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달러화 약세로 유로화는 1유로에 0.8달러에서 1.3달러로 폭등했고, 일본 엔화도 1달러에 130엔대에서 100엔대로 폭등했다. 우리나라 원화도 원/엔 환율 10대1의 비율이 유지되면서 1달러에 1,300원대에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1,000원대로 절상됐다. 원화가 폭등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수출주들에 대한 실적악화 우려가 증폭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동성 확대와 정부의 적극적인 내수부양책에 대한 기대감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2005년에도 금융시장의 핵심이슈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따라서 달러화 약세가 가져올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미리 짚어보고 대응전략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2002년 이후 달러화 가치를 움직이는 큰 힘은 GDP의 5.3%에 이르고 있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휩싸였을 때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4.5%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면 대외부채가 누적적으로 증가하면서 결국 그 나라에 대한 대외신뢰가 추락하고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 하는 것이다.문제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데 미국과 한국의 해법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덜 쓰고 많이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집중했다. 적자축소의 모든 부담을 우리가 짊어졌고 고통도 우리의 몫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다른 해법이 있다. 미국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허리띠를 푸는 방법도 있다. 다른 나라들이 소비와 투자를 늘려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하고, 내수가 좋지 않아 미국에 수출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던 기업들이 내수가 좋아지면서 수출역량을 내수확대에 주력해 미국에 대한 수출도 줄일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적자축소 부담을 다른 나라가 짊어지는 방법인데,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해법이지만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인 미국의 경우 선택 가능한 해법이다.최근 달러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를 보면 미국산 제품가격이 하락하고 국산품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므로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이 줄어들어 적자가 감소하기는 할 것이다.지금처럼 미국의 적자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폭락한 경험이 80년대에도 있었다. 85년 9월 플라자합의를 통해 G7이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면서 일본 엔화가 85년 초 260엔에서 120엔까지 급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달러화 가치 폭락에도 불구, 미국의 적자가 개선되지 못하자 87년 2월 미국은 금리를 인상해 성장률을 둔화시키고 다른 나라들은 내수부양을 지속하는 협약인 루브르합의가 만들어진다. 플라자합의가 가격조정을 통한 미국의 적자축소 노력이었다면 루브르합의는 국가간의 상대적인 소득조정을 통해 적자를 줄이려 한 것이었다.80년대 경험에 비춰보면 지금은 플라자합의의 정신이 통용되고 있는 시기에 해당된다. 각국이 달러화 폭락에 견디지 못해서 미국에 환율안정을 요구하고, 반대급부로 자신의 내수를 부양하는 정책을 쓰겠다고 하는 루브르합의의 정신이 확립될 때까지는 달러화 가치의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역사의 반복 여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국의 대응이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씀씀이가 헤퍼서 생긴 경상수지 적자의 조정책임을 해외로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 중국의 미국 비판 개요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을 직접적으로 압박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를 절상시켜서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커지게 만드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중국은 고립되게 된다.이렇게 됐을 때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가 이번 조정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중국과의 교역국들의 통화가치가 많이 절상된 상태여서 중국이 통화가치를 절상시키려 하면 적정 절상폭이 20~30%로 상당히 커질 것 같다. 한번에 이렇게 큰 폭의 절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여러 번 나눠 위안화를 절상하게 되면 투기적인 자금의 유입을 막을 길이 막막해진다. 중국이 끝내 위안화 절상을 거부한다면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과 극심한 무역마찰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물가상승 및 금리인상 시점이다. 예전처럼 달러화 가치 폭락으로 미국의 물가는 머지않아 올라가게 될 것이다. 금리를 올려 저축률도 높이고 재정적자 확대도 견제하고 싶어 하는 연방은행으로서는 물가가 올라갈 때 금리인상을 늦출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연방은행이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가, 미국의 금리인상이 세계 유동성을 얼마나 축소시킬 것인가, 미국의 금리인상 이전에 루브르합의와 같은 것이 도출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중요하다.달러화 약세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유동성을 수출하는 정책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야 하고, 저금리 환경에서 풀려나간 유동성은 달러화 약세를 피해 미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퍼져나가게 된다. 외국인들이 아시아 증시를 밝게 보려고 하고, 또 아시아지역으로의 자금유입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따라서 달러화 약세를 주축으로 하는 플라자합의의 정신이 통용되는 시기에는 저금리와 유동성 팽창을 투자전략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배당주와 자산주, 금융주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출주는 달러화 약세로 고전하는 시기이며, 특히 이 시기에는 통화가치 절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지역에서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각국이 달러화 약세를 견디지 못해 루브르합의와 같은 국제합의가 도출되는 시기가 되면 투자전략을 성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유동성 팽창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미국은 달러화 폭락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금리도 올리는 상황이므로 유동성 긴축이 진행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내수가 좋지 못해서 미국으로의 수출로 겨우 성장률을 유지하던 지역에서 내수부양이 시작되는 시기이므로 관심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수출주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달러화 약세는 그 자체로 금융시장에 나쁘지 않다. 유동성이 세계적으로 풍부해지고, 또 성장을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강력한 내수부양이 시작될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병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미국이 달러화 약세로 다른 나라의 내수부양책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국 위안화의 절상이 반드시 필요한데,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지나치게 늦추거나 끝까지 반발할 경우 국제적인 통상마찰과 자유무역주의의 후퇴 가능성도 있다.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됐을 때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또 달러화 약세가 빠르게 진행돼 그동안 수출로 성장률을 유지하던 나라들의 성장률이 급락하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시장은 달러화 약세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마지막으로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에서 나타날 유동성 긴축에 대한 우려를 조심해야 한다. 달러화 폭락은 미국의 물가상승, 금리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 시기가 언제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대거 차익실현에 나설 것이다. 미국의 저금리로 세계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자산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에,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유동성이 줄어들면 자산가격 상승이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경기긴축 정책에 들어갈 때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문제는 심각해질 것인데, 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김일구ㆍ랜드마크투신 운용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