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 위 걷기·99초 릴레이 등 대표적… 자녀교육으로 애사심 기르기도

“여러분, 왜 99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우선 동료 사이에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면 속도가 빨라지겠죠. 자, 15분간 문제점을 보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지난 1월12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는 제약회사 한국베링거인겔하임과 한국화이자 직원 220명이 모인 가운데 독특한 광경이 펼쳐졌다. 두 회사가 공동 판촉하는 신제품 판매를 앞두고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연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특히 이날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도전! 99초를 잡아라’는 6가지 과제를 99초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이벤트로 TV 오락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총 8개로 나뉜 각팀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거미줄통과’, ‘리모트컨트롤’, ‘공받기’, ‘윗몸일으키기’, ‘백척간두진일보’, ‘무인도’ 등으로 이를 릴레이로 99초 안에 완수해야 한다. 거미줄통과는 방울이 달린 그물 사이로 다른 팀원이 1명을 들어서 통과시키고 윗몸일으키기는 긴 막대를 5명 이상이 잡고 동시에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등 팀원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99초 안에 완수할 수 없는 종목들이다.영업부와 마케팅부 전직원이 참여한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경우 분기별로 각팀의 사업계획과 목표를 제시하는 미팅을 갖는데 이날 프로그램은 분기별 미팅을 겸한 행사였다. 올해는 유례없이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새해를 시작한 셈.“이런 교육 프로그램은 처음”이라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장새롬씨(26)는 “협동심을 온몸으로 배울 수 있어 좋다”며 “평소와는 달리 직급이 높은 상사에게도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행사를 바라보고 있던 미샤엘 리히터 사장은 “이런 트레이닝은 팀워크를 기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면서 “서양에서는 보편화된 방식이라 나 역시 15년 전쯤 이 통통한 몸매로도 이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였다.흔히 ‘이색연수’라고 불리는 기업체의 특별교육과정은 실무적인 지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처럼 인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같은 프로그램으로는 극한체험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2003년 LG씨름단에서 진행한 것이 화제가 됐던 ‘숯불걷기’는 보도 이후 많은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색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숯불 위를 걷는 극한체험이다. 지난 1월11일에는 LG화재가, 1월12일에는 LG전자 직원 일부가 이 행사를 경험했다.KT의 경우 2003년과 2004년 두 해 동안 송판격파, 감자뚫기에다 숯불걷기로 마무리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3~1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총 500명 직원이 참여했다. 김남홍 KT 인력관리실 노사협력팀 과장은 “숯불걷기는 사람을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주는 효과가 있다”며 “직원의 심금을 울리며 교육을 마무리할 수 있어 조직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여론주도층인 젊은 직원 위주로 시행해 전사적인 조직활성화가 이뤄졌다고.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BR코리아는 2001년부터 매년 새해맞이 극기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야간행진을 한 뒤 강릉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고 소망을 적은 풍선을 띄워 올리며 새해 각오를 다졌다.그런가 하면 반대로 정신적인 안정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산업자동화 전문업체 로크웰삼성오토메이션은 ‘유답’(U-DAP)이라는 인성 프로그램을 기업 연수과정 중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유답은 개인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대인관계, 경영목표 달성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됐다고 보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힘과 원하는 것을 이끌어오는 힘을 키워 문제해결 능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여름 전임직원을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직원간 장벽을 없애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초점을 뒀다. 교육을 마친 후 참여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98% 이상이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회사측의 얘기다.이밖에 직원의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마련해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신세계는 지난 1월11~14일 ‘신세계 어린이 생활예절 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 자녀, 점포지원 소년소녀가장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각각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1박2일 프로그램을 두 차례에 걸쳐 시행했다.이 프로그램은 부모의 일터 소개와 가정ㆍ학교ㆍ공공장소에서의 예절교육 등으로 짜여져 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자녀들에게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교육을 통해 자녀는 부모의 일에 높은 자긍심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고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정신교육보다 더 많은 충성심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정밀화학 핵심소재 생산업체 휴켐스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 회사는 매년 세 차례씩 ‘부부동반 노사한마음연수’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서 2박3일 일정의 ‘관광+화합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월24일부터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자녀가 있는 직원을 대상으로 ‘가정가족동반 스키캠프’를 무주리조트에서 2박3일간 열 예정이다.많은 기업이 신입사원 연수과정에 독특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조직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애사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한샘은 지난 연말 신입사원 30여명이 선배사원과 함께 태백산 야간등반을 했다. 대우증권 역시 지난 연말에 신입사원 60명을 대상으로 400리 행군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이 회사 신입사원들은 강원도에서 강추위 속에 하루 40km씩 나흘간 식사ㆍ취침시간을 제외한 하루 12시간 이상을 계속 걸어야 했다. 또 삼성석유화학은 지난해 8월 신입사원에게 울산 본공장에서 서울 태평로까지 1,500km를 도보와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를 이용해 순례하게 했다.HR(인력관리) 포털 인크루트의 최승은 팀장은 “화려한 축하공연 위주였던 신입사원교육이 극기훈련 형식으로 많이 바뀌고 있는 추세”라며 “정신무장을 통해 자사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인재이탈을 막아보자는 게 그 취지”라고 분석했다.INTERVIEW 김형일 CJ(주) 식품사업부문 쌀가공CM 과장1년간 해외연수…60개 도시 돌아봐“단지 견문을 넓히는 차원이 아니라 식품업종에 대한 굉장한 통찰력이 생기더군요.”이색연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고유의 연수’다. 각 회사의 기업철학에 따라 직원교육 방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CJ의 경우 2002년 하반기에 그룹 중점강화 추진전략을 세우면서 글로벌화(Globalization)와 핵심역량 강화 컨셉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했다. ‘신문화특파원’이라는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으로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비해 글로벌 식문화를 알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다. 김형일 CJ(주) 식품사업부문 쌀가공CM 과장(32)은 이 프로그램 실무자로 선발돼 2003년 한 해를 대부분 해외에서 보냈다. 2개월은 해외에서, 1개월은 국내에서 보고서를 쓰며 보냈으며 연구원들이 동행했다. 그는 “지역과 일정은 모두 나 스스로 짜야 했다”며 “따라서 정형화된 교육으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수확이 있었다”고 말했다.“식품을 주제로 하는 것이라면 어느 국가에 가든 어떤 일정을 소화하든 전적으로 제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구 음식문화의 선진국이라 생각되는 서유럽과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남미 등을 위주로 총 11개국 60개 도시를 돌았습니다.”그는 특히 유럽을 돌아보면서 정통과 토착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이탈리아식을 비롯한 서구음식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서로 ‘정통식’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모두 현지 정통식과는 거리가 있더라는 것. 하지만 정통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식문화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물론 프로그램 수행과정에서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 프로그램의 첫 주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에 부담도 느꼈다고. 더욱이 남자연구원이 동행한 관계로 어느 나라에서든 남자 2명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기억에 남는 다른 사내교육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인도에서 단체교육을 받은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 역시 통찰력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여러 나라를 볼 수 있었던 신문화특파원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해외연수는 그 나라를 깊이 볼 수는 있어도 그 분야를 깊이 있게 보는 능력을 길러주지는 못한다는 얘기다.김과장이 그동안 신문화특파원으로서 써온 보고서는 제품화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는 “3월이면 2가지 제품이 먼저 선보이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