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 법인화하고 주식회사 교육 참여 길 터…대학벤처 900개 넘어

일본의 도쿄대에는 경영협의회가 있다. 지난해 국립대들이 독립법인화되면서 만들어진 기구다. 재무와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결정기구다. 경영협의회의 외부이사 12명 가운데 5명이 NEC(일본전기) 회장 등 경제인이다. 도쿄대의 한 관계자는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기능은 교육과 연구라고만 생각했던 과거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일본 대학가에 경영마인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엄청난 환경변화로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우선 학생이 갈수록 줄고 있다. 대학입학 연령인 18세 인구는 1992년 250만명이었다. 그러나 매년 줄어 2001년에는 150만명까지 줄었다. 반면 대학ㆍ단기대는 60년 525곳에서 지금은 1,200여곳으로 늘었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부터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이 급증했다. 정원미달 대학이 99년 89곳에서 2002년에는 143개교로 늘었다.우리나라의 전문대에 해당하는 단기대는 사정이 더욱 어렵다. 2002년 전체의 48%인 210곳에서 정원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거의 사립대다. 사립대는 수입의 75% 정도를 납입금에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재정이 악화됐다. 대학 도산 우려가 심각하다. 사정은 더욱 우울하다. 2009년에는 대학ㆍ단기대의 입학정원과 ‘실제 대학진학인구’(18세 인구에서 취업자 등을 뺀 순수 진학인구)가 약 70만명으로 같아질 전망이다.교육을 총괄하는 문부과학성의 정책도 변했다. 과거에는 모든 대학을 고르게 지원해 모두 끌고 간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2001년 이후 경쟁원리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2001년부터는 전체 대학의 5% 정도인 30곳을 집중 육성하는 ‘톱30’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특히 2004년은 일본 대학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국립대학법이 개정돼 국립대학 법인화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89개 국립대 법인들은 자율적으로 교육내용ㆍ수업료 등을 결정하고 수익사업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외부기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결과에 따라 정부지원금은 차등지급된다. 일본 정부는 사립학교법도 개정해 교육ㆍ연구에 이어 산학협동ㆍ사회공헌을 제3의 사명으로 규정했다. 또 전국 모든 대학이 7년에 한번씩 인정평가기관의 평가를 받도록 했다. 대학들은 이와 함께 규제완화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주식회사들의 교육참여다. 전국적인 규모의 대형 사법시험ㆍ회계사 대비 학원기업인 도쿄 리걸마인드학원이 지난해 4월 도쿄에 4년제인 ‘LEC도쿄 리걸마인드대학’을 세운 것이 좋은 예다. 이 대학은 ‘학원+학교’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교육모델을 만들고 있다. 학생들은 1학년 때 전공 구분 없이 교양ㆍ기초과목을 들은 후 2~3학년부터는 회계사ㆍ변리사 등 10개 분야의 자격증 공부를 한다. 졸업하면 학사학위도 받는다. 학생들의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 학교법인은 후쿠오카ㆍ삿포로 등 전국 8개 지역에 캠퍼스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후쿠오카시에는 오는 4월 설립되고, 북규슈시에는 내년에 개교할 전망이다. 이 대학이 성공하자 ‘디지털할리우드대학원대학’과 ‘비즈니스 브렉슬 대학원대학’이 오는 4월 개교 예정으로 문부과학성의 대학설립 인가를 받았다. 모두 정보통신 기업들이 세운다.또 대형학원인 ‘와오 코포레이션’은 70여개 애니메이션회사가 있는 도쿄 스기나미구에 만화영화 제작ㆍ기획ㆍ비즈니스 전문가를 양성하는 ‘와오(WAO)대학원대학’을 세우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비영리법인만이 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교육특구제도 덕분에 일부 지역에서는 이같이 영리 학교법인이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이같이 급변하는 외부환경과 정부정책의 변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대학들이 활로를 찾은 것이 ‘경영마인드’였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요코야마 편집위원은 “일본 대학가에는 ‘대중화, 시장화, 글로벌화’라는 3대 변화가 있다. 대학이 지적 공동체에서 지적 경영체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내부역량 높이기=대학의 숨은 힘, 즉 연구기술들을 찾아내 자원화하는 것이다. 대학벤처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8월 말 현재 대학벤처수는 900개를 넘어섰다. 국립대의 75%가 저마다 참가해 설립했다. 경제산업성은 대학벤처 1,000개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해 지원하는 등 열심이다. 