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0년대의 어느 날, 대입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하나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컴퓨터 게임에 맛을 들인다. 공부 대신 PC방 ‘죽돌이’로 전락한 그는 결국 대학입시에 낙방한다.또 다른 고등학생은 좋아하는 누나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마술에 손을 댔다가 그 마력에 사로잡힌다. 부모를 속여가며 마술연습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는 입시에서 두 번의 고배를 마신다.소풍 때 친구의 멋진 춤이 한없이 부러웠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젊음을 춤에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결국 밤낮없이 춤에 미쳐 성적은 바닥을 기고 동네에서는 양아치 취급을 받는다.도무지 좋게 봐주기가 어려운 이 문제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올해 24살이 된 PC방 ‘죽돌이’는 연봉 2억원을 받으며 50만여명의 팬을 거느린 전설적인 프로게이머가 됐고, 삼수생은 대한민국 최고 마술사로 각광을 받으며 26살에 억대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동네춤꾼은 최근 독일에서 열린 세계 힙합ㆍ브레이크댄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제일의 비보이(브레이크댄서)로 명성을 떨치는 댄스그룹의 리더가 됐다.다름아닌 프로게이머 임요환, 마술사 최현우, 갬블러 리더 김정대의 이야기다.이들은 단순히 청소년들의 문화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경지를 넘어 새로운 직업군을 창출하고 관련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조만간 이들의 경제적 가치가 ‘한류’ 못지않은 매머드급 태풍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생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제도권 밖의 신세대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면서 가치 있는 틈새시장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이에 따른 파급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들은 결코 놀고먹으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꽃다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자유와 즐거움을 자기 꿈에 몽땅 쏟아부은 것이다. 게이머가 되기 위해 PC방에서 매일 10시간 이상씩 ‘강훈’을 해야 했고 서양인에 비해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 비보이들은 지하주차장에서 몸을 다쳐가며 적게는 5~6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 이상 땀을 흘려야 했다. 이보다 더 힘들었던 건 어른들의 무관심과 냉대였다. ‘공부 못하는 놈들이나 하는 소일거리’에 미쳐 있는 자식들이 부모들 눈에도 고울 리가 없었다.연습장소가 없어 동네 공터나 지하철역을 떠돌던 10대들은 불량배로 오해받기 일쑤였고, 동네에 사고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지금과 같은 성공도 처음에는 기대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들은 두려움 없이 열정에 몸을 맡겼다. 또래 친구들이 다른 재미거리를 찾아다닐 때도 공사판 막노동도 불사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이들이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과연 무엇이 이들에게 그 힘든 길을 가게 했을까? 이들을 이해하려면 요즘 신세대들의 의식부터 들여다봐야 한다.요즘 신세대들의 가치관은 기성세대들과 크게 다르다.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여전히 교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비주류들의 목소리도 눈에 띄게 커졌다. 1조원대의 경제가치를 창출한다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위상이 달라진 덕에 연예인 지망생이 크게 늘고 있는 현상도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다. 무엇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죽기 살기로 파고드는 ‘폐인 문화’가 신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보급에 따른 온라인 커뮤니티의 확대는 좋아하는 것을 함께 연구하고 연습하는 ‘문화게릴라’를 양산하고 있다.1980년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 관심사에 깊이 천착하는 ‘오타쿠’문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대중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강국으로 자리잡은 일본의 경쟁력에는 이들 오타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 한국의 신세대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문화 폐인’들도 대중문화산업의 저변을 넓히고 깊게 해주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한국의 신세대들도 이제는 문화 너머의 산업으로 눈길을 던지고 있다. 마술사 이은결과 최현우는 전문마술업체 설립에 참여했고, 비보이들도 본격적인 프로화를 꾀하고 있다.“우리, 더 이상 춤으로는 이룰 게 없다. 이제는 비즈니스다. 비보잉이 하나의 문화장르로 굳건하게 자리잡을 때까지, 파생 비즈니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때까지 우리의 댄스는 계속된다”는 갬블러팀의 선언처럼 신세대 문화게릴라들은 다음 목표를 향해 포문을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