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산업을 흔히 굴뚝 없는 수출산업으로 부른다. 제조업과 달리 공장이 없으면서도 외화 획득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관광산업의 핵심 인프라가 바로 호텔업이다. 호텔업 중에서도 특급호텔은 재벌그룹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고, 최고를 지향했다. 중급호텔은 사정이 달랐다. 개인사업가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하지만 경영상의 부침이 심했다. 주인이 바뀌거나 도산한 호텔들이 즐비했다. 이러다 보니 자동차전문그룹, 교육전문그룹 같은 호텔전문그룹이 성장하지 못했다.국내 호텔의 역사가 100여년이 지났지만 자수성가한 호텔사업가가 드문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런 면에서 호텔전문기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 인물인 신철호 호텔 아미가 회장, 서정호 앰배서더호텔 그룹 회장, 이일규 호텔 홀리데이인서울 회장,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등은 군계일학에 속한다.신철호 회장은 단독으로, 그것도 체인호텔에 가입하지 않은 채 특1급 호텔을 세웠다. 서정호 회장과 이일규 회장은 한눈팔지 않고 호텔업에 정열을 바쳐 호텔전문그룹을 일궜다. 문회장은 천부적인 감각과 독특한 마케팅으로 신흥강자로 떠오른 인물이다.신철호 호텔 아미가 회장‘1급 관광호텔을 10년 만에 특1급으로’“세계적인 호텔과 겨루기 위해섭니다.”최근 8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철호 호텔 아미가 회장(55)은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이 자신만만함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15년 전 신회장은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우리를 찾는 고객은 호텔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뿐만 아니라 아미가 특유의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기와 예술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듣지 않았다. “객실 200개짜리 1급 호텔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속으로 비아냥댔다.15년이 흐른 지금, 아미가의 변신은 눈부시다. 객실은 430여개로, 직원은 200여명에서 500여명으로 늘었다. 모텔 수준을 갓 벗어난 1급 관광호텔이 특2급을 거쳐 특1급(96년)으로 당당히 승격했다. 그것도 국내에 진출한 세계적인 체인호텔과 일전을 벌이며 거둔 성적이다. 신회장은 한술 더 뜬다.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단다. 외국에도 진출해 체인호텔의 콧대를 꺾겠다고 큰소리친다.호텔경영은 신회장의 어릴 적 꿈이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다니며 호텔리어를 꿈꿨다. 학업(동국대 무역학과 및 연세대 경영학 석사)을 마친 신회장은 가구 및 인테리어사업에 매달렸다. 폼 인테리어 가구공업이라는 회사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부동산임대업과 체육시설업을 주로 하는 일진실업 부사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어릴 적 꿈이 남아 있었다.89년에야 꿈은 이뤄졌다. 규모는 작았지만 지상 11층짜리 호텔을 설립한 것이다.시작은 1급 관광호텔이었지만 신회장은 처음부터 유럽식의 고급호텔을 지향했다. 객실마다 인테리어를 달리하고 욕실의 샴푸와 린스조차 국내 고급고객의 취향에 맞도록 주문제작한 제품을 비치했다.기회가 될 때마다 홀과 로비에는 호화롭고 값비싼 해외 소품들과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지금까지 시가로 15억원이 넘는 400여점의 예술품이 호텔 곳곳에 전시돼 있다.이러자 강남의 부유층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호텔을 자신의 아지트로 여겼다. 레스토랑과 객실 모두 성황을 이뤘다. 신회장은 “연간 가동률이 90%가 넘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 정도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장사가 잘될 때도 레스토랑 문을 닫으면서까지 대규모 리노베이션에 나섰다.이 과정에서 세계적인 체인호텔들이 프랜차이즈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맞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아미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현격한 차별화를 제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신회장은 독자경영을 고수한 이유를 밝혔다. 예를 들어 체인호텔은 브랜드와 네트워크에 장점이 있는 반면, 어느 호텔을 가더라고 비슷비슷한 분위기에 지겨운 느낌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호텔 전체적으로 유로피언 앤티크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꾸며 다른 호텔에서 맛볼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처럼 차별화를 꾀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신회장은 추진력이 강한 반면, 세심하고 정이 많은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은 “일에 관한 한 최고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평했다. 아울러 “직원들의 산악회, 볼링회 등의 소모임에도 자주 참석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다정다감함도 지녔다”고 귀뜀했다. 