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계와 업계에서 최근 10년 동안 가장 괄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가 브랜드관리에 대한 관심이다. 그 전에는 마케팅조차 등한시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케팅 관리와 거의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브랜드관리다.브랜드관리가 마케팅 못지않은 경영 관심사로 떠오르는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가 과거에 브랜드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했다는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지금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제반 중요도에 있어서 브랜드의 정확한 위치 파악이 중시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브랜드는 어디까지나 마케팅 관리의 일환인 만큼 다른 마케팅 요소와 잘 융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고객자산(customer equity)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고객자산이란 재무 분야에서 말하는 현재 가치(net present value)의 개념을 소비자에게 적용한 것인데 자사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모든 소비자의 총체적 현재 가치를 의미한다.장수브랜드 키우기한국에는 장수하는 브랜드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농심 새우깡과 오리온 초코파이 , 그리고 삼성 마이마이와 같은 브랜드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국내 브랜드의 수명은 매우 짧은 편이다. 이처럼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성숙기가 없다는 것은 마케팅 노력과 투자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해석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그렇게 외치면서 정작 브랜드의 주된 장점은 왜 살리지 못하는 것인가?여기에는 여러가지 구조적인 이유와 본의 아닌 묘한 마케팅 역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선 구조적인 문제로 과거 독과점 품목들에 대하여 적용된 가격제한이 큰 몫을 차지하게 된다. 브랜드자산이란 브랜드 육성에 따른 가장 중요한 대가라고 간주될 수 있다. 브랜드자산이 있는 브랜드들은 이를 가격 프리미엄으로 반영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제도적인 장치로 가격이 묶인 브랜드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오히려 무명 혹은 신규 브랜드들에는 가격책정의 자유가 있어 높은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때문에 과거에는 가격 인상제한 문제로 인하여 회사들이 심지어 인기가 많은 브랜드들을 스스로 새로운 브랜드로 잠식(cannibalize)시키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른 구조적인 문제는 브랜드 매니저 제도 혹은 제품 매니저 제도에서의 불충분한 권한 이양 문제다. 국내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두 가지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하지만 외국의 유수 기업들처럼 책임에 따른 전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브랜드를 키우는데 수반되는 다양한 기획을 브랜드 매니저 혹은 제품 매니저가 진두지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아직도 본부장 수준에 마케팅 결정권이 많이 집중되어 있는 한국 기업조직의 현실에서는 진정한 브랜드 키우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마케팅 역학 차원에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마케팅 성과의 측정인데 이른바 브랜드보다는 ‘히트 상품’을 지향하는 마케팅 마인드가 강하다는 점이다.최근 성과급을 이용하는 기업이 많이 늘면서 브랜드의 지속적인 성과보다는 급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마케팅 성과의 목표가 매출액으로 집중되면 마케팅의 수단도 이에 따라 결정되는데 브랜드를 장기적으로 육성시키는 광고보다는 단기에 외형적 성과를 향상시키는 판촉이 더 선호될 수 있다.필자는 대학 연구센터를 통하여 얼마 전 브랜드 컨퍼런스를 하나를 주관하였다. 그 컨퍼런스의 주제는 ‘브랜드 컨버전스’였는데 현재 대두되는 기술융합 이른바 ‘디지털 컨버전스’에 따른 브랜드관리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최근 기업들이 디지털 컨버전스를 구현하기 위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통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와 관련된 주요 현안들의 유연한 통합을 위한 노력들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그러므로 디지털 컨버전스의 구현 못지않게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브랜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브랜드 컨버전스에 대한 관심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브랜드 컨버전스는 다양한 오프라인, 온라인 접점을 통하여 소비자의 마음속에 창조되는 브랜드 연상을 전략적으로 통합. 관리를 의미한다.소비자의 지각은, 통상 기술적인 통합이나 제품의 통합에 의하기보다는 관련 브랜드의 명확한 의미와 일관성에 의해 형성되므로, 상대적으로 브랜드 컨버전스의 달성은 단순한 디지털 컨버전스의 달성보다 어렵다. 브랜드는 흔히 ‘한 상품에 대한 연상의 네트워크’라고 정의되는데 이처럼 상품과 소비자들 사이의 ‘접점’이 디지털 컨버전스로 인해 보다 다양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브랜드들의 통합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소니와 에릭슨의 연합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의 합작은 원래 소니의 전자제품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명성을, 무선 통신 네트워크와 디바이스 제조자, 공급자로서 에릭슨이 쌓아 온 경험, 그리고 명성과 빈틈없이 결합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더욱이 소니와 에릭슨의 co-브랜딩 전략은 소니가 보유하고 있는 게임, 음악, 영화 콘텐츠로부터 광범위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기대가치는 더 높았다.전체적으로 소니와 에릭슨의 결합은 기술적으로나 전략적 이론상으로 손색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소니 에릭슨’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는 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잠재적인 과제를 가질 수 있다.특히 소니 에릭슨이라는 브랜드는 의도했던 바람직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또는 원하지 않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두 브랜드의 디지털 컨버전스는 전체적인 컨버전스 문제에 있어서 한 단면밖에 될 수 없는 것이고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는 브랜드 컨버전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별도의 역량이 도모되어야 한다. 브랜드의 통합에 관한 이슈는 결코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프라인 영역에서조차 회사들이 인수합병을 할 때 비슷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최근 한국에서는, 특히 금융계에서는 대량의 인수합병이 이뤄져 왔고 이러한 브랜드 통합 문제가 크게 대두된 바 있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많은 업종에서 기업과 브랜드 간에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브랜드들의 영역이 합쳐졌다. 이러한 경우 브랜드 관련 대처방법은 합쳐진 상호나 브랜드들의 심벌 마크 만을 바꾸기 일쑤였지만 사실 많은 과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는 제품의 이름에 불과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브랜드가 기업 자산의 주된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브랜드에 대하여 냉정한 마인드를 형성할 시기가 왔다. 브랜드는 마케팅의 전부가 아니고 또한 한번 자산을 잘 구축한다고 해서 효과가 노력 없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많은 기술변화로 인하여 브랜드 영역은 계속 변질되므로 이 점도 브랜드에 많은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근대 브랜드 관리는 예술보다는 하나의 ‘과학’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고 과학인 만큼 여러가지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실증적 검증에 의거하여 브랜드 효과를 최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약력 :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Brand & Business 마케팅연구센터장. 한국마케팅학회 부회장, 마케팅 연구 편집위원장 역임 △저서: <광고론>, <마케팅전략>, <국제마케팅>, <2B Marke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