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퇴직과 인구감소로 위기감 고조… ‘신일본적 경영’ 모색

“카리스마 경영은 강력ㆍ신속하게 보이지만 이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톱과 그 측근만이 정보를 독점하고, 다른 이는 누구도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인재육성을 게을리 한 결과를 세이부그룹은 톡톡히 치렀다.” (<닛케이비즈니스> 2005년 1월3일호)한때 일본의 ‘No.1’ 땅부자 기업으로 꼽힌 세이부(西武)그룹에 최근 조종이 울렸다. 발단은 일본판 엔론사태로 비유되는 일련의 ‘스캔들’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1월 총무부 차장의 자살에 이어 12월15일에는 결국 지주회사인 고쿠도가 상장폐지됐다. 대주주 지분비율을 40여년간 허위신고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병폐의 원인은 정작 다른 데서 발견된다. 권한ㆍ정보가 없는데다 상사에게 말 걸기 어려운 기업풍토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회사를 지탱할 중간층조차 기능하지 않는 구조적 결함까지 합쳐졌다.<닛케이비즈니스>는 이를 중간층 부재가 부른 비극으로 표현했다. 사실 “수재는 모반을 꾀한다”거나 “장사에는 학문이 필요 없다”는 세이부 오너가문의 인식은 연고자만을 우대ㆍ채용하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충언을 내뱉는 측근이 없는 건 당연한 결과. 세이부의 몰락은 인재양성의 실패에 있었다는 평가는 그래서 일리 있다.일본 열도가 ‘인재대국 재건원년’의 기치를 올렸다.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고 인구까지 줄자 일본재계는 인재경영을 새로운 화두로 삼았다. 여기에는 실적회복을 가져온 감원경영의 부작용이 인재대국 일본을 흔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다. 일본기업이 인재교육에 열심이라는 정설은 이제 낭설에 가깝다는 분석까지 있다. 실제로 인재파워는 심각히 훼손됐다. 경제산업성이 2004년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일본기업은 미국ㆍ유럽기업에 비해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론까지 도출된다. 가령 민간기업의 교육훈련비는 88년을 피크로 계속 감소세다. 88년 노동비용 중 교육훈련비 비중이 0.38%(6,000억엔)였던 게 2002년에는 0.28%(5,000억엔)로 떨어졌다.인재양성 없인 기업 앞날 캄캄이뿐만 아니다. 일본기업을 둘러싼 인재파워의 다운그레이드는 국제비교에서 더 열악하다. 경쟁국과 놓고 보면 인재경영 캐치프레이즈는 단순한 너스레가 아니다. OECD 가입국과 비교한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92년 15위였던 게 2002년에는 18위까지 하락했다. 2002년 5만4,264달러로 추산된 노동생산성은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보다도 낮은 실정이다. 실질노동생산성 상승률은 25위까지 폭락한 상태다. 생산현장에서의 사고와 품질문제가 잇따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인재양성에 대한 투자규모 축소는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다. 20대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일자리 부족이 고착화됐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프리타족의 출현은 당연한 결과다.인재파워의 결정적인 약화는 버블붕괴 후의 구조조정이 계기가 됐다. 90년대 이후 경제위기의 난관타개책으로 인원삭감과 인재교육비 축소 등이 진행됐다. 물론 실적향상이란 적잖은 효과가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언제든 줄일 수 있다’는 경영진의 인재중시 정신의 상실이다. ‘사람을 줄여야 생존한다’는 식의 구조조정 공포심은 사회 전반적인 악순환으로 연결된다.고무적인 건 최근 들어 실패를 거울 삼아 인재양성에 공을 들이는 일본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히타치제작소는 각 계열사의 인재를 상호교류시키면서 경험과 노하우 취득을 배려하고 있다. 가령 자회사 직원이라도 뛰어나다면 본사에 파견시켜 그룹 전체의 전략을 입안하는 인재로 키운다. 현재 20여명이 이렇게 근무 중이다. ‘자회사 → 본사’의 근무지 이동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오사카의 리갈로열호텔은 30세 전후의 젊은 사원들 덕을 톡톡히 봤다. 믿고 맡긴 결과 레스토랑 운영에서 엄청난 실적과 이미지 개선 덕을 봤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에리지온은 신입사원을 연마시켜 회사에 꼭 필요한 정예집단으로 만드는 데 각고의 노력을 들인다. 이 결과 벤처업계에 실력가 조직으로 유명세가 대단하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일본적 경영의 본연이야말로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며 “기업의 힘은 사원 각자가 가진 능력의 합”이라고 전한다. 때문에 감원보다는 고용보장을 통해 능률향상에 매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