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CEO로 일찌감치 꼽혀…자기자신에 특히 엄격

2003년 3월 세계적인 철강기업 포스코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은 이구택 회장(58)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드러움’이다. 언제 어디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대할 때도 유연하고 여유가 넘친다. 하지만 일처리는 매우 꼼꼼해 칼 같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완벽함을 추구한다.그런 이회장이 2003년 초 포스코의 사령탑 자리에 올랐을 때 세간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최고경영자가 될 사람이 드디어 됐다’는 얘기가 주류를 이뤘고, 포스코가 다시 한 번 비상을 하는 데 최적임자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현장직원 등 전체 임직원의 반응도 뜨거웠다.이런 주변의 기대에 보답하려는 듯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지난 몇 해 동안 포스코는 핵심역량들을 꾸준히 강화해 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성장경영에 나서겠다”고 청사진을 밝혔다. 국내에서는 독보적이지만 외국의 경쟁업체들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에서 적극적인 성장경영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던 것이다.대내외에 강력한 비전을 선포한 이회장은 이후 지속적인 성장엔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의 자원을 집중하는 등 많은 힘을 쏟았다.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 연산 60만t 규모의 스테인리스 3제강공장을 설립하며 포스코를 일약 세계 5대 스테인리스사로 발돋움시켰다. 또 2007년 자동차강판 450만t 생산체제 구축을 목표로 각각 45만t, 40만t 규모의 자동차용 아연도금강판설비 건설을 확정했다.이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급자동차용 TWB강판공장 증설과 하이드로포밍(Hydroforming) 가공공장 착공 등 설비 신증설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뒤처진다는 판단에서다.특히 2004년 8월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포스코 고유의 저원가, 친환경 혁신 제철공법인 파이넥스(FINEX)설비를 착공함으로써 기술 선진기업으로으로 위상 강화는 물론 2008년까지 국내 조강능력 3,200만t 체제 구축을 본격화했다. 지금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세계경제의 초특급 태풍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공략도 적극적이다. 세계 최대의 철강생산ㆍ소비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산 60만t 규모의 스테인리스 제강ㆍ열연공장 설립계획을 확정했다. 아울러 대중국 투자사업의 시너지를 높이고 체계적인 사업추진을 위해 2003년 11월에는 포스코-차이나를 설립하기도 했다.중국 외에 다른 나라 진출도 적극 꾀하고 있다. 철강 원료를 보유하고 있는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인도와 브라질 등에 제철소를 만든다는 계획 아래 건설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대대적인 사업추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특히 외국인투자가들은 ‘혹시나’ 하는 우려의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회장은 외국인들에게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 확대가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설득, 동의를 받아냈다.이회장은 성장과 혁신은 또 다른 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다. 혁신 없는 성장은 모래성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외적인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혁신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6시그마다. 전통적인 철강산업에 IT를 접목해 생산ㆍ구매ㆍ판매 등 경영 전반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특히 이회장은 “포스코 하면 6시그마를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6시그마를 강조한다.이와 함께 프로세스 혁신(PI)에도 적극적이다. 조업 프로세스를 웹 기반으로 통합했으며 균형성과표(BSC)ㆍ고객관계관리(CRM) 등 6개 경영관리분야 시스템을 가동하는 제2기 프로세스 혁신을 차질 없이 수행하고 있다. 또 전사 스태프 부문을 대상으로 업무개선 전담조직을 도입하기도 했다.투명한 책임경영체제 강화도 이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시대인데다 외국인투자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투명성이 떨어지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을 종전 8대7에서 9대6으로 대폭 확대, 이사회 독립성과 주주 권익을 강화했다. 또 사외이사 중심의 회의 운영규정을 신설하고 사외이사 후보 추천자문단을 만들어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였다.이회장 취임 이후 포스코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경영체제를 만들어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 성과도 대단해 2004년 3분기 순익이 1조원을 넘어서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적인 철강 시황 호조에 따른 판매량 증가와 제품가격 강세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제품의 고급화는 물론 6시그마에 의한 지속적인 개선활동 효과도 경영 호조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2004년 3분기까지 누계 매출액은 14조1,84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매출액 14조3,593억원을 육박했고, 순이익은 2조6,47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보다 오히려 6,600여억원이 많다. 특히 자기자본비율이 75.8%로 지난해 70.4%보다 재무구조가 더욱 건실해졌다.2004년 전체 전망도 밝아 조강생산량이 최초로 3,000만t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매출액은 19조4,900여억원, 영업이익은 4조8,000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상 최대 규모다.이회장은 일찍이 박태준 전 회장으로부터 ‘미래의 CEO감’으로 인정받아왔다. 대학시절 스승인 서울대 윤동석 교수(93년 작고) 권유로 유학을 포기하고 69년 포스코에 입사한 이후 줄곧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며 착실하게 승진해 왔다.포스코 부사장을 지내기도 한 윤교수는 당시 “철강을 지배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 우리나라에 일관제철소가 성공하려면 제대로 공부한 인재가 필요하다”며 이회장을 강력히 이끌었다고 한다.경영자로서 이회장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다. 쉬지 않고 채찍질하고 새로운 것을 익힌다. 또 임원시절부터 일과가 끝나거나 휴일에는 거의 비서를 대동하지 않으며, 아침 출근시간도 한결같다. 외부에는 너그럽고 안으로는 철저한,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인 셈이다.또한 이회장은 금속공학과 출신답게 ‘쇠박사’로 통하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경영, 판매 등의 분야에 더 많이 근무를 해 회사 전반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그가 거친 자리만 해도 수출부장, 경영정책부장, 신사업본부장 등 다양하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장기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등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특히 이회장은 균형감각이 탁월한 경영자로 정평이 나 있다. 공대를 나오고 현장경험도 오래했지만 지금도 그는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를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 자금관련 감각이 뛰어나다. 다양한 일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이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이회장은 다소 특이하게 CEO로서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역사의식을 꼽는다. 최고경영자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자세를 갖고 있지만 않으면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 36년간 온갖 풍파를 이겨내며 포스코를 지킨 것도 그렇고, 지금 미래를 위해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역사를 생각하는 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이구택 포스코 회장약력 : 1946년 경기도 김포 출생. 64년 경기고 졸업. 69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69년 포항제철(주) 입사. 82년 수출부장. 86년 경영정책부장(부소장). 88년 이사. 96년 부사장(포항제철소장). 98년 대표이사 사장. 2003년 3월 (주)포스코 대표이사 회장(현). 2003년 4월 한국철강협회 회장(현). △수상: 2003년 4월 제18회 신산업경영대상(올해의 신산업경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