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분야 ‘누구 없소?’…불황 깊을수록 몸값 상한가

#사례1‘만일 그가 영업직이 아니었다면?’ 나이 25세, 고졸학력의 신진호 인터컴소프트웨어 특수영업팀장은 지난해 1억2,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올해도 이 정도의 연봉은 거뜬할 것으로 자신한다. 하지만 6년 전 계약직 사원이던 그의 월급은 15만원, 연봉으로 따지면 18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2년 전 정식직원이 됐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의 연봉은 2,000만원 정도에 머물렀다. 이 회사 박동혁 사장과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입사한 그는 처음에는 운전기사, 복사, 우편물 발송 같은 잔심부름을 주로 하다가 영업전선에 본격 나섰다. 그리고 업계가 깜짝 놀랄 정도의 대성공을 거뒀다. 영업이 그의 삶을 바꾼 셈이다.#사례2‘의사는 보험설계사 하지 말라는 법 있나?’ 보험업계에 사(士)자 바람이 불고 있다. 대졸 남성설계사들이 인기를 끌면서 의사나 경영학석사(MBA) 출신 등 이색경력을 지닌 설계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ING생명에는 의사 출신 보험설계사가 2명이나 된다. 아시아나항공 부기장을 지낸 파일럿 출신 설계사도 눈에 띈다. 이밖에 박사, 교수 출신도 보험영업에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입 모아 “실적만큼 받는 수입체제를 갖춘 보험설계사 직업에 매료됐다”고 밝힌다.실제로 연간 1억원 이상 받는 보험설계사는 4,000여명이 넘는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보험업계의 ‘사’자 돌풍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누가 영업직을 무시하는가? 영업직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달라지고 있다. 한때 3D 업종으로 인식됐으나 지금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각광받는다. 기업들은 유능한 영업직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고, 석·박사급의 탁월한 인재들이 거리낌 없이 영업직을 지원하고 있다.게다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사(士)’자 돌림 전문직들도 앞 다퉈 전문영업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예전에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영업직 전성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성과주의 강조 분위기 확산 한몫우선 수요가 많다. 기업에서 가장 많이 찾는 직종이 영업직이다. 헤드헌팅업계에는 유능한 영업직을 찾아달라는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억대 연봉은 기본이다. 스카우트 비용까지 지불하겠다는 곳도 적지 않다.한 생명공학업체의 경우 전문 영업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헤드헌팅사를 찾았는데, 억대 연봉은 물론 각종 부대비용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할 정도였다.영업직을 우대하는 분위기는 리쿠르팅 전문회사의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인크루트가 자사 채용공고수 통계를 낸 결과, 올 상반기 전체 채용공고 중 영업직 채용공고가 26.5%로 가장 많았다.특히 6월말 영업직 채용공고수는 9,561건으로 지난 1월(3,979건)보다 140%나 증가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여기다가 기업들이 인크루트의 유료상품인 ‘인재검색’ 서비스를 통해 유능한 영업직 사원을 직접 찾아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상반기 동안 기업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 1, 2위가 ‘영업’과 ‘해외영업’이었다는 점이 달라진 영업직의 위상을 말해준다.전통적으로 재무와 기획, 마케팅 부서가 득세하던 대기업에서도 영업부서의 파워가 점점 커지고 있다.영업담당 임원들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가 적지 않다. <한경비즈니스> 선정 국내 100대 기업(2004년) CEO 100명 중 25명이 영업담당 임원을 거친 것으로 조사됐다.이러다 보니 아직까지 재무나 기획직에 비해 전세가 역전된 것은 아니지만 영업직의 임원진출도 조금씩 늘고 있다.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기업 영업부서에서 임원 승진자가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2~3년 사이 대기업의 임원승진 인사에서 ‘성과주의’를 첫 번째로 강조하는 등 점차 영업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최근 2005년 인사를 단행한 KT를 보면 영업중시 경향이 뚜렷하다. 영업실적이 뛰어난 영업국장을 임원으로 발탁하고 이들을 다시 전략거점인 영업현장에 재배치했다. KT는 이미 영업직원 기 살리기에 적극 나선 상황이다. 영업직의 난이도를 높게 책정해 연봉계약 때 혜택을 주고 판매실적 최우수사원은 ‘영업왕’으로 선발해 초과매출에 따른 인센티브를 최고 1억원까지 제공키로 했다.조만간 2005년 임원승진 인사를 발표할 삼성, LG, 현대차그룹 등 대기업들도 올해 인사에서 영업직이 우대할 것으로 재계는 점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미 2004년 인사에서 감지된 바 있다.삼성은 2004년 인사에서 ‘실적 있는 곳에 승진이 있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다. LG나 현대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현대차는 전체 승진자의 20%가 매출이 크게 좋아진 해외영업파트에서 나왔을 뿐더러 국내영업에서도 영업직 출신 임원이 탄생했다.26년간 영업을 해 온 이달재 이사가 그 주인공으로 그의 꾸준한 실적이 영업직원들의 한을 풀게 만든 것이다.영업직이 육두품에서 진골로 진입하는 속도는 IT업계가 더 빠르다. 영업할 사람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기업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최근 네트워크 커리어가 33개 주요 인터넷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동향 조사’ 결과 올 하반기 필요로 하는 인력이 총 402명이며, 이중 영업직이 192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응답기업의 36.3%인 12개 기업이 영업마케팅직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직무라고 응답했을 정도이다.구직자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특히 기술영업 분야는 심각한 구인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IT나 전자업계 등 첨단기술업체의 경우 영업직이 해당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어야 영업활동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소비자의 지식수준은 높아지고 요구는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이들을 설득할 만한 전문지식을 가져야 한다. 이러다보니 능력 있는 영업직 구하기가 연구 인력을 구하는 만큼이나 어려워진 것이다.이처럼 영업직이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영업직’ 모시기에 나선 것은 우선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쉽게 말해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팔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한다.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내수불황과 소비침체로 인해 기업들이 판로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를 돌파하기 위해 우수한 영업직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영업직이 각광받으면서 이들의 학력도 높아지고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첨단 섬유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효성의 경우 석사급 이상의 연구원 출신이 대거 지원해 인사담당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제약회사에도 최근 명문대 졸업생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이 또한 제약영업의 전문성이 이전보다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정보 담당자를 양성하는 MR(Medical Representat-ives)제도가 도입되면서 제약업이 전문능력을 갖춘 영업활동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종근당 인사담당 관계자는 “의사나 약사를 상대로 하는 영업인데다 최근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주로 명문대학의 화학이나 약학, 생물학과 출신들의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보험업계의 경우 아예 고학력자를 찾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푸르덴셜생명보험의 경우 ‘4년제 대학졸업, 2년 이상 영업경력’을 가진 인력만을 영업사원으로 채용하고 있다.전문성도 점점 강조되고 있다. 영업직 모집 때 아예 전문분야를 명기해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이공계 영업직 채용도 변화된 모습이다. 전기전자, 정보통신, 자동차 등의 영업직은 이공계 출신이 우대받는다.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이들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인사담당자들은 “이공계 전공자 가운데 적극성을 지닌 직원들을 기술영업인력으로 키우고 있다”며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기업들이 영업직 채용에 적극 나서면서 구직자들의 영업직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각종 성과급, 인센티브 제도를 제시하고 있는데다 불황 속에서 자기 사업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업직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전문직종으로 자리잡아갈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