신회장은 호텔 내 모든 가구와 소품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고를 정도로 미적 감각도 뛰어난 편이다. 객실 침대나 소파는 물론 레스토랑의 접시나 스푼까지도 본인이 해외를 다니면서 직접 결정한다.신회장의 꿈은 아미가를 세계적인 체인호텔로 키우는 것이다. 지속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전세계 어느 호텔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규모와 시설, 맨파워를 갖춘 이상 이제는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뉴욕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세계적인 호텔 아미가를 만들겠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객실 19개를 1334개로 늘렸다’앰배서더호텔그룹은 요즘 중급 호텔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약진하고 있는 기업. 계열 호텔인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과 호텔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등이 투숙률 80~90%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작은 초라했다. 1955년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자리에서 금수장이라는 작은 여관으로 시작했다. 2층 건물에 객실 19개와 양식 레스토랑이 딸린 건물이 고작이었다. 이 건물은 지금의 19층 450실의 대형 특급호텔로 바뀌었다.이뿐만 아니다. 89년 글로벌 호텔체인인 프랑스 아코르그룹과 제휴하며 변신을 거듭했다. 93년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97년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 2003년 호텔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등 설립하는 호텔마다 화제를 불러 모았다.서정호 회장(53)은 92년 금수장 여관을 개업한 선친(고 서현수 창업주)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아 지금의 호텔그룹을 일군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금수장을 드나들던 서회장이 선친의 천석지기 땅을 만석지기로 늘린 셈이다.서회장은 선친으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72년 만 20세가 되던 해부터 호텔에 입사, 객실 및 관리 등 여러 부서에서 호텔 업무를 익혔다. “때로는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밑바닥 업무부터 차근차근 거친 것이 지금의 그룹 경영주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자 밑천이 됐다고 고백한다. 이후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주립대학에서 호텔경영학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85년부터 호텔경영에 본격 참가했다.92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서회장은 호텔 확장에 적극 나섰다. 비즈니스호텔을 지향하며 아코르그룹과 제휴를 맺었다. 아코르그룹은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체인호텔. 럭셔리급의 ‘소피텔’, 비즈니스 클래스의 ‘노보텔’ 등 10여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4,000여개의 체인을 거느리고 있다.서회장은 계열호텔을 늘리는 과정에서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줬다. 다소 외지고 낙후된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금천구 독산동에 특급호텔을 지을 때는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밀어붙였다. 당시 IMF 위기까지 닥쳐 어려운 시기였지만 예상을 뒤엎고 대성공을 거뒀다. 이비스의 경우도 당초 신라호텔이 ‘지오빌’이라는 중저가 호텔 브랜드를 내걸고 신축 중에 포기하자 이 부지를 사들여 호텔을 설립한 것으로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서회장은 결단했고, 지금은 비즈니스호텔 돌풍의 진원지로 떠올랐다.서회장은 프랑스의 세계적 호텔체인인 아코르와의 단단한 파트너십에서 성공비결을 찾았다. 또 영업 전략 측면에서는 특1급에 크게 뒤지지 않는 고급 서비스와 시설을 제공하면서도 합리적인 중저가의 객실료를 적용, 특1급과 특2급 호텔 사이, 관광호텔과 비즈니스호텔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고 자평했다.서회장은 ‘고진감래’라는 말을 좋아한다. 행복은 고난과 역경 뒤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 프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그는 “불가능은 없다”는 신조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서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를 제2도약의 기회로 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앰배서더호텔그룹을 세계적인 호텔전문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국민의 관광욕구와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한 다각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객, 직원, 파트너, 사회 모두로부터 ‘선택받는 앰배서더가 되는 것을 그룹의 비전으로 설정했다”며 “한단계 도약하는 앰배서더의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역설했다.