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서울 코엑스에서 국제 규모의 익스트림스포츠(X스포츠)대회가 열렸다. X스포츠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가지 묘기를 펼치는 레저스포츠를 통칭하는 말이다. X게임이라고도 하며 어그레시브 인라인과 BMX(Bicycle Motocross), 스케이트보드 등 B3가 대표종목이다.‘LG액션스포츠 싸이언 챔피언십’(LG Action Sports CYON Championships)이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액션스포츠는 LG전자측에서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익스트림스포츠를 새롭게 정의한 말이다. 이 대회는 세계 익스트림스포츠 주관협회인 미국 ASA(Aggressive Skaters Association)가 진행하는 공식 프로투어 대회로, 국내에서는 처음 열린 행사다.지난해 11월 미국 LA에서 제1회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LG전자는 올해 중국과 한국에서 예선전을 치른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각 대륙별 예선전과 본선대회를 단계적으로 열 계획이다. 회사측은 이 같은 액션스포츠이벤트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스포츠마케팅을 확대해 간다는 의도다. 특히 이 액션스포츠 행사는 DJ배틀, 힙합밴드 공연 등 신세대의 도전의식을 반영한 문화행사와 함께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그렇다면 스포츠마케팅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보수성향의 대기업이 이런 파격적인 마케팅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행사를 기획한 오한범 해외마케팅 지원그룹 과장(30)은 “신세대에 맞춰가기보다 신세대가 따라올 수 있는 트렌드를 창출해내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휴대전화라는 첨단기기를 팔기 위해서는 ‘Reading the Trend’보다 ‘Leading the Trend’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실제로 이 행사는 당시 지상파TV 등 많은 매체의 주목을 받아 성공적인 이벤트로 기록됐다. 미국에서 이벤트를 진행한 지난해의 경우는 행사 참가자의 반응이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하지만 LG전자가 이처럼 액션스포츠 마케팅에 전력을 쏟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X스포츠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사실상 LG전자 역시 해외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기획한 액션스포츠 마케팅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에도 퍼진 셈이다.X스포츠는 태생부터 야구나 축구 등의 기존 스포츠 종목과 다르다. 사람들의 취향 변화에 따라 새로운 종목이 끊임없이 형성될 수 있는 게 X스포츠다. 예컨대 BMX가 모터사이클로, 스케이트보드가 웨이크보드나 마운틴보드로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X스포츠와 관련된 협회나 공식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한국 B3연합회 정도다.오락성 위주로 모인 동호회가 국내 X스포츠를 유지하는 틀이기 때문에 프로선수를 수용할 시장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종목별로 프로선수는 열손가락에 꼽힌다”는 게 한 X스포츠 동호회 운영자의 말이다.그나마 국내 X스포츠 마니아들이 활동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X스포츠도 미국의 그것이 밟아온 역사를 뒤따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미국의 경우 스포츠채널 ESPN이 90년대 초 ‘X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X스포츠 시장의 잠재력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즉 미디어와 스타마케팅이 결합해 이것이 게임이나 레저용품시장 등으로 옮아간 것이다.ESPN을 통해 스타로 떠오른 스케이트보더 토니 호크가 대표적인 예로 그는 비디오게임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X스포츠의 영향력이 영화계로까지 미쳐 스노보드 등 X게임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바로 이 같은 해외사례와 비슷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미 LG전자의 액션스포츠 이벤트가 TV를 통해 중계됐으며 X스포츠를 다룬 영화가 현재 제작 중이다. 내년 초 개봉 예정인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은 인라인스케이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무엇보다도 X스포츠에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그 폭발력 때문이다. X게임의 한 종류로 분류됐던 스노보드가 최근 대중적인 레저스포츠로 확고히 자리잡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몇 년 전만 해도 소수 마니아층에서 즐기는 X게임으로 여겨졌던 스노보드는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더욱이 대중가수 서태지의 스노보드 패션이 인기를 끌면서 스노보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용평스키장에 중ㆍ상급자 스노보더를 위한 하프파이프가 설치돼 X스포츠의 대중화를 앞당기고 있다.따라서 B3를 중심으로 한 X스포츠 관계자들은 BMX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에 많은 기대를 품고 있다. 특히 X스포츠는 젊은층의 문화와 적절하게 어울려 녹아들 때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X스포츠 프로선수 관리와 관련, 컨설팅을 맡고 있는 전상철 한국B3연합회 매니저는 “비틀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 녹음을 거부당할 정도로 파격적인 그룹이 아니었느냐”며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후에 대중적인 음악으로 자리를 잡은 것에서 X스포츠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고 조심스러운 기대를 나타냈다.국내 X스포츠 마케팅의 대명사 LG전자는 앞으로 5년간 ‘LG 액션스포츠 챔피언십’의 메인타이틀 스폰서십을 맡기로 계약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이 “X스포츠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초기단계에 스폰서를 맡게 돼 행운”이라고 자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INTERVIEW / 인라인스타 궉채이“인라인 경기 위상 더 높아졌으면”“사진촬영은 많이 해 봤지만 광고촬영은 처음이라 많이 떨렸어요.”X스포츠 범주에 들어가는 인라인스케이트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트’로 묘기를 부리는 스케이팅을 말한다. 일반인이 즐기는 평범한 인라인스케이트와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인라인스케이트 요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궉채이 선수(17)는 엄밀히 말해 X스포츠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X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체는 대개 궉선수의 상품가치 역시 높이 산다. 궉선수는 이미 지난 4월부터 기아자동차의 여자 인라인팀 선수로 활약 중이며 가을부터는 기아차 ‘쎄라토’의 광고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전이경 선수가 금메달 따는 장면을 보고 쇼트트랙에 관심을 가졌다”는 궉선수가 쇼트트랙을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인라인에 입문한 사연은 꽤 잘 알려진 얘기다.“제가 운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인라인 시합이 있긴 했지만 비인기종목이라 잘 몰랐어요. 하지만 하다 보니 발에 바퀴를 달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인라인의 쾌감이 생각보다 무척 좋았어요.”그녀는 “다이어트에도 좋다”며 인라인예찬론을 이어갔다. 특히 철인 3종경기의 하나일 정도로 힘든 경기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는 게 궉선수의 말이다.네티즌 사이에서 ‘얼짱’으로 먼저 알려진 궉선수는 “외모보다는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오늘날 나를 있게 한 힘”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한 후배가 경기를 마치고 가진 인터뷰에서 ‘궉채이 누나처럼 되고 싶다’고 한 걸 봤어요.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지 못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궉선수는 “모든 운동은 다 같다”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제법 어른스러운 조언까지 덧붙였다.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딛고 대기업의 ‘빵빵한’ 스폰서를 받게 된 뒤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기분이 좋아요. 물론 안 좋은 점도 있긴 해요. 평소에는 사인해 주는 게 어렵지 않지만 훈련하는 도중에는 좀 힘든데….”궉선수의 한 인터넷 팬카페는 11월29일 기준으로 1만9,885명을 기록했다. 이 같은 팬의 뜨거운 관심은 궉선수가 더 분발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가을에 있었던 전국체육대회에서 경기 중 넘어졌는데 주변의 기대가 느껴지니까 얼른 일어나게 됐어요. 그래서 다행히 3등으로 들어올 수 있었죠.”‘인라인 하면 궉채이’라는 주변 시각 때문에 친구들에게 다소 미안하기도 하다는 궉선수는 “내가 조금씩 성장해 갈 때 인라인의 위상도 같이 높아져서 친구들과 함께 주목받을 수 있는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