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시니어 도약 vs 외국계·여성 주춤… 스카우트 ‘잠잠’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변화는 한마디로 ‘정중동’이다. 겉은 평온해 보여도 속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다. <한경비즈니스>가 매년 상ㆍ하반기 두 번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뽑지만, 그때마다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와 화두는 조금씩 달라진다. 이번에는 보다 구체화된 인수합병과 지속적인 경기침체, 그리고 강화된 업무로드 등이 리서치업계를 지배한 핵심변수로 떠올랐다. 조사결과도 다소 의외다. 2004년 하반기 결과는 ‘대형사ㆍ시니어 도약, 외국계ㆍ여성 주춤’으로 요약된다. 대폭적인 순위변동은 없었지만 세세한 움직임 속에서 향후의 판도변화를 알려줄 힌트를 얻는 건 가능하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리서치업계의 변화조짐을 알아본다.애널리스트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였던 ‘스카우트’는 일단락된 상황이다. 천정부지의 몸값을 야기한 증권가 스카우트 전쟁은 최근 휴전 혹은 종전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허리를 담당할 주니어급 몇몇의 이동이 고작이다. 사실 스카우트 붐은 90년대 후반 바이 코리아 열풍 때 현대가 대우 애널리스트 5명을 단체로 끌어온 게 최초였다. 그러다 2002년 삼성이 리서치센터를 ‘리셔플링’하면서 단체로 스카우트한 게 피크였다. 그후 대형 스카우트 경쟁은 내리막길을 달렸다. 용병으로 길게 버티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게 입증된 결과다. 반대급부로 요즘에는 애널리스트 자체 양성시스템을 강조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한때 ‘사관학교’로 불렸던 대우 리서치센터가 그 선두주자다.애널리스트 사회에서의 ‘빈부격차’는 이제 고질적인 문제로 정착됐다. 이른바 ‘베스트’로 불리는 몇몇을 제외하면 일반 샐러리맨보다 나을 게 별로 없다. 억대 연봉자는 상위 10%도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설상가상으로 연봉이 깎인 애널리스트가 더 많다. “열에 아홉은 동결 혹은 감봉이었다”는 모 애널리스트의 불평은 엄연한 현실이다. 올 봄 연봉계약 시즌이 두려운 이유다. 전에 없이 이면지 재활용까지 강조하는 판에 올해의 연봉상승은 아예 물건너간 분위기다. 물론 일부지만 억대의 웰컴(Welcome) 보너스를 받고 이적한 사람이 있다. 단 이는 예전에 비하면 돈잔치도 아니다. 연봉과 관련된 각종 전제조건을 단 옵션계약서도 지난해부터 유행이다.애널리스트의 몸값은 사실 경기와 동행한다. ‘경기호조 → 실적증가 → 주가상승’에 따라 연봉수혜를 받는 구조다. 때문에 장이 꺾이면 상황은 반전된다. 최근 몇 년이 딱 그렇다. 증권가에 삭풍이 불어닥친 최대 원인은 바로 주가하락이다. 이는 개별업종의 업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지난해 IT업종이 불황에 휘둘리자 관련 애널리스트의 대접은 말이 아니었다.반면 철강ㆍ소재 등 비교적 고군분투한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담당업종을 잘 골라야 롱런한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올해도 먹구름은 여전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를 포함한 초대형 구조조정이 벌써부터 예견돼 있다. 우리ㆍLG와 동원ㆍ한투, 하나ㆍ대투 등 일련의 인수합병은 애널리스트 사회의 단적인 위기감을 보여준다.지수등락의 명운을 갈랐던 외국인 파워였지만, 리서치영역에서만은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증권가 = 외인(外人)천하’의 등식도 리서치부문은 ‘치외법권’ 파트였다. 29개 분야의 각 상위 5위권에 든 외국계 애널리스트는 단 2명에 그쳤다. 철강ㆍ금속의 장영우(4위ㆍUBS)와 투자전략 박천웅(5위ㆍ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다. 직전조사였던 2004년 상반기 때의 4명에서 2명이 탈락했다. 우동제(메릴린치), 김선배(골드만삭스), 임태섭(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연속 5위 진입에 실패했다. 박천웅 애널리스트는 1계단 떨어졌지만, 겨우 체면을 지켰다.외국계 부진은 독특한 인사경쟁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외국계는 철저한 실력중심의 생존논리가 펼쳐진다. 외국계 M증권사 모 상무는 “이들은 시장을 잘못 보거나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다”며 “입사보다 연장계약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잦은 자리교체를 의미한다. 입사한 지 2~3년 만에 짐을 싸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외국계에는 붙박이 장수 애널리스트가 거의 없다. 홍콩 등 아시아 총괄 리서치센터만 해도 명성에 걸맞은 장수 애널리스트가 일부 있지만, 로컬 리서치는 해당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랜드 파워와 별개로 외국계 보고서를 폄하하는 시선도 존재한다.‘세대교체’ 조짐은 올해 다소 심화됐다. 시니어급 절대강자와 주니어급 신진세력간의 기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일부업종에서는 신진스타의 부각이 단연 화제다. 