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대내외 외환시장을 읽는 데 있어 가장 중시해야 할 변수는 이미 위험수위가 넘은 세계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어떻게 조정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대표적인 세계경제 불균형 문제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들 수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미국이 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소비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세계경제 불균형을 줄이는 방안으로 미국이 스스로 저축률을 제고시키는 일이다.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를 계속해서 인상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소비의 하방경직성 등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 저축률을 제고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또 금리변화에 따른 총수요 민감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서 금리를 인상한다 하더라도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미국의 자구노력으로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힘들다면 다른 나라로 전가시키는 방안이 예상된다. 시장개방 압력 등 여러 수단이 있으나 미 달러화 가치의 약세를 유도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안이다.미 달러화 가치가 하락되면 경상거래 면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환율경쟁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또 자본거래 면에서 미국의 최대 투자처인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자본손실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이 때문에 미국이 자구노력 없이 쌍둥이 적자를 일방적으로 전가시킬 경우 다른 나라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만약 다른 나라들이 무역장벽 제고, 통화가치 하락, 달러표시 자산매각 등으로 맞대응할 경우 세계경제는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라는 깊은 나락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다행스러운 점은 미 달러화 가치의 지나친 하락은 미국과 다른 나라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 달러화 가치의 과다한 하락은 미국에는 역자산 효과(달러화 가치하락 → 자본이탈 → 주가하락 → 자산소득 감소 → 민간소비 감소 → 성장둔화)를, 다른 나라에는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따라서 앞으로 세계경제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 간의 ‘대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점진적인 금리인상을 통해 저축률을 제고시켜 나가는 동시에 달러화 가치의 약세를 유도하고 다른 나라(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용인해 줌으로써 세계경제의 안정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요즘 들어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1970년대 초 이후 미국과 아시아 국가간에 묵시적으로 유지돼 온 ‘제2브레튼 우즈체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브레튼 우즈체제’란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하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비율을 유지하고 각국의 통화는 기축통화와의 기준환율을 설정, 유지함으로써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다.같은 맥락에서 ‘제2브레튼 우즈체제’란 1970년대 초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닉슨의 금태환 정지선언 이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간의 묵시적인 합의하에 유지해 온 환율제도를 의미한다. 미국이 자국의 절대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이 체제를 유지해 온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숨은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시각차가 있으나 ‘제2브레튼 우즈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그후 ‘제2브레튼 우즈체제’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다.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화 약세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위험수준에 달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은 선진국간의 미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제2브레튼 우즈체제’에 또 한 차례 균열을 보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미 달러화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로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간의 구도가 재현됐다. 특히 중국이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환율을 고정시킴에 따라 ‘제2브레튼 우즈체제는 70년대보다 더 강화된 모습을 띠었다.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올해는 5,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요즘 들어 미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플라자 체제 논의가 다시 일고 있는 것도 앞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러화 약세 폭이 상당수준에 달해야 한다는 시각에서다.그렇다면 ‘제2브레튼 우즈체제’가 붕괴되고 플라자체제가 다시 올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에 플라자체제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명시적인 합의 형태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80년대와 달리 세계 각국간의 경기회복세 차이로 유럽, 일본 등은 더 이상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기는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내용도 많이 변했다. 80년대는 일본과의 무역불균형이 심해 플라자합의도 엔화를 중심으로 한 미 달러화 약세 유도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의 약 40% 정도를 중국이 제공하고 있다.결국 이번에 플라자체제가 다시 올 경우 명시적이기보다 묵시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는 중심통화도 중국의 위안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수정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집권 2기 부시행정부가 출범할 내년 2월을 전후해 중국의 고정환율제가 포기되고 위안화 가치가 절상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지난 30년 동안 묵시적으로 유지돼 온 ‘제2브레튼 우즈체제’가 붕괴되고 수정된 형태의 플라자체제가 올 경우 국내 외환시장에는 크게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원화가치의 안전판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높은 무역의존도를 감안할 때 고정환율제 포기 이후 위안화와 원화가치간의 동조화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우리 외환당국은 급격한 환율변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Smoothing Operation)을 시급히 확보하고 시장참여자들은 환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앞으로 정책당국과 시장참여자들이 외화운용과 원화환율을 예측하는 데 있어 위안화 가치변동을 참고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