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다이어리 2개 채우는 ‘메모광’, 찜질방서 팀장회의

이동통신업계에 2004년은 특별한 해다. 번호이동성제도로 시장환경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흔히 ‘소비자 주권회복 원년’이라 불릴 정도로 소비자의 선택권은 강화됐지만 이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마케팅, 영업 경쟁은 ‘피 터지는 전쟁’으로 치달았다.KTF는 지난해 12월 당시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던 표현명 마케팅부문장(부사장ㆍ46)을 야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공학박사 출신으로 20여년간 엔지니어로 활약하던 표부사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단명하리라는 예상이 대세였다. 하지만 그는 버텼을 뿐만 아니라 큰 성과를 냈다. 전체 순증가입자의 45%에 해당하는 128만명을 신규고객으로 유치한 것. 비결은 고객이해를 바탕으로 한 고객만족 마케팅이었다.그는 부지런한 리더다. ‘선즉제인’(先卽制人), 즉 먼저 하지 않으면 밀린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먼저 보고,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스피드 경영’을 외친다. 2005년 마케팅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하루를 따라가봤다.6:00. 기상시간이다. 이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향하는 곳은 컴퓨터. e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날 미처 보지 못한 메일을 체크하고 가능하면 간단한 답변을 보낸다. 기상과 함께 업무가 시작되는 셈이다.7:30. 출근시간이다. 스케줄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다이어리에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속이 많아 매일 아침 확인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밀린 결재도 이 시간에 한다.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충분히 토의되고 검토된 일들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할 일이 적다.결재와 함께 새로운 지시사항을 내린다. 주로 이용하는 방법은 e메일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절약되고 빠르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지 않다. 보통 A4용지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길다. 이런 e메일 지시를 보통 4~5통 보낸다.“이제는 휴대전화로도 e메일을 볼 수 있어 굳이 얼굴을 맞대고 지시할 이유가 없지요. 주로 아침이나 밤에 보냅니다. 업무시간에는 도무지 시간을 따로 낼 수가 없으니까요.”한달에 한번은 이 시간에 팀장회의를 한다. e메일을 통해 늘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지만 직접 만나 토론하다 보면 더욱 허심탄회하기 마련. 좋은 아이디어도 이때 많이 얻는다. 요즘에는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 회의를 한다. 알몸으로 대하면 좀더 솔직해지는데다 건강에도 유익해 반응이 좋다.9:00. 전략을 구상하는 시간이다. ‘마케팅은 전쟁’이라고 정의하는 만큼 무엇보다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 표부사장의 생각이다. 전에 없이 치열했던 올해의 이동통신 마케팅 전쟁에서 KTF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도 체계적인 전략에 힘입은 바가 크다.“왜 KTF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고객에게 줘야 합니다. KTF는 올해 굿타임 단말기, 굿타임 요금상품, 굿타임 서비스라는 슬로건하에 강력한 고객만족전략을 추진했습니다.”책, 신문, 리포트 등을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한 자료는 메모와 함께 정리한다. 지난해 마케팅부문장으로 취임한 후 지금까지 20권의 노트를 채웠을 정도로 메모와 자료정리는 그의 중요한 일과다.10:30. ‘전우’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KTF의 마케팅, 영업부서는 4개층에 산재해 있는데 표부사장은 하루에 한번 이 부서들을 모두 돌아본다. 전략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때로는 즉석에서 ‘의사결정’을 해 업무를 신속히 진행시킨다.“현대는 감성과 감각, 재미, 체험이 중시되는 필링(Feeling) 마케팅 시대입니다. 고객에게 재미를 주지 않으면 팔 수 없습니다. 재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야 합니다. 명령하달식의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요.”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사항은 ‘졸면 죽는다’다. 치열한 마케팅 현장에서 잠시라도 고삐를 늦추면 하루아침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위해 ‘열심히, 제대로, 잘’하라는 말을 틈만 나면 반복한다.12:00. 점심시간이다. 외부 약속이 없는 날은 KTF 사옥 18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횟수는 일주일에 보통 2~3번 정도. 부담 없는 대화로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식사시간은 20분 내외로 길지 않다. 남은 시간은 근처 선릉공원을 산책한다. 물론 직원들과 함께.13:00. ‘전장’을 살피는 시간이다. 표부사장은 스스로 ‘현장중심의 리더’라고 표현할 정도로 영업현장을 중요시한다. 직원들에게도 ‘답은 현장에 있다’고 늘 강조한다. 특히 지난해 말에서 올 초까지는 현장에서 살았다. 주말도 없었고 휴일도 없었다. ‘번호이동성제도’라는 새로운 마케팅 환경하에서 고객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수도권 대리점은 거의 다 돌아봤고 내년에는 지방 대리점을 순회할 계획입니다.”KTF의 색깔 마케팅도 현장을 돌며 얻은 아이디어. KTF는 최근 ‘오렌지색’을 매장의 인테리어 색조, 단말기 색상, 광고 등 전방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오렌지색으로 고객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전략이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한 예로 하남시의 한 대리점은 기존의 푸른색 인테리어에서 오렌지색으로 바꾼 후 내방고객이 5배나 증가했다.15:00. 또 다른 현장, 내부고객을 만나는 시간이다. 표부사장은 바쁜 일정을 쪼개 직원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로 자주 나선다. 보통 일주일에 1~2회 정도인데 교육장이 용인에 있어 오가는 시간만 2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이동시간에도 끊임없이 일을 한다. ‘모바일 라이프 스타일리스트’(Mobile Life Stylist)라고 자임하듯 휴대전화를 이용해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지시를 내리고 관계자들과 접촉한다.“교육장에는 마케팅부문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관리,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모입니다. 이들에게 본사의 마케팅을 ‘세일즈’(Sales)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 차기전략에 반영합니다.”19:00. 저녁시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외부 관계자들을 만나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갖는다. 하지만 과음은 되도록 피하고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포도주다. 과음도 피할 수 있고 대화 분위기를 만드는 게 포도주의 매력이라고 표부사장은 말한다. 게다가 그는 관련서적을 사들여 스크랩할 정도로 포도주 마니아이기도 하다.23:00. 귀가시간이다. 피곤하지만 바로 잠자리에 들지는 않는다. 집 근처 양재천을 찾아 1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파트너는 아내. MP3플레이어의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화제는 주로 가정사다.24:30. 드디어 취침시간. 고된 하루지만 고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된 일을 하루라도 일찍 겪게 해 능히 감당하게 해준 운명에 감사할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가 보내는 e메일의 엔딩멘트는 이렇다. ‘오늘 하루도 신나게 즐기십시다.’약력: 1958년 서울 출생. 81년 고려대 전자공학과 졸업. 98년 고려대 공학박사. 91년 한국통신 지능망 개발부장. 99년 한국통신프리텔 IMT-2000사업담당 상무보. 2001년 KTF 경영기획담당 상무보. 2002년 KTF 기획조정실장(상무). 2003년 KTF 마케팅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