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강의 1~2시간 전 미리 와 기다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부산, 대전 등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도 적잖았다. 한 참석자는 “좋은 자리를 맡으려고 일찌감치 도착했다”며 “사실 얼굴만 봐도 영광이 아니겠느냐”며 설레는 모습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 기업가답게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 참석자도 다수 보였다. 대기업을 비롯한 중견ㆍ벤처기업 경영진부터 자영업자, 대학생, 주부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계의 몇몇 유명인사도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강연시간이 다가올수록 주변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사전에 배포된 관련기사, 자서전 를 읽으며 밑줄을 긋는 등 참석자들의 지적 호기심은 대단했다. 오후 4시 이나모리 카즈오 명예회장이 등단하자 장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호응했다.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는 언론사의 취재경쟁도 뜨거웠다. 72세의 고령에도 불구, 그는 차분하면서 뚜렷한 어조로 시종일관 좌중을 압도했다. 중요한 순간에는 톤을 높이는 등 임팩트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90분이 넘는 강연이었지만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교세라 창업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경험담을 토대로 경영철학과 생존전략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강의 내내 열심히 노트하며 단상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질의응답 때는 강연회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질문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한 여성 참가자는 “대단하신 분인데 혹시 인간복제를 할 의향은 없는지”를 물었고,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웃으며 “생명탄생은 신의 영역으로 여기에 손대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며 반대했다. 더불어 자연계의 질서를 붕괴할 뜻이 추호도 없음을 강조했다.경영철학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일본 경영자들은 논어 기반의 경영사상을 많이 공부한다”며 “<이나모리 카즈오의 실학>이라는 책은 회계에 철학을 가미한 경험칙”이라고 전했다. 철학자로서의 주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유럽연합처럼 아시아도 국경을 초월해 서로 돕고 상생해야 한다”며 “우리 세대가 못한 것을 젊은 세대가 이뤄 아름다운 마음이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경제권 창설’도 같은 맥락에서 희망했다. 강연 후 그는 더 바빴다. 단상 앞에 모여든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줬고 기념촬영도 마다하지 않았다.한편 강연에 앞서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서린동 SK그룹을 방문했다. 오찬회동으로 2시간 정도 진행됐으며, 양국 경제에 대한 많은 얘기가 오갔다. 오찬 직전 최회장은 접견실을 직접 안내하며 이나모리 명예회장에게 서울시내 전경을 설명했다. 이에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경복궁, 비원 등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또 그는 고 최종현 회장과의 인연을 들며 “당시 모친이 담근 김치를 선친으로부터 선물 받았는데 참 맛이 좋았다”고 회상하자 최회장은 “지금도 있는데 얼마든지 드리겠다”고 화답했다.강연 후에는 환영만찬이 있었다. 40여명의 국내 CEO들이 초청됐으며,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후에 끝날 만큼 반응도 뜨거웠다. 양국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가모임답게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박수도 여러 번 받았다. 불교귀의와 속세복귀 때의 심정을 묻는 질문에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겠다는 심정은 똑같다”며 “살아가는 동안 마음을 갈고닦아 태어났을 때의 마음이 아닌 아름다운 마음으로 떠나겠다”고 말해 좌중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더불어 필요로 한다면 한국판 세이와주쿠의 설립도 기꺼이 돕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