특히 삼성 리서치센터가 조사에서 빠지면서 중소형 증권사의 약진이 돋보였다. 장영수(동부), 조익재(CJ), 정우철(동양) 애널리스트 등이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섰다. 29개 평가부문 중 1위가 바뀐(직전 조사 대비) 11개 업종의 뉴리더는 전임 1위보다 젊고 경력이 짧은 ‘다크호스’로 분류된다.반면 연속 1위를 고수한 18개 부문은 수성에 성공했다. 일부는 2위 그룹과의 점수 격차를 더 벌리며 멀찍이 앞선 상태다. 이들의 경우 당분간 경쟁자가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선이다. 주니어급의 도전은 계속되겠지만 쉽사리 자리를 내줄 만한 대과가 없는 한 간판선수로서 계속 뛸 전망이다.나이로 보면 30대의 공격과 40대의 수성으로 요약된다. 현재 1세대 애널리스트는 대략 40대 중반에 해당한다. 90년대 초ㆍ중반 국내에 리서치부서가 생겨났을 때부터 근무했다면 대략 15년을 롱런한 셈이다. 많지 않지만 업계 추산으로 10명 안팎이 현재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세대로 분류되는 40세 전후의 애널리스트는 최근 뒷심을 내 약진 중이다.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2년간 뒤로 밀렸던 40대 전후 시니어들이 다시 베스트에 복귀하고 있다”며 “30대의 적극적인 시장공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센터장은 그 자신이 1세대 대표 애널리스트다. 40대의 화려한 복귀는 애널리스트의 조로 현상을 막는 데 일조한다. 다년간의 경험 노하우의 사장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직업수명을 늘리는 좋은 징후로 이해된다.최근 리서치업계는 업무로드가 훨씬 세졌다. 과거에 비해 단순업무량 자체가 늘어난데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꽤 심화됐다. 예전에는 매수ㆍ매도 입장만 밝히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지만, 요즘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정작 그 다음부터다. 대표적인 게 ‘톱픽스’(Top Picks)라는 단어의 출현이다. 추천주 중에서도 특히 미는 최선호주를 뜻하는 이 말은 애널리스트에게는 부담 그 자체다. 수많은 종목 중 단 한 개만 골라야 한다면 그만큼 주도면밀한 분석 전망이 불가피하다. 추천주의 추천기간, 목표가격 검증은 물론 예측치와 실제치의 오차를 평가받는 것은 불문가지다. 여기서 낙오하면 생존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몇몇 증권사는 자체적인 다면평가 시스템까지 만들어 높은 예측력을 요구한다.‘팀플레이’(Team Play)는 리서치멤버의 중요한 미덕으로 떠올랐다. 그간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개별능력이 중시되는 전문직 이미지가 강했었다. 협동작업보다 개별탐방 업종보고서를 내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열에 아홉이 팀 위주로 움직인다. 탐방 작업이야 혼자 해도 주요고객인 기관투자가 방문은 거의 단체로 진행한다. K증권사 이사는 “기관 쪽에서 아예 패키지로 팀을 불러 프레젠테이션을 요구한다”며 “어차피 주가도 비슷한 업종끼리 함께 움직이니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당연히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한층 중요해졌다. 반대로 ‘나, 잘났소’식의 독불장군 애널리스트가 설자리는 줄어들고 있다.겸업은 이제 불가피한 트렌드가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전문 특화를 배경으로 한 ‘1인 1업종’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양수겸장’형 멀티플레이어가 많이 늘어났다. 이른바 관련업종의 통폐합이다. 애널리스트 인력풀이 비교적 풍부한 대형사조차 겸업은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령 은행, 보험, 카드를 총괄담당하는 금융애널리스트는 이제 흔하다. 신경제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IT부문의 겸업은 최근 더욱 뚜렷해졌다. 연관분야 2~4개 섹트를 함께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중소형사 중 일부는 한명이 IT업종을 모두 담당하기도 한다. 겸업실험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김영익(대신) 조용준(대우) 박진(LG) 등이 다관왕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제약부문 부동의 간판스타였던 임진균 애널리스트(대우)는 화학업종까지 커버하면서 이 부문 ‘톱1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한때 유행이었던 업계출신 경력자의 애널리스트 변신은 거의 중단됐다. 변신 후 업계에 안착한 선발주자를 빼면 더 이상의 유입은 없어 보인다. 역시 수급이 붕괴된 결과다. 시장이 안 좋으니 신규로 뽑아올 만한 여유가 현재로서는 없다. 또 몸값을 올려받는데 기여한 네트워크 정보축적 등의 장점도 회사견제(정보접근 제한 등)로 약발이 떨어졌다. 때문에 해당업계로 컴백하려는 탈(脫)애널리스트 움직임도 일부 목격된다. 가령 한창 많을 때 반도체업종에만 13~14명의 삼성전자 및 하이닉스 출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몇 명에 불과하다. 다른 섹트도 비슷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잠깐 반짝했지만 결국 거의 도태됐다”며 “전반적인 경쟁력이 떨어져 롱런하기가 힘들다”고 전한다. 