진 박현주펀드는 단 3시간 만에 500억원어치가 팔려나갔고 바이코리아펀드는 10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하지만 불타오르던 펀드 열기는 대우사태와 주가급락 등으로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투자금은 종이조각이 돼버렸고 펀드를 마치 예금처럼 생각하던 투자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부실해진 투신사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정상화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투자에 대한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그후 간접투자에 대한 신뢰는 실추된 것이 사실이지만 간접투자시장은 건전성이나 운용기법 등 여러 면에서 꾸준히 발전해왔다. 2000년 이후 적립식펀드, 비과세펀드 등 다양한 유형의 상품이 나오고 있고 대내외적인 금융시장의 환경변화에 따라 간접투자시장은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