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물결은 심해 저 깊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다. 또 그러한 변화여야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 유지될 수 있다. 2004년 펀드시장은 이러한 흐름의 초석이 되는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2005년은 그 연장선상에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는 중요한 전환점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은 그 모태를 제공했다. 그간 은행의 신탁업법, 보험의 변액보험, 자산운용회사의 투자회사법, 투신운용회사의 투자신탁업법 등 운용주체별로 나뉘었던 법체계를 하나의 법률인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으로 아우르면서 펀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펀드 전체 수탁고는 11월 말 180원조대에 이르러 99년 260조원대에는 아직 못미치지만 한때 2000년 말 130조원대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그리고 펀드 수탁고의 양적 변화 뒤에는 질적 변화가 있었다. 자산운용업법 시행으로 펀드가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다양해짐으로써 투자자 니즈(Needs)에 맞는 상품들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즉 펀드투자 대상이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유가증권에서 부동산, 금, 원유 등 실물자산 및 또 다른 펀드 등으로 확대됐으며, 수수료 체계도 기존의 단일수수료 체계에서 멀티클래스펀드의 도입으로 투자자의 투자금액, 투자기간 등에 따라 다변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실물투자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동산펀드이다.부동산펀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 속에 2004년 11월 말 현재 5,132억원의 운용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운용 전문인력의 부족, 프로젝트파이낸싱(PFㆍ대출형태) 위주의 제한적 운용방법, 위험관리 체계의 미비 등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펀드를 통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펀드오브펀드(FOFsㆍFund Of Funds)의 성장세도 무시할 수 없다. 펀드오브펀드는 2004년보다 2005년에 중요한 테마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많은 자산운용회사들이 해외펀드를 펀드오브펀드로 구성하기 위한 작업들을 분주히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외국계 자산운용회사들이 국내시장에 직접 진출하면서 경쟁력 있는 자신들의 상품을 국내에 직접판매하는 통로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펀드오브펀드는 소액이거나 해외투자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성격이 다른 여러 펀드를 하나의 펀드를 통해 대신 투자해주는 것을 말한다. 수수료 이중부과와 펀드 모니터링의 어려움 등 문제점이 있으나 이런 문제점이 일반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자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을 상쇄시킬 만한 벽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자산의 덩치는 커지는데 국내자산이라는 작은 옷에 몸을 억지로 맞추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해외네트워크를 갖춘 운용회사나 유수의 외국자산운용회사가 국내에 설립한 자산운용회사들의 시장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은 불을 보듯 분명해 보인다. 그러한 경쟁은 2004년에 점화됐고, 2005년에는 본격적인 시장확대에 나설 것이다.적립식펀드 더욱 확대2004년 펀드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된 것은 적립식투자 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적립식투자는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건전한 ‘투자문화’로 연결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적립식투자는 기본적으로 장기투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펀드투자를 일부 소수투자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투자 대중화의 극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펀드투자가 이미 가진 자들만의 재테크가 아니라 아직 가지지 못한 자들이 부를 쌓아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인식전환이다.채권형이나 MMF 등 안전성 위주의 국내 수탁고 구조가 주식형 등 공격적인 성향의 펀드로 그 중심축이 이동할 것이다. 아무래도 공격적인 성향이 짙은 젊은 투자층이 적립식투자의 주요 고객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적립식의 기간분산에 따른 매입단가 평준화(Dollar-Cost Average) 현상은 주식시장의 투자위험을 줄여주기 때문이다.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국내 펀드 투자문화에 대한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특히 적립식펀드 투자는 2005년 12월부터 시행되는 기업연금 도입을 위한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적립식투자 문화와 기업연금이 융합될 경우 그 폭발력은 비록 2005년 내는 아니더라도 생각했던 것보다 이른 시일 내 커질 것으로 보인다.사실 적립식투자 문화가 자리를 잡는 데는 저금리 기조가 한몫 했다. 기존의 예금금리 수준으로는 예금이 절약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2004년에 배당주 관련 펀드들의 성과가 좋았던 데는 전기전자나, IT업종의 상대적인 열세도 있었지만 저금리 상황에서 배당투자에 대한 메리트가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기도 하다.