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대표CEO 자리매김… ‘인화ㆍ단결’로 합병성과 조기달성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2004년 올해의 CEO 상위 10명 중 유일한 금융권 CEO다. 이는 내로라하는 쟁쟁한 금융수장들을 모조리 제친 성과다. 하지만 그의 4위 랭킹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가 더 일반적인 까닭에서다. CEO로서 그의 행보가 그만큼 눈부신 성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증권가는 12월 임기만료인 김행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김행장은 은행권 리더십의 표본으로 회자된다. 창립멤버로 30대에 부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7년 은행장에 취임한 후 7년 10개월째 장수하고 있다. 잔여임기를 모두 채우면 8년째 행장 직함을 유지하는 셈이다. 이는 한국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케이스다. 특히 김행장은 내부승진으로 CEO에 오른 토종 은행장이다. 현재 은행권 CEO자리는 외국계 출신이 평정한 상태다. 내부승진으로 CEO포스트에 올라선 이는 신상훈 신한은행장과 김행장뿐이다.출신배경만 희귀한 게 아니다. 그가 거둔 경영성적표는 합격점 이상이다. 취임 전해(96년) 하나은행의 총자산은 8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김행장은 이랬던 소형은행을 현재 ‘빅4’로 키웠다. 현재 93조4,000억원의 총자산을 배경으로 ‘글로벌 뱅크’에 바짝 다가섰다. 그의 성공함수에는 M&A를 뺄 수 없다. 은행장 취임 후 그는 충청ㆍ보람ㆍ서울은행을 연이어 인수했다. 후발 중소형 은행에 불과한 하나은행이 합병주체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시장은 이런 그를 두고 ‘합병의 귀재’라고 부른다. 합병은 그에게 기회였다. 합병 후 은행 내용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은행 합병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하나은행을 꼽는 이유다. 그는 비교적 노사갈등 없이 단기간에 대형 우량은행으로 성장시켰다. 가령 합병 이후의 경영정상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빨랐다.김행장의 성공스토리에는 그만의 독특한 경영룰이 있다. 우선 그는 조직분위기를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최대 결정변수로 본다. 따라서 사람과 조직의 시너지를 누구보다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사람=자산’은 하나은행의 조직문화다. 평소 은행권 최고대우를 약속하며 임직원들을 독려한다. 자칫 독이 되는 합병이슈를 약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차원에서다. 사실 합병성공의 관건은 이질적 문화의 동질화 가능성에 달렸다. 합병 자체가 시너지 효과를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이라지만 양 문화의 동질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게 김행장의 소신이다. 외부영입파 은행장들이 합병 후 비용절감ㆍ구조조정을 강조하는 반면, 내부승진을 반복한 김행장은 인화ㆍ단결이 우선이다.사람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스타일은 하나은행을 ‘금융사관학교’로 만들었다. 현재 금융권 핵심포스트 곳곳에는 하나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가령 PB 쪽은 하나출신이 곧 능력검증의 잣대로 인정된다. 인사에 대한 유연성도 비교적 높다. 또 조화롭게 살자는 그의 ‘무지개론’처럼 조직내부의 인사원칙은 출신보다 능력ㆍ실력에 좌우된다. 하나은행의 개방적인 기업문화는 CEO로서 김행장이 지닌 핵심 성공법칙이다.더불어 그의 성공인자에는 토론중시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른바 ‘난상토론’이다. 하나은행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 때 직급을 떠나 난상토론을 벌이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또 토론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밤을 새우는 일도 흔하다. 매년 11월 수백명의 임직원이 참가하는 워크숍은 난상토론의 전형이다. 모두가 경영자의 입장에서 이듬해의 목표ㆍ전략을 수립ㆍ확정한다. 이뿐만 아니다. 매월 열리는 직원과의 간담회에는 생생한 현장얘기가 오간다. 매월 북한산에서 진행되는 산장토론도 독특한 문화다. 김행장의 애정도 남다르다. 아무리 바빠도 1월 첫째주 신년 산상포럼은 개근했다. 