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 부동의 1위, 해외진출 위해 조직개편 단행

“올해는 해외사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해입니다.”NHN의 김범수 사장(38)은 2004년을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2000년부터 추진해 온 해외사업에서 드디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초기시장 진입장벽이 낮은 게임을 선두에 내세운 해외진출 전략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 일본에서는 한게임이 동시접속자수 10만명을 달성하며 일본 웹게임 1위 자리에 올랐고 지난 6월에는 중국 최대 게임 포털인 ‘아워게임’의 지분 50%를 인수, 중국 게임시장에 진출했다.김사장은 해외사업에 대한 꿈이 크다. 이를 위해 올해 들어 두 번이나 조직개편을 단행했을 정도다.1월에는 이해진, 김범수 공동대표 체제에서 김범수 단독 대표제로, 11월에는 단독 대표제에서 각자 대표제로 전환했다. 해외사업과 국내사업을 분리해 대표이사를 각각 두기로 한 것. 이에 따라 이미 공고한 입지를 굳힌 국내시장은 최휘영 전 네이버 부문장이 맡고 김사장은 해외사업을 지휘하게 됐다.“해외사업에 무게를 싣다 보니 해외와 국내사업 모두를 총괄하는 것보다 각각의 역할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내사업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포석인 셈이지요.”해외사업에 사력을 모으고 있지만 국내시장에서도 빛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매출, 시가총액, 영업이익 등 모든 면에서 경쟁사를 크게 앞지르고 있는 것. 특히 올해는 인터넷업계 최초로 반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3분기 누적매출은 이미 지난해 총매출을 넘어선 상태다. 하반기 들어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등 주춤했지만 머지않아 다시 성장세에 오를 것이란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방문자수에서도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메트릭스, 코리안클릭, 랭키닷컴 등 주요 인터넷 조사업체의 사이트 점유율, 순방문자 집계에서 1위에 올랐다. 높은 경영실적에도 방문자수에서는 ‘다음’에 밀렸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인터넷 포털의 1인자에 등극한 것이다.해외시장에서 ‘미래에서 온 사람’으로 통하는 김사장이 인터넷업계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는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91년 무렵에 일어났다. PC통신의 태동기였던 당시 후배의 자취방에서 ‘채팅’을 접한 후 컴퓨터에 푹 빠지게 된 것. 첫 직장으로 삼성SDS를 택한 것도 컴퓨터 분야가 뜰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직장생활은 순조로웠다. 양식편집기인 ‘Form Editor’,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관리시스템, 유니텔 전용 에뮬레이터 유니윈을 개발하는 등 성과도 적잖았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묻어둘 수는 없었다. 드디어 98년 김사장은 창업을 결심한다.아이템은 인터넷게임이었다. 인터넷게임이란 아이템을 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미래를 주도할 네트워킹은 PC통신이 아니라 인터넷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터넷의 속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은 ‘게임’이라는 판단이었다. 초기 인터넷게임시장의 기린아인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은 그렇게 탄생했다.한게임이 조기에 자리를 잡았지만 김사장의 마음은 조급했다. 바라는 만큼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만난 사람이 삼성SDS의 동기인 이해진 당시 네이버컴 사장이었다. 이사장 역시 새로운 성장모멘텀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던 두 사람은 즉각 의기투합하고 한게임과 네이버를 통합했다. 게임과 검색이라는 NHN의 쌍두마차가 결합하는 순간이었다.“주위의 우려가 많았습니다. 게임과 검색은 전혀 다른 서비스니까요. 이질적인 두 조직의 문화를 융합하는 게 우선과제였습니다. 두 문화가 적절히 조화된 인사, 직원평가시스템을 개발하고 전직원 개별만남을 통해 화합을 유도했습니다.”합병의 화학적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합병 당시 89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2001년 241억원, 2002년 740억원으로 매년 2~3배씩 뛰어올랐다. 2002년 코스닥 등록 이후에도 NHN의 ‘진군’은 멈추지 않았다. 지식검색, 블로그, 게임포털, 검색광고 등 내놓는 서비스마다 큰 호응을 얻으며 코스닥 황제주에 올랐다. 내년에는 자체개발한 대작 롤플레잉게임(RPG)인 ‘아크로드’가 정식 서비스될 예정이어서 NHN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아크로드에 거는 김사장의 기대는 단지 NHN 최초의 대작게임을 내놓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해외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한다는 게 김사장의 구상이다. 애초부터 국제용으로 기획해 100억원의 제작비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해외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는 이미 갖춰진 상태입니다. NHN재팬이 일본시장에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중국의 경우 현재 회원이 1억5,000만명에 이르는 게임포털 아워게임의 공동경영권을 확보해 안정적인 서비스를 실시할 준비를 마쳤습니다.”김사장은 직원들에게 거의 입버릇처럼 ‘꿈’을 강조한다. 항상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주문이다. 꿈을 꾸지 않고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말로만 꿈을 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직원들의 자율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복지체계를 국내 최고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직원 하나하나의 꿈이 ‘위대한 기업 NHN’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믿고 따라준 직원들이 없었다면 NHN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NHN의 가장 큰 재산은 ‘사람’입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직원 모두에게 일일이 신경을 쓸 수는 없지만 메일도 자주 보내고 만남의 기회를 최대한 가지려고 노력합니다.”사업을 시작하면서 김사장은 매일 아침 반신욕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40분 정도 물에 몸을 맡기고 사업구상을 하는 것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업 아이디어가 이 시간에 나왔다. NHN이 사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해외사업도 이때 구상된 일이다. 국내 인터넷시장이 빠르게 발전해 왔지만 시장규모가 크지 않아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내년에는 해외사업의 성과가 더욱 도드라질 것입니다. 우선은 내년 초 한ㆍ중ㆍ일 동시접속자 100만명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고 제3의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2008년까지 세계 10대 인터넷기업으로 성장하겠습니다.”김범수 NHN 사장약력 : 1966년 서울 출생. 90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92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석사. 92년 삼성 SDS 입사. 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관리시스템 개발. 97년 유니텔 전용 에뮬레이터 ‘유니윈 98’ 개발. 98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창립 및 대표이사. 2000년 NHN 공동대표이사. 2004년 NHN 대표이사사장(현). 2004년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현)돋보기 내가 본 CEO겸손 앞세운 예의바른 경영자김범수 사장과는 삼성SDS 연구소 동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0년 7월 각자의 창업회사였던 네이버컴과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합병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합병 후 2003년까지 3년여를 김범수 사장과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김사장만한 사람도 없다고 느꼈다. 편안한 외모 그대로 침착하고 원만한 성격의 김사장은 말로 내뱉기 전에 항상 생각을 깊게 하고 말을 아끼는 타입이다. 모든 회의석상에서도 사장의 의견이 주는 무게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실무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다음에야 어떤 말이라도 시작하는 편이다.또한 김사장은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생각해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한 회사의 말단사원일 때부터 NHN의 대표인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항상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김사장에게는 적이 없다.미래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김사장이 이제는 세계적인 인터넷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일본에서는 한게임이 게임포털 1위라는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중국에도 진출했다. 자신의 꿈을 열정으로 실현시킨 김사장이기에 이번 도전도 꼭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이해진 NHN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