이일규 홀리데이인서울 회장‘60년대 뉴서울에서 홀리데이인서울까지’60년대 초 이일규 호텔 홀리데이인서울 회장(65)은 유명한 승마선수였다. 주로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일본 전국대회를 3연패하며 이름을 날렸다. 비록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64년 도쿄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기록도 있다.그가 호텔업에 뛰어든 것은 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게이오대학 상학부에서 호텔마케팅을 전공한 이회장은 귀국하자마자 당시 국도극장을 운영하던 선친을 졸라 호텔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호텔업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한데다 사업성도 낙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황무지이기에 비즈니스 찬스가 올 것”이라며 주변을 설득했다.지난 69년 처음으로 개관한 호텔이 바로 서울 명동의 뉴서울호텔(현 베스트 웨스턴 뉴서울호텔)이다. 객실이 145개로 당시에는 큰 규모였다. 경쟁호텔로는 반도호텔, 메트로호텔, 사보이호텔, 철도호텔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일본호텔을 눈여겨본 이회장은 시설을 최신식으로 꾸미고 선진적인 회계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호텔경영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이회장은 79년 지금의 홀리데이인서울 자리에 가든 호텔을 세우면서 다시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서울 도심이 아닌 마포라는 지역 여건이 대형호텔업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당시만 해도 마포지역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80년대 초까지 주변에 빌딩이 전혀 없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여의도와 강북을 잇는 지역의 특성상 앞날이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초기에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객실판매의 어려움이 컸다. 궁리 끝에 자신의 일본 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 선루트호텔 등과 제휴를 맺어 관광객을 유치한 것이다.이처럼 일본에서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호텔을 경영했지만 업계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97년 세계적 호텔체인인 홀리데이인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회장은 “자체적인 판촉과 홍보활동만으로는 가든호텔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 한계가 있는데다 서비스, 인테리어 등의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표준화된 서비스를 습득하기 위해서였다”고 당시 배경을 설명했다.이회장은 지금까지 경영상의 어려움을 크게 겪지 않았다. 재무구조가 탄탄해 부채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호텔 이외에 다른 사업에 손을 대는 등의 한눈을 팔지 않았다. 버는 돈은 직원교육과 시설 개보수에 쏟아붓는 등 내실경영에 힘썼다.이회장은 한국관광호텔업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중급호텔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평이다. 한국관광협회 부회장(80~81년), 한국관광호텔업 위원장(85~91년), 한국관광호텔업협회 회장(96~98년) 등 업계 일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요즘도 마찬가지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호텔업계의 허리가 없다”고 우려했다. 최고급의 특급호텔이 아니면 러브호텔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이 가족단위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 없다며 고개를 내젖는다. 더군다나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 숙박시설을 늘리기 위해 나이트클럽이나 파친코 등의 허가를 남발한 것도 건전한 중급호텔의 성장을 가로막았다고 지적했다.이회장은 중급호텔이 경영정상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인화가 필수라는 생각이다. 2001년 전세계에 4,000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는 베스트웨스턴과 함께 체인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 11개 호텔이 체인에 가입했으며 올 연말까지 2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서울 을지로4가 국도극장 자리에 약 30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을 건립할 계획이다. 오는 3월에 공사를 시작해 2007년 봄에 완공할 예정이다.이회장은 최근 호텔경영에 적극 나서지 않는 편이다. 큰 방향만 설정해 주고 나머지는 전문경영인에 맡겨두고 있다. 하지만 “국내 중급호텔의 생존책 모색에는 계속 힘을 쏟을 것”이라며 호텔업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동네 목욕탕에서 4개 특급호텔 키워“동네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호텔업의 꿈을 키웠습니다.”