막걸리 한잔에 조직단결의 토론문화를 완성한 셈이다.그는 또 군더더기를 없애는 ‘합리경영’을 지향한다. 하나은행에는 그 흔한 ‘행훈’이나 ‘행가’가 없다. 도식화된 틀 속에서 임직원의 생각이 제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김행장의 고집이 녹아 있는 대목이다. 이는 결국 창의적인 기업문화로 연결됐다. 행장은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강조하고, 또 임직원은 이를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안착됐다. 물론 김행장 역시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다. 조기승진과 실적향상은 그의 창의력이 실적에 체화된 결과다. 지금에야 평범한 은행 객장에 증권ㆍ보험창구 설치도 그의 아이디어다.일에 대한 열정은 ‘김승유식 성공함수’의 최대 설명변수다. 그는 하나은행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김행장의 일상은 숨가쁜 업무의 연속이다. 주변에서는 이런 그를 두고 ‘워커홀릭’(Workholic)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항상 고민하고 늘 앞장서 업무를 추진한다. 일례로 그는 낮에 못한 일이 있으면 귀가 후 새벽 1~2시에 전자결재를 할 정도다. 해외출장 때도 노트북은 필수품이다. 필요한 업무지시와 결재를 위해서다. 김행장은 직위ㆍ직책을 통한 제압보다 리더의 능력발휘를 통한 신뢰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늘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김행장은 끊임없이 공부한다. 업계에서는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혀를 찰 정도다. 집무실은 물론 차나 침실에조차 손이 닿는 자리에는 항상 책이 있다. 관심서적뿐만 아니라 사내직원이 추천하는 책들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 읽는 편이다. 교감을 통한 눈높이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하나은행에는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공부하는 게 전통처럼 내려온다. 그는 “올바른 코칭을 위해서는 리더의 학습이 기초돼야 한다”며 “그래야 부하직원이 스스로 문제해결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사례로 김행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갈 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내용파악과 의견교환이 단시간에 가능할 만큼 관련자료를 읽고 고민하는 게 일상적이기 때문이다.김행장의 성공법칙을 이루는 또 하나의 무기는 인간성이다. 김행장은 1,0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며 대화를 나눌 만큼 인간미가 풍부하다. 가령 지점 텔러직원의 이름을 거명하며 대화한 건 유명한 일화다. 물론 지금도 틈틈이 직원명부를 보며 이름을 외우려 한다. 특히 직원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참석하고자 노력한다. 또 집 없는 직원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는 사내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성곤 홍보팀 차장은 “주5일 근무제 실시와 함께 직원들의 주말여가 활용 차원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요리강좌는 행장이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라고 귀띔한다.증권가에서는 하나은행의 놀라운 펀더멘털 개선배경에 김행장의 ‘매니지먼트 밸류’(Management Valueㆍ경영가치)를 첫 번째 요인으로 꼽는다. 하나은행의 성공스토리에 김행장의 역할이 그만큼 지대했기 때문이다. 이제 은행가는 ‘3차 빅뱅’으로 요약되는 대대적인 격동기를 맞고 있다. 동시에 향후 펼쳐질 ‘스타워즈’의 한 축을 하나은행이 맡고 있다. 김행장의 파워가 다시금 발휘될지 귀추가 주목된다.김승유 하나은행장약력 : 1943년 충북 청주 출생. 58년 경기고 졸업. 65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71년 남캘리포니아대 경영학 석사. 65년 한일은행 입행. 71년 한국투자금융 입사. 73년 고려대 경영대 강사. 74년 한국경영연구소 연구위원. 76년 한국투자금융 증권부장. 89년 전무. 97년 하나은행 은행장(합병ㆍ현). 비상경제대책위 자문위원.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한국상장사협의회 부회장. 한국CEO포럼 공동대표. △수상: 2003년 아시아 New Century 리더상(C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