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최초 여성임원…밤샘 근무 ‘밥먹듯’

물류업체는 불황이 곧 호황이다. 많은 기업이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웃소싱을 적극 검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비용을 기준으로 물류업체를 선정하는 사례가 늘어 영업담당자는 애먹기 마련이다. 따라서 장계원 CJ GLS 상무(53)에게 요즘 같은 때는 기회이자 위기이다.“올해 건강검진 결과가 예상보다 나빠서 최근에 7kg 정도를 감량했습니다. 원래는 무척 건강한 체질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더군요.”지난해 ‘CJ그룹 최초의 여성임원’이라는 타이틀로 매스컴을 장식한 장상무는 확실히 언론에 나온 사진보다 훨씬 날렵해진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그녀는 “일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느냐”며 “매일 고객사를 찾아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이게 바로 영업이죠. 100억원짜리 프로젝트 2건이 진행 중입니다.”회의테이블 옆에 붙어 있는 스케줄표를 슬쩍 보니 11월29일 하루만 해도 아침 임원회의에서부터 구파발, 시화호 미팅을 거쳐 서울 강남까지 가는 스케줄로 채워져 있다.여성영업임원으로서 매일같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는 장상무는 32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그녀는 영문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 있는 중학교에서 3년간 영어교사로 일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참을 수 없어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전업주부 역할은 더 고역이었다.“사회활동을 안하니 마치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히스테리를 부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다시 취직하기 위해 3년 동안 <타임>지를 구독했습니다. 영어학원에도 다니고요. 아이들 돌볼 사람이 없어 먹을 것을 주고 밖에서 문을 잠가놓고 영어학원에 간 적도 있습니다.”이렇게 독하게 준비한 끝에 잡은 기회가 ‘삼성그룹 기혼여성 공채’였다.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82년 삼성그룹에 입사에 성공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제일제당 기획실과 해외사업본부를 거쳤다.“교사생활과 달리 회사생활에는 성차별이 분명히 있었어요.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진급이 안돼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남자후배가 과장이 돼서 상사로 오기도 하는 등 좌절을 겪은 장상무는 94년 제일제당 물류개선실로 발령이 나면서 과장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당시 물류팀은 업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이 가는, 그야말로 ‘한직’으로 여기던 부서였다. 항의표시로 일주일이나 발령부서로 가지 않고 삼성 본관으로 출근했다. 그런 물류팀 근무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줄은 몰랐다.“늘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제 성격과 물류업무가 잘 맞았습니다.”물류는 각 기업이 소비자를 만나는 가장 접점에 있는 파트다. 따라서 효율화와 서비스 개선 등 끊임없는 변화가 요구된다. 장상무는 물류파트에서 고객지원실과 정보기획팀을 거쳐 2003년에 CJ GLS의 3PL(제3자 물류) 영업본부장을 맡았다. 영업담당 간부로 활동한 것은 올해로 2년째다.“여러 파트를 거치면서 그렇게 억울해했던 제 경력이 지금은 영업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영업만 하면 운영에 관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일할 수도 있거든요.”영업담당자로 살아 보니 운영담당 직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게 되더라는 게 그녀의 말이다. 고객사에서 원하는 조건이 얼토당토않은 것이어도 일단 일감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는 이야기다.“그래서 외부문제를 해결하면 내부에 해결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게 영업임원의 업무입니다. 물론 그런 면이 있어 영업은 역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요.”어느새 ‘영업예찬론자’가 된 장상무는 특히 다양한 업종의 고객사를 방문하면서 각각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점을 이 일의 장점으로 꼽았다. 색다른 업종을 이해하게 되는 게 즐거운 일인데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인생의 교훈도 함께 얻는다고.“여자와 남자를 구분하기보다 한 사람의 프로페셔널로 봐달라”고 재차 강조하던 장상무는 오히려 여자라서 유리한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처음에 고객사를 방문하면 보험을 팔러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오히려 고객사에서 밥을 사주기도 하고 교사 경력 덕분인지 설득도 잘되더군요.”여자후배를 좀더 엄격하게 키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신이 임원으로 있는 동안 여성간부가 계속 나오길 바라는 게 장상무의 소박한 꿈이다.물론 그녀가 지금의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여성성보다 남성성을 발휘한 공이 더 크다. 지난 가을에는 2건의 경쟁수주를 연이어 놓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몇 주 동안 집에도 못들어가고 남자직원과 호텔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예전에는 지방출장 갔다가 숙소를 못찾아 모텔에서 묵었던 적도 있습니다. 젊은 남자직원과 모텔을 드나드는 저를 모텔주인이 어떻게 생각했겠어요.”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싶어 술자리도 정신력으로 이겨냈다는 장상무는 “폭탄주 13잔을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주로 남자고객을 만나는데 함께 목욕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화투를 칠 수도 없으니 답답했죠. 골프를 못하는 것도 그렇고요.”하지만 그녀는 이내 골프와 술 등이 영업력에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최근에는 접대비실명제, 성매매방지법 등으로 이런 방식의 영업은 통하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조직의 규모를 최소화해 조직원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주는 게 영업임원의 할일이라는 판단이다. 그녀는 또 돈 쓰는 영업방식 대신 서비스 개선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찾는 게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다.장상무는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여자후배가 있으면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고 강조한다.“과장 승진이 늦어질 때 사표를 서랍에 넣었다 꺼내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일에 집중해 승진에 대한 생각을 잊기 시작한 순간 신기하게 승진이 되더군요. 죽자고 달려들면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그녀는 영업담당 임원으로 발령이 났을 때 반발한 남자직원이 많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들었다. 물론 지금은 ‘무쇠체력’으로 종횡무진하는 그녀에게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백기를 든 상태다.“출장을 같이 가보면 남자직원들이 어떻게 그렇게 지치지 않느냐고 묻죠. 그렇지만 저라고 왜 지치지 않겠습니까.”그래서 여직원들은 자녀양육이나 시댁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장상무에게 하소연하는 일이 드물다. 그렇게 고민되면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2명의 자녀를 둔 주부인 장상무는 일과 가정을 철저히 분리한다. 주말은 휴대전화를 꺼둔 채 집안일에만 매달리는 한편 주중에 일단 출근하면 집 생각은 완벽히 잊어버린다.“이런 식으로 직장생활을 20년 하다 보니 어느 날 고민을 이야기하는 딸에게 제가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대안은 뭐냐’고 사무적으로 말하고 있더군요.”아이들 역시 자기 일을 스스로 하도록 키웠다. 독립심이 강한 큰아들과 달리 둘째딸이 지금도 “내 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그래서 무척 가슴이 아프다.“이러니 난 아무래도 남자인 것 같다”는 장상무는 인터뷰를 마치며 같은 여성으로 사회후배인 기자에게도 “반드시 일 중심으로 인생을 엮어가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약력: 1951년 경남 고성 출생. 73년 경북대 영어영문과 졸업. 82년 삼성그룹 입사. 82년 삼성중공업 기획실. 86년 제일제당 기획실. 90년 제일제당 해외사업부. 94년 제일제당 물류개선실 고객지원부문 담당. 99년 CJ GLS 정보기획팀장. 2003년 CJ GLS 3PL 영업본부장. 2004년 상무 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