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업태 출점전략도 박차…‘확고부동 1위’ 자신감 탄탄

“불황? 두렵기는커녕 반갑다.”올 한해 극심한 내수침체로 많은 기업이 몸을 움츠렸지만 구학서 사장이 이끄는 신세계는 여전히 펄펄 날았다. 할인점시장을 평정한 ‘부동의 1위’ 이마트를 필두로 파죽지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실적에 동반하기 마련인 주가는 지난 9월17일 32만7,5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총매출은 지난해 5조8,038억원에서 6조6,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순이익도 지난해 3,000억원 돌파의 여세를 몰아 3,550억원까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카드사와의 불협화음이나 소비위축 등 심각한 악재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셈이다.구사장은 신화가 되다시피 한 신세계 고성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이다. 지난 99년 12월 대표이사에 오른 후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견인해냈다. IMF 위기를 발판으로 5년 이상 흔들림없이 놀라운 실적을 보여준 그에게 불황쯤은 ‘별일’ 아닌 듯 보인다. 오히려 불황에서 힘을 충전해 또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환위기 때 신세계 사령탑에 오른 구사장이 어떻게 지금의 신세계를 만들었는지 살펴보면 그의 자신감이 충분히 이해된다.99년 12월 가장 어려웠던 시기, 구사장은 취임하자마자 휘몰아치듯 신세계를 다잡았다. 우선 영업분야에서 효율경영ㆍ수익경영을, 비영업분야에서 윤리경영이라는 새로운 혁신과제를 내놓았다. 최강의 유통기업에서 3위로 내려앉게 한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취임 초기부터 강력한 개혁을 시작한 것이다.구상은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우선 ‘효율경영’의 차원에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종합금융 등 비유통 기업들을 과감히 쳐냈다. 유통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핵심경쟁력’은 아니던 그래픽, 디스플레이 관련부서는 분사를 통해 정리했다. 명실상부한 ‘유통기업’으로서 새 모습 갖추기부터 시작한 것이다.이와 동시에 유통업 내부도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수익이 나지 않던 백화점 PB사업을 청산하고 고급화 전략을 채택한 반면, 이마트부문은 PB사업을 대폭 강화해 업태에 따른 차별화 정책을 폈다. 특히 프라이스클럽을 과감히 매각, 그 자금으로 전국의 이마트 부지를 선점한 것은 쉼 없이 내달리는 점포확장 전략의 밑거름이 됐다. 또 신세계건설을 설립, 이마트 점포 표준화를 통해 공기를 크게 단축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수익경영의 차원에서도 구사장의 구상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취임시기, 신세계는 백화점 부지가 출점을 못하고 고정비로 묶여 있어 자산회전율이 1회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구사장은 백화점 부지를 이마트로 전환시키고 곧장 공격적인 출점 전략으로 전환했다. 특히 외환위기시절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비경쟁, 저비용으로 이마트 부지를 매입하는 등 자산회전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덕분에 현재 신세계는 1.5회전이라는 높은 수준의 자산회전율을 기록, 기업수익의 극대화를 실현하고 있다.비영업분야에서는 구사장의 ‘철학’이나 다름없는 ‘윤리경영’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외환위기 사태가 결국은 기업의 비윤리적인 운영에서 기인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기업의 생존하려면 저마다 윤리경영을 최우선 덕목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윤리경영 전도사’를 자처했다. 이를 위해 국내 최초로 윤리경영 전담부서인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을 설립하는가 하면 윤리규범을 제정해 신세계와 모든 거래처, 나아가 모든 기업이 투명성 강화에 힘쓰도록 했다.이처럼 다각도에서 펼쳐진 혁신과 그에 따른 성과가 반영돼 구사장은 지난 2001년 ‘주목받는 CEO’에 이름을 올린 이후 3년 연속 ‘베스트 CEO’에 선정됐다. 신세계가 유통시장에서 황제로 등극했듯이, 구사장 역시 스타CEO로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다시 만난 구사장은 ‘여전히’ 배가 고픈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높은 수준인 자산회전율을 2회전까지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고, 새로운 업태에 대한 구상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면 주가를 더 끌어올리고 종업원에게 이익을 돌릴 것인가 하는 것도 늘 머릿속을 맴도는 화두다. 윤리경영 전도사로서도 항상 ‘스탠바이’ 상태다.내년부터 선보일 새 업태에 대한 구상은 이미 밑그림이 그려졌다. 구사장은 “기존의 중대형 할인점을 축소한 형태의 새로운 할인점을 인구 10만명 안팎의 소도시에 집중 출점시키겠다”며 새 사업계획을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인구 15만명 이상 지역을 타깃으로 출점전략을 폈지만 시장이 포화상태를 향해가고 있는 만큼 새로운 업태를 개발해 틈새시장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마트 D타입’이라 명명된 새로운 업태는 식품보다 공산품이 강화된 저비용, 고효율 구조. 구사장은 “삼성테스코 등이 추진 중인 슈퍼슈퍼마켓(SSM) 개념과는 확연히 다르다”면서 “이마트 당초 목표로 잡았던 출점수가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중소도시 곳곳에 빠짐없이 이마트 깃발을 꼽겠다는 이야기다.내년 구사장이 계획하는 경영전략 중에는 굵직한 M&A건도 포함돼 있다.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외국계 할인점을 인수, 주특기인 공격경영에 더욱 채찍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구사장은 “내수가 좋을 때는 누구나 사업을 확장하려 들 것”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전력이 있는 만큼 내년을 확실한 제2도약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외국계 할인점까지 인수하게 되면 신세계는 2위업체와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까지 벌려놓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구사장이 발벗고 나서 붐을 일으킨 바 있는 윤리경영의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멀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 방한했던 이나모리 카즈오 교세라 회장의 경영철학을 예로 들면서 “모든 힘의 원천은 도덕성이며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선과 악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을 각 기업이 세우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윤리경영을 지속 추진할 수 있는 도덕성 있는 오너나 CEO를 둔 기업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세계의 경우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어 주가나 실적에도 긍정적으로 반영된다는 게 구사장의 분석이다.공격경영의 기치를 높이든 구사장이지만 내년에 마냥 희망적인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불황에 강한 업태라지만 내수가 더 침체되면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특히 오랜 공사를 마치고 연면적 4만평 규모로 새로 문을 열 서울 명동의 신세계 본점은 축소 일로에 있는 도심상권에서 롯데와 피할 수 없는 경쟁을 치러야만 한다. 구사장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며 “본점이 강력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고 있다”고 밝혔다.한편 한국경제 해법에 대한 질문에 그는 ‘신뢰’를 키워드로 들었다. “정부, 기업, 국민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업이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탓할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급선무”라는 이야기다.신입사원 시절부터 단 한번도 CEO가 되겠다고 목표를 세운 적이 없다는 구사장은 “늘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리’는 절로 따라 온다”고 말했다. 그저 남보다 나은 고과성적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했더니 자연스레 임원, CEO가 돼 있더라는 것. 구사장은 “CEO의 꿈을 품고 입사하는 젊은 사원들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이라며 따끔한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구학서 신세계 사장약력 : 1946년 경북 상주 출생. 70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72년 삼성전자 경리과 입사. 77년 삼성그룹 비서실 관리팀 과장. 82년 삼성물산 동경지사 관리부 부장. 88년 삼성전자 관리담당 이사. 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 98년 신세계 부사장 겸 경영지원실장. 9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사장. 2000년 신세계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