미란다, 라마다서울호텔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업계의 신흥강자로 부상한 문병욱 썬앤문 그룹회장(53). 문회장이 호텔업을 꿈꾼 것은 목욕탕을 운영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사연은 이렇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그는 건설업체에 근무하면서 무역업에 관심을 갖는다. 사업에 필요한 종자돈부터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목욕탕 사업에 뛰어 들었다. 예전에는 목욕탕에서 여관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목욕탕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박업에도 몸을 담게 됐다는 얘기다. 이렇게 시작한 숙박업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장급 여관, 모텔 등으로 차츰 사업을 키워나가더니 결국 오늘의 썬앤문그룹을 일군 것이다.썬앤문의 모태는 91년 개관한 빅토리아호텔. 1급 관광호텔인 빅토리아는 개관 당시만 해도 성공하리라고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주변지역이 워낙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나이트클럽을 장안의 명소로 만들면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관광호텔은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스포츠신문에 과감하게 돌출광고를 내고 유명연예인들도 출연자로 대거 영입했다. 이렇게 되자 강남권에서도 사람들이 찾았다. 그의 예상대로 빅토리아호텔은 ‘장안의 명소’로 떠오르며 서울 강북지역의 대표호텔로 자리매김했다.이후 빅토리아호텔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호텔 미란다(98년), 송도비치호텔(2001년), 라마다서울호텔(구뉴월드 호텔) 등을 인수하며 업계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이 과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결코 의혹을 받을만한 일은 없다”며 고개를 젖는다. 다만 사업을 확대한 것은 “IMF때 좋은 물건들이 저렴하게 매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저는 현금흐름을 중시합니다.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 셈이죠. 그래서 빅토리아호텔이 한창 궤도에 올랐을 때인 90년대 중반에도 투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좋은 물건이 저렴한 가격에 쏟아졌습니다. 좋은 입지조건과 경쟁력을 갖췄지만 관리부재와 영업활동 미진으로 부진을 겪고 있는 호텔이었습니다. 이를 인수한 뒤 대대적인 리노베이션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단기간에 영업을 정상화시켰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익이 늘고 기업가치도 함께 높아지는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호텔인수에는 문회장이 직접 나선다. 현장을 답사할 때는 업장 재배치나 리노베이션 효과, 영업활성화 방안 등을 함께 고민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몇 년 안에 호텔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는 것이다.실제로 문회장의 호텔경영은 독특한 점이 적지 않다. 도어맨이 벨맨의 역할을 수행하고 프런트 직원은 벨맨을 도와주는 등 한명의 직원이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며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도 남다른 점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읽는 상품개발에도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일례로 최근 서울 삼성동 라마다서울호텔이 내놓은 회원제 클럽인 ‘모어클럽’은 흥청거리는 술 문화가 차분하게 바뀌고 있는 데서 착안해 VIP들을 위해 만든 상품이다.문회장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어느 호텔을 경영해도 흑자영업을 할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직원들에게 “잡은 고기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며 “호텔경영의 핵심적인 요소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문회장은 “호텔업의 매력을 “뭔가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맛보는 성취감”에서 찾았다. 그래서인지 “호텔을 살아 있는 유기체”라며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자식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내듯 호텔도 경영자의 관심과 마인드에 따라 그 가치가 180도 달라진다는 것이다.문회장은 향후 그동안의 호텔경영 노하우를 체계화해 호텔매니지먼트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최근 ‘라미드 HM’이라는 매니지먼트회사를 설립했다. 라미드는 앞으로 호텔 경영컨설팅에서 위탁경영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매니지먼트사업을 하게 된다. 문회장은 “썬앤문 계열사가 모두 흑자를 낸 경영노하우를 살려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호텔의 매니지먼트사업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