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숙박 등 관광인프라 태부족… 기념품상점은 찬바람

오전 10시30분. 남이섬 선착장은 한가해 보였다. 말로만 듣던 외국인 관광객의 홍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런 강가 유원지의 겨울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벌써 다 들어갔죠. 섬 안에 들어가면 관광객이 넘실댈 걸요. 주차장의 버스만 봐도 알 텐데.”남이섬 입구의 한 상인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차장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내려놓은 대형버스만 10여대가 늘어서 있었다. 한창 몰려들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배를 기다리는 20분 동안에도 두세 대의 버스가 더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대략 50여명 정도였다. 그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20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 고재경씨는 “예전에는 50~60대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20대 아가씨에서 중년남성까지 성별과 연령대가 고루 섞여 있다”며 “이해가 안될 정도로 <겨울연가>에 빠진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여행기간 내내 준상과 유진 이야기만 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카메라의 배터리가 방전돼 더 이상 찍지 못할 정도로 촬영을 하거나 마치 잃었던 고향을 찾은 사람처럼 훌쩍이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닭갈비집 하루 종일 만원사례남이섬은 예상대로 북새통이었다. 특히 유진과 준상이 사랑을 키운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을 정도다. 주식회사 남이섬이 지난 1월 공개한 준상과 유진의 실물크기 동상인 ‘연가상’ 앞에는 줄자로 신체 사이즈를 재는 관광객도 있었다. 나카무라 준이치로씨는 “지우히메(최지우)의 사이즈가 전부터 궁금했는데 연인상이 실물 그대로라고 해서 치수를 쟀다”며 “실제로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남이섬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부분 1~2시간 정도에 그친다. 여행일정이 촉박한데다 오래 머무를 만큼 볼거리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년의 일본인 주부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 한 가이드는 “일본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왔다는 것만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겨울연가> 여행은 만족도가 높은 상품이지만 다른 즐길거리가 없어 단순한 여행인 것도 사실”이라며 “보다 다양한 관광상품이 개발돼야 한다”고 아쉬워했다.실제로 기념품을 사거나 여타의 전시물을 둘러보는 외국인 관광객은 매우 적어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남이섬측의 이야기는 달랐다. 주식회사 남이섬의 민경혁 기획사업팀장은 “지난해 <겨울연가> 덕에 외국인 관광객이 240% 정도 증가해 인지도나 재정적인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됐지만 더 이상 <겨울연가>를 내세우지는 않을 방침”이라며 “<겨울연가>는 남이섬의 일부에 불과하며 자연과 문화라는 남이섬 고유의 테마를 강화하는 데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관광객의 발길을 머물게 할 관광상품이 없다는 ‘단순한’ 여행의 한계는 <겨울연가>의 도시 춘천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남이섬을 둘러본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이 점심식사를 해결한다는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부터 그랬다.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닭갈비전문점 ‘명동 1번지’는 점심시간대가 지난 오후 2시에도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이 식당의 오영숙 사장은 “지난해부터 일본인 손님이 갑자기 늘기 시작해 점심시간대에는 항상 만원이고 오후 3~4시까지 쉴 틈이 없다”며 “다른 집에 비해 맵지 않아 일본인의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라고 즐거워했다.같은 골목에는 대만사람들이 잘 가는 식당도 있다. 일본인들보다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대만인들이 찾는 곳은 고추장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요리를 하는 곳이라고 오사장은 전했다.하지만 그게 다였다. 식사를 마친 관광객은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와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바빴다. 춘천시내 쇼핑 일번지임에도 상점을 둘러보는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춘천시가 거리에 조성해 놓은 <겨울연가> 관련 설치물을 촬영하는 축이 몇 보였을 뿐이었다.춘천시내에서 유일하게 정품 한류 연예인 기념품을 취급한다는 드라마의 조성희 사장은 “일단 가게에 들어온 손님은 싸더라도 하나씩은 물건을 구입하지만 내방객이 워낙 적어 장사가 기대에 못미친다”며 “저렴한 비품을 취급하는 노점상이 많은데다 쇼핑할 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썰렁한 ‘준상이네’ 동네<겨울연가> 여행의 필수코스인 ‘준상이네 집’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도청 뒤편에 자리한 준상이네 동네는 한눈에 보기에도 황량했다. 재개발지역에 인접한 까닭에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로맨틱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념품가게와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만이 이곳이 <겨울연가>의 배경임을 알리고 있었다.가장 북적거리는 시간대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가 지났음을 감안해도 관광객수는 기대를 훨씬 밑돌았다. 남이섬을 찾은 관광객 가운데 일부만이 이곳을 찾는다는 게 가이드들의 전언이다.동네에서 기념품가게를 임대하고 있다는 한 주민 역시 “지난해 가을 정점이던 관광객이 차차 줄더니 2~3주 전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며 “그나마 기념품을 사는 관광객은 소수에 불과해 이대로라면 여름이 되기 전에 <겨울연가> 특수가 끝날 것”이라고 낙담했다.관광객이 둘러보는 곳은 두 군데다. 준상이가 뛰어다니던 골목길과 집이 그것. 볼거리가 단순한 만큼 관광객이 머무르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작은 동네의 골목길을 한바퀴 돌고 좁은 준상의 집을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준상의 집조차 들르지 않는 관광객도 상당수였다.겨우 3시가 갓 넘었을 뿐인데 벌써 철수를 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한 상인은 “장사요? 봐서 알 거 아니에요”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한 주민은 “남이섬은 <겨울연가> 효과를 최대한 이용한 반면, 춘천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며 “시와 관광당국이 관광지 개발에 좀더 적극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준상의 집 입장이 유료화된데다 이렇다 할 볼거리도 제공하지 못해 춘천시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는 불만이다.준상이네 집 유료화와 별도로 입장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낯설기 그지없다. 문을 두드리면 허술한 철문이 한 뼘쯤 열리고 한 남자의 손이 표를 받아든 후 겨우 한 사람이 들어올 수 있을 만큼만 문을 연다. 그 사이로 관광객이 입장하면 철문을 신속하게 닫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입장한 관광객에게 준상이네 집이 좋은 기억으로 간직될 리 만무하다. 준상이네 집이 관광코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돈도 돈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겨울연가> 특수가 남긴 상처였다. 전에는 가난해도 정답게 살던 이웃들이 서로 등지고 살게 됐다. 말싸움을 넘어 드잡이를 벌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곳의 또 다른 주민은 “돈 욕심에 마을 인심이 사나워졌다”며 “준상이네 집을 불지르겠다는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도 있어 신변에 불안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또 다른 <겨울연가> 순례지인 춘천고등학교 담장 부근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유진이 준상의 등을 밟고 올라앉은 곳으로 일본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오후 3시40분께 이곳에는 한 사람의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다. 대여섯 명의 기념품 노점상들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한 상인은 “이제 이 장사도 걷어치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념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푸념했다. 관광객이 한창 몰리는 점심시간 전후에도 기념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는 것이다.기자가 도착하고 10분이 지났을 무렵 준상이네 집 근처에서 만났던 일본인 관광객이 도착했다. 모두 20명 남짓이었는데 담장 아래 놓인 의자에 올라서 춘천고 안을 훑어보고는 자리를 떴다. 별 재미가 없다는 눈치였다. 오후 4시.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서울이었다. 춘천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