특히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 확대, 주주중심의 경영감시는 높은 배당수익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비단 올해만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제 배당 및 가치주 투자는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트렌드는 장기투자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투자자에게 있어서도 투자 스타일별로 펀드를 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주식형에 투자하는 금액 중 일정액은 성장주 위주의 펀드에, 나머지 자산은 배당이나 가치주 투자펀드에 분산투자함으로써 주식형 투자에 따르는 전체적인 위험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펀드시장의 환경변화는 자산운용회사 자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현대투신이 미국계 보험회사인 푸르덴셜로 인수된 것을 비롯해 세종투신과 SK투신이 미래에셋에 합병됐으며, 한투와 대투가 가닥을 잡아가고, 외환투신 등도 조만간 옷을 갈아입을 예정이다.이미 수년에 걸쳐 손이 많이 탄 주제라 신선도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자산운용업계 변화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그동안 자산운용회사를 주주지분 기준으로 국내투신과 외국계 투신으로 단순이분화했던 구별은 다소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국내 자산운용회사, 단순 외국지분 참여 자산운용회사(이를 무늬만 외국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외국계 자산운용회사 등으로 말이다. 이들의 경쟁은 2005년도에는 점입가경을 이룰 것이다. 기존에는 밀어내기식 마케팅 역량에 따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면 앞으로는 상품경쟁력이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펀드가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의 대상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자산운용회사의 상품기획력과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투자자의 투자기간이 장기화된다는 것은 자산운용회사들의 투자철학이 펀드에 녹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이제 개별 펀드상품 판매에 앞서 자산운용회사의 투자철학을 팔아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적어도 2006년 이후 본격적인 기업연금시장을 준비하는 2005년, 출정에 앞서 장기전에 돌입할 만한 체력과 인력,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2004년에 자산운용회사간의 합종연횡의 불이 댕겨졌다면 2005년에는 좀더 구체화된 세력판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그리고 그 한가운데 판매사로서 은행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펀드 쪽에서는 후발주자였던 은행이 이제 펀드시장을 선도할 주축세력으로 나설 것이다. 은행의 펀드판매 비중은 괄목할 만하다. 특히 은행의 자금력과 판매망, 인력 등을 감안하면 은행의 펀드판매 성장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 자명하다. 기존의 증권회사가 누려왔던 펀드판매의 독점적 지위는 머지않아 시쳇말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펀드종류 다양화 예상종합자산관리회사로 발전방향을 잡았던 증권회사의 경우 랩어카운트의 사실상 실패에서 보여주듯 만만치 않은 길임이 입증됐다. 특히 몇몇 법인담당 관리자에 의한 법인위주의 다소 손쉽게 접근하려는 펀드판매에 대한 인식은 결국 제 살 깎아 먹는 결과가 된 듯하다.은행 펀드 판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그 대상이 개인투자자라는 점이다. 한투, 대투, 현투(현 푸르덴셜)가 그 모진 풍파의 어려움을 꿋꿋하게 겪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여기에 펀드상품은 물론 예금, 대출, 보험상품까지 종합자산관리를 위한 각 채널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높다.그러나 펀드상품에 대한 이해 및 전문인력의 부족, 체계화된 펀드 판매시스템 부재 등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향후 간접투자시장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앞서 살펴본 것처럼 투자자들은 2005년에는 더욱 다양한 펀드음식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기존의 상품뿐만 아니라 부동산, 펀드오브펀드, 2003년부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ELS펀드, 멀티클래스 펀드에 의한 다양한 수수료체계 등은 투자자들의 목마름을 상당부분 해소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펀드투자에 대한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투자자 스스로 더 많은 발품을 팔지 않고는 입맛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없게 될 것이다.2004년은 새로 제정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라 경쟁의 터가 마련됐다면 2005년에는 그 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더 큰 시장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다양해진 투자자의 욕구를 어느 회사가 더 빨리 이해하고 상품성을 갖추며 장기적으로 자사만의 투자철학을 펀드판매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방향성이 2005년에 가시화될 전망이다.이재순ㆍ(주)제로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