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부진 불구 전년 대비 15.8% 성장…‘2010 글로벌 톱5’ 줄달음

올해 한국 자동차시장은 굿 뉴스와 배드 뉴스가 서로 엇갈렸다. 굿 뉴스는 자동차 수출실적이 연초부터 급증세를 보이기 시작, 사상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돌파했다는 것. 전체 수출액 2,450억달러(예상)의 12.7%를 차지, 수출품목 1위의 위치를 확고히 다진 한해였다.반면 경기침체로 자동차 내수가 IMF 위기 이후 가장 저조했다는 것은 배드 뉴스로 첫손에 꼽힌다. 유가급등, 가계 신용불량 등의 악재가 겹쳐 외환위기의 정점인 98년을 제외할 경우 91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판매실적이 하락했다. 전년 대비 16.6%가 감소한 110만대 판매에 그칠 것이라는 게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예상이다.이런 명암은 자동차 대표기업인 현대자동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11월까지 누계 판매실적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205만3,271대로 전년 대비 15.8% 증가했다. 하지만 내수시장에서의 판매는 13.7% 감소한 49만9,358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난다.2001년 7월 총괄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한국 자동차산업을 진두지휘해 온 김동진 부회장은 올 한해 두 가지 국면 속에서 많은 고민과 조율을 해야 했다.그러나 수출에서의 괄목할 성장세가 내수부진을 거뜬히 만회, 여전히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내수에서는 마이너스 실적에 그쳤지만 총판매량으로는 괄목할 기록을 세워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지난 7월엔 1976년 처녀 수출 후 28년 만에 자동차 1,000만대 수출 돌파라는 위업까지 달성했다.매출 및 이익도 호조세다. 지난 3분기까지 매출액은 19조9,307억원(내수 7조5,888억원, 수출 12조3,4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5% 증가했다. 순이익은 1조4,232억원으로 10.3% 증가한 수치다.경영실적 면면에서 보듯, 현대자동차의 올해 전략은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맞춰졌다. ‘글로벌 톱5’를 지향하는 진취성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에 나선 것이다. 특히 세계적 자동차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필수요건인 글로벌 생산거점 확충에 어느 때보다 매진했다. 김부회장의 행보도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김부회장이 세계 각지의 공장과 현지법인을 직접 둘러보며 챙기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평균 15회 이상 해외출장을 다닐 정도다. 게다가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미국 핀레이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엔지니어 출신인 만큼 자동차 기술개발에도 남다른 지식과 관심을 갖고 있다.그도 그럴 것이 김부회장의 원래 희망은 발명가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엔지니어의 길을 가던 중 현대와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방산장비 개발을 위해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방산부문을 현대모비스가 주도하게 되면서 정몽구 회장과 만나게 된다. 이후 20년 가까이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장을 역임하면서 자동차 부품 및 갤로퍼 개발 등 차량사업에 주력, 누구보다 자동차를 잘 아는 전문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았다.말과 행동에 신중하고 치밀하기 그지없는 성격 역시 엔지니어로 오랫동안 일한 데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구소 시절 항상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 연구방향을 잡고 치밀하고 성실하게 수행한 업무 스타일이 아직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전략적으로 준비ㆍ대응하며, 말보다는 솔선수범하는 행동과 강한 뚝심을 요구하는 형’이라는 주변의 시각에서도 김부회장의 남다름이 잘 나타난다.하지만 ‘최고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김부회장은 더없이 겸손한 모습이다. 평소 “경영자가 아니었다면 연구원이나 교수가 됐을 것”이라며 “주어진 위치나 자리가 어디든지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으며, 그러다 보니 더 큰 임무가 주어졌고 결국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세와 솔선수범을 늘 강조, ‘지장’과 ‘덕장’의 면모를 함께 지녔다는 평을 받는다.김부회장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톱5’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공석에서 다섯손가락을 쫙 펴보이는 제스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을 정도다. 말 그대로, 현대자동차를 세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명차 메이커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실제로 김부회장이 취임한 후 현대자동차는 주가와 시가총액이 두배 정도 증가했다. 매출과 이익도 3년동안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당초 목표는 ‘2007년 세계 최고의 품질인 도요타자동차를 따라잡는다’는 것이었지만 김부회장은 올해 이미 이 목표를 달성, 목표를 3년 앞당겼다고 보고 있다. 남은 목표는 ‘2010년 세계 5대 메이커 진입’. 해외거점 확보와 수출다변화에 온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물론 이 같은 노력에 대한 성과는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지의 현지법인과 공장에서 신기록이 터져나오며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입지를 공고히 다져주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중국, 인도, 터키 현지공장의 경우 지속적인 공장증설 추진 중에도 연이어 판매 신기록을 경신하며 전년 대비 2배에 가까운 84.1%의 판매증가율을 보였다. 인도법인인 HMI는 지난 11월 판매실적이 2만4,566대로 인도 진출 이후 월간 최다 판매기록을 수립했다. 베이징현대와 터키공장도 마찬가지다. 중국시장은 2002년 12월 중국진출 이후 가장 많은 1만7,300대 판매기록을 세워 더욱 의미가 깊다.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에 거는 기대가 대단하다. 올해 미국시장에서는 쏘나타, 그랜저XG 등 중대형 승용차 및 RV차량인 싼타페 등이 지속적인 판매호조를 보여 전년에 비해 3.1% 증가한 31만9,000대 판매기록을 세웠다.2002년 4월 착공, 내년 3월 본격 가등을 앞두고 있는 앨라배마 공장의 경우 현대자동차에겐 ‘꿈을 찍는 공장’이나 다름없다. 총 10억달러를 투자해 196만평의 규모로 세워지며 연간 3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공장에서 고부가가치 차종인 SUV와 5세대 쏘나타 등을 생산해 미국 현지와 캐나다 등 북미국가에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응원이라도 하듯, 지난 4월 미국 JD파워사는 신차 품질조사에서 세계 유수 브랜드를 제치고 현대 쏘나타를 1위 자리에 올려 ‘분위기’를 띄웠다.유럽시장에서도 현대차의 인기는 꾸준한 상승세다. 신규투입한 투싼이 폭발적 인기를 보이고 있고 수출전략 차종인 클릭, 라비타를 중심으로 12개월 연속 판매실적이 증가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미 전년 대비 20.6% 증가한 25만5,000대가 판매됐다.글로벌 경영이 화두인 만큼 김부회장은 이에 걸맞은 인재영입에도 발벗고 나섰다.2002~2003년에는 미국 상위권 18개 대학 출신 석ㆍ박사급 인력을 뽑기 위해 직접 미국으로 면접을 보러가기도 했다. 김부회장의 글로벌 경영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내년 현대차는 ‘글로벌 톱5’를 향한 여정에서 전환기를 맞을 전망이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는 한편 현지화 전략이나 브랜드 가치 증대, 전략차종 개발 등의 핵심 경영전략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낼 시기이기 때문이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남보다 훨씬 긴 하루를 사는 김부회장의 발걸음도 한층 더 바빠지게 됐다.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약력 : 1950년 경남 진주 출생. 68년 경기고 졸업. 72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88년 미국 핀레이공대 산업관리공학 박사. 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ㆍ국방과학연구소 근무. 78년 7월 현대중공업 입사. 78~97년 현대정공 기술연구소장. 94~98년 현대우주항공 부사장. 98~99년 12월 현대우주항공 사장. 2000년 현대자동차 사장. 2001년 7월 현대자동차 총괄사장. 2003년 8월 현대자동차 부회장(현).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