대학벤처 1,000개가 생기면 연간 1조8,000억엔의 매출과 14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도쿄대는 지난해 마쓰시타전기 등 15개 기업과 제휴, 대학벤처에 자금ㆍ기술ㆍ회계ㆍ판매를 원스톱 지원하는 컨소시엄을 만드는 등 대학들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 도쿄대 등 수십개 대학에 ‘기술이전센터’(TLO)가 설립돼 있다. 이 센터는 해당대학 교수들의 연구물을 찾아내 특허화한 후 기업에 빌려주는 ‘기술 복덕방’이다. 수익은 센터와 대학, 교수가 나눠 갖는다.◇체질강화=지방자치단체가 대학만 설립하고, 운영은 민간이 맡는 ‘공설민영(公設民營)대학’이 탄생했다. ‘재정은 있지만 관료적이어서 제약이 많은 공립대’와 ‘창의적이지만 재정이 부족한 사립대’의 장점만을 살려 우수한 지역대학을 키우자는 취지다. 공설민영대학은 이런 점을 서로 보완해 경쟁력을 최대화하자는 배경에서 생겨났다. 돗토리현의 환경대 등 7개 대학이 있다. 또 학부조정, 대학통합 등 구조조정도 활발하다. 대학ㆍ단기대를 갖고 있는 법인의 경우 서로 합병하는 일도 잦아졌다. 흡수되는 쪽의 교수ㆍ졸업생들 사이에서는 일부 저항감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도 국립대 개혁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아 아이치현의 3개 현립대학(현립대, 현립예대, 현립간호대)도 통합을 검토 중이다.◇평가문화=경제기관으로부터 재정상태를 평가받는 사립대가 늘고 있다. 기업의 신용평가 등급과 같은 등급을 부여받는 것이다. 오사카의과대는 지난 1월 ‘신용등급투자정보센터’(R&I)로부터 A플러스 등급을 받았다. 이 대학은 이를 활용, 올해 안에 금융기관으로부터 20억엔을 저이자로 빌리고, 3년 후에는 학교채권도 발행할 계획이다.현재 게이오, 와세다, 호세, 니혼 등 15개 사립대가 R&I로부터 등급평가를 받았다. 와세다대의 한 관계자는 “외부기관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스스로의 장단점을 알아 개선하고, 외부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등급 평가가 좋으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등 이점이 많다”고 밝혔다.◇경제계와의 제휴=도쿄대와 같이 많은 대학들이 경제계 인사들의 힘을 빌리는 데 열심이다. 국립대인 히도쓰바시(一橋)대는 경영협의회 위원 12명 가운데 6명이 기업인ㆍ공인회계사다. 교토대는 JR서일본 상담역, 오사카대는 아트코퍼레이션 사장을 경영협의회 임원으로 초빙, 지역경제인들과의 연계를 강화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과의 동침도 불사한다. 히도쓰바시대학은 경영능력이 뛰어난 세키 쇼타로 와세다대 부총장도 위원으로 영입했다. 국립대인 도호쿠대는 사립대인 게이오대 총장을 임원으로 영입했다. 경제인들도 대학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쿄도가 4개 도립대를 통합, 오는 4월 개교하는 ‘수도대학도쿄’의 경우 오쿠다 히로시 니혼게이단렌 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이 후원단체인 ‘도쿄 U(대학)클럽’을 만들어 후방지원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경영에 눈뜬다=교토대는 캠퍼스 내에 본격적인 프랑스요리점을 설치해 인기를 끌고 있다. 교직원, 학생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많이 찾아온다. 교토대 관계자는 “지역과의 연계강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대학이미지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수입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도쿄대는 오는 4월 대학원 교육학연구과에 석ㆍ박사과정의 ‘대학경영, 정책코스’를 개설한다. 학생들과 대학간부, 사무직원들이 배울 예정이다. 나고야대학에도 이런 과정이 있다. 도쿄대의 사토 교육학연구과장은 “대학운영은 단순한 사무처리로 여겨져 왔으나 앞으로는 중요한 경영”이라고 밝혔다.◇새로운 시장개척=와세다대는 지난해 중국 장쑤성의 명문 중고교 병설학교에 ‘와세다 진학반’을 설치했다. 이같이 외국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열심이다. 대학들은 또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입시과목 축소, 인터넷 출원, 1회 수험료로 3회 도전 가능 등 다양한 대입 방법이 도입되고 있다. 직장인, 지역주민 등 새로운 교육수요자를 유치하기 위해 보육원을 설립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대학의 미래=일본 대학미래문제연구회가 2001년 펴낸 책자 <대학 10년 후 대예측>은 대학의 주요한 변화를 이같이 예측하고 있다. △학생수 감소 △규제완화와 정부의 보조금 감소 △살아남는 대학과 망하는 대학으로 이분화됨 △계열화 시대의 도래. 대학간 수평적 제휴, 대학ㆍ단기대ㆍ고교 등의 수직적 연결, 외국대학과의 제휴가 더욱 활성화됨 △대학의 비즈니스모델 경쟁 심화. 교육수요자가 노인, 주부로 확대 △수업료의 가격파괴 현상이 발생 △사회인 학생이 전체의 절반 정도가 됨. 노인과 주부는 주간에, 직장인은 야간에 다니게 됨 △대학관리 기능이 강화됨. 교수 이외 직원들의 비중이 커지고 업무수준 향상이 요구됨. 대학 사무의 아웃소싱이 진행되고, 대학에 BPR(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가 유행함. 교육 이외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이드 비즈니스가 활발해짐 △대학에 대한 평가가 일반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