트렌드 분석력이 떨어지는 게 이들의 대표적인 한계다.‘아마조네스’ 파워는 약화된 느낌이다. 일부 업종에서는 매번 여성 애널리스트가 단골 1위였는데, 이번에는 두 명뿐이다. 섬유ㆍ피복 송계선(동원)·제지 윤효진(LG) 애널리스트가 1위를 차지했다. 특히 4~5년 전에 비하면 여성파워는 눈에 띄게 급락했다. 당시만 해도 제약, 도소매, IT, 음식료 등에서 여성 애널리스트의 맹활약이 화제가 됐지만, 지금은 손에 꼽을 만큼 그 수가 줄어들었다. 30세를 전후해 결혼, 유학 등을 이유로 업계를 떠난 아마조네스 멤버가 적잖았기 때문. 사실 증권가에서 여성군단의 생존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결혼 등 여성 특유의 라이프스타일도 문제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게 제일 큰 한계로 꼽힌다. K모 리서치센터장은 “입사 후 대리 때까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월등히 능력을 발휘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역대 베스트 명단을 보면 남강여약(男强女弱) 추세는 보다 뚜렷해진다.돋보기 누가 뽑혔나8연패 4명…1위 등극 신인 6명이번 조사에서는 8연패라는 신화를 창조한 애널리스트들이 있다. 2001년 상반기부터 2004년 하반기까지 5년 연속 1위를 고수한 이들은 모두 4명. 이들 4명은 2004년 상반기 조사에서 7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터줏대감 자리를 굳게 지키며 1위를 유지했다.대우증권과 LG투자증권에서 이들 4대 천왕을 각각 2명씩 나눠가졌다. 대우증권에서는 조선ㆍ중공업ㆍ기계의 조용준, 음식료ㆍ담배의 백운목 애널리스트가 간판급 스타. LG투자증권은 건설ㆍ시멘트의 이창근, 증권과 보험ㆍ기타 금융의 조병문 애널리스트가 이번에도 주변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조병문 애널리스트는 증권과 보험ㆍ기타 금융 등 2개 분야에서 연속 8회 1등을 독차지해 2관왕 8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조병문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사에서는 8연패도 기쁘지만 은행 분야의 1위를 탈환, 3관왕에 다시 올라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한편 새로 1위가 된 신인은 6명이었다. 2004년 상반기 새 얼굴이었던 3인방 가운데 통신장비ㆍ단말기의 이승혁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와 채권의 신동준 동부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이번에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신인 6명은 인터넷의 장영수(동부), 소프트웨어ㆍ솔루션의 정우철(동양종금), 제지의 윤효진(LG), 철강ㆍ금속의 양기인(대우), 계량분석의 조익재(CJ), 데일리시황의 김세중(동원)이다. 1위에 처음 올라 신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이들 가운데 신인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 조익재 애널리스트(66년생)는 93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시작해 메리츠증권에 몸담다가 2004년 8월 CJ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스카우트된 거물. 그가 리서치센터장을 맡은 뒤 이번 조사 5위권에는 CJ의 애널리스트가 대폭 늘었다. 장영수 동부증권 애널리스트(70년생)는 96년 동부증권ㆍ제지담당 애널리스트로 출발한 뒤 99년 코스탁팀장을 맡으며 부상해 왔다. 이번 조사에서 처음 5위에 진입한 동시에 인터넷 1위까지 맡았다. 정우철 동양종금 애널리스트(69년생)는 2004년 상반기 소프트웨어ㆍ솔루션 4위에 이어 이번에는 3계단 건너뛰어 1위 상패를 손에 넣었다. 런던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000년 대우증권을 거쳐 2002년부터 동양종금에서 일해왔다. 새 얼굴 중 홍일점이며 전체 베스트 애널리스트 가운데 최연소인 윤효진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76년생)는 사실 일찌감치 언론에 등장했다. 지난 95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지원하며 전체수석으로 입학했던 것. 2003년 하반기 섬유ㆍ피복분야 4위를 하며 5위권에 진입했다. 2004년 상반기에는 제지 4위, 섬유ㆍ피복 3위에 이어 이번에는 제지 1위로 급상승했다. 양기인 대우증권 애널리스트(63년생)는 88년 동방증권(현 SK증권), 2001년 한화증권에 이어 2002년부터 대우증권에서 일하고 있다. 2002년 상반기부터 철강ㆍ금속 3위권에 늘 진입했던 그는 이번에 드디어 1위로 등극했다. 김세중 동원증권 스트래티지스트(67년생)는 94년 동원증권에서 투자분석 애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상반기 5위, 하반기 2위, 2004년 상반기 3위에 이어 이번에 1위를 차지했다.신인 아닌 시니어 초고수 애널리스트가 다른 분야에 눈 돌려 1등을 차지한 경우도 있다. 8연패한 조용준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전공분야인 조선ㆍ중공업ㆍ기계 외에도 자동차ㆍ타이어분야에서 1위를 했다. 김영익 대신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도 거시경제ㆍ금리분야 베스트에 그치지 않고 처음으로 투자전략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며 투자전략 스타로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