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거래는 금액 단위가 크기 때문에 언제나 분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게다가 파는 사람은 높은 가격을, 사는 사람은 낮은 가격을 원하기 마련이어서 서로 만족하는 거래를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특히 수요자들을 엮어 거래관계를 만드는 공인중개사는 늘 분쟁과 사고위험을 염두에 둬야 하는 입장이다. 중개사 잘못으로 거래에 문제가 생기거나 도덕적 판단을 요하는 경우가 적잖은 까닭이다.최근 들어 부동산경기가 가라앉고 중개업소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래 관련 사고가 한층 빈발하고 있다. 무리하게 거래를 성사시키려다 보니 편법이 동원되고 탈법도 횡행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무자격 기획부동산 등이 활개를 치면서 부동산중개업계 전반으로까지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공인중개사가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부동산 전문변호사로 활동 중인 최광석 로티스닷컴 변호사는 “부동산거래가 복잡해지면서 거래사고나 범죄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면서 “거래 전반을 책임지겠다는 중개사의 확고한 프로의식과 피해 예방 및 구제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피해 예방 위한 제도적 뒷받침 절실’#1. 지난 2002년 10월 회사원 A는 서울 성동구의 재개발 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했다. 중개업자 B는 사업 때문에 바쁘다는 원소유자를 대신해 대리인 C에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등을 갖추도록 해 법적 하자 없이 거래를 마치게끔 했다. A가 계약을 통해 지불한 돈은 프리미엄 6,000만원과 이미 납부된 중도금을 합쳐 총 1억1,000만원.사건의 전말은 2년 후에야 드러났다. 아파트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명의변경 문제로 원소유자와 연락을 하게 된 A는 자신이 대리인 C에게 건넨 1억1,0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이 원소유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중개업자 B는 대리인 C가 거래대금을 부풀린 것을 알고도 매수인 A에게 소개, 거래 대금 차액을 C와 나눠 가진 것이다. A는 B와 C를 횡령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다.#2. 지난해 1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입주한 A는 현재 중개업자 B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계약에 앞서 B는 A에게 “채권 최고액 4,500만원의 근저당권 1건만 설정돼 있고 실제 채무액은 1,000만원에 불과하다”며 “보증금 반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주택의 대지에 대한 등기부등본 대신 건물등기부등본만을 보여주면서 “직접 확인했으니 안심하라”고 말했다.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중개업자의 말과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대지상에 채권 최고액 1억5,000만원의 근저당권을 비롯, 대지와 건물에 채권 최고액 4,500만원의 근저당권이 각각 설정돼 있었던 것이다. 계약 당시 중개업자 B는 친분이 있던 집주인의 거짓말을 믿고 등기부등본 등을 확인도 않은 채 물건을 중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A는 선순위 근저당권자와 선순위 임차인들에게 경락대금이 전부 배당돼 버려 보증금 3,500만원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3. A는 2년 전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동창 B의 권유로 매입한 경기도 안양시의 오피스텔 한 채 때문에 골머리를 알고 있다. 총 1억2,000만원을 투자한 오피스텔은 완공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텅 비어 있다. 계약 당시 B는 임대를 통해 월세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며 ‘세입자 책임 중개’를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계약 직후 연락을 끊었다.A는 건설사와 분양대행사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오피스텔이 다단계방식으로 판매됐음을 알게 됐다. 분양대행사가 중개업자 B 등과 계약을 맺고 미분양된 오피스텔 한 채당 1,000만원의 프리미엄을 주겠다는 식의 계약을 맺은 것이다. B는 다른 중개업자들과 결탁, 물건을 공유하면서 프리미엄 나눠먹기에 들어가 결국 A에게 오피스텔을 안겼다. 여느 다단계판매망에서처럼 최종 구매한 A가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이다.이들 사례는 모두 공인중개사가 부도덕한 취지로 계약을 중개하거나 업무상 부주의에 따라 벌어진 사고다. 공인중개사가 연루된 민형사 사건의 경우 문서나 현장 확인 미흡으로 벌어진 문제, 고지의무를 지키지 않아 생긴 사고가 가장 많다.또 공인중개사가 과다한 중개수수료를 요구하는 행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을 때 승가계약(가격을 올려 판 후 차액을 중개수수료로 취하는 것) 요구 등도 비일비재하다. 계약체결시점에에만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중도금 및 잔금 지급 시점에 물건 변동사항을 확인하지 않아 경매가 진행되는 등 중개사고가 발생하는 사례도 적잖다.관련 판례는 공인중개사의 과실이 확실한 중개사고에서 그 책임을 상당히 엄하게 묻는 추세다. ‘의무’를 방기하거나 ‘실수’한 경우 손해 금액의 50%이상을 변상하도록 하는 판결이 대부분이다.이외에도 부동산중개사고 유형은 다양하면서도 내용이 복잡한 경우가 많다. 큰돈이 걸려 있고 거래당사자와 중개업자, 대리인 등이 엉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중개사고에 사기와 공문서 위조 등 범죄가 결합하면서 사고 발생률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발생 신고된 중개사고는 지난해 1/4분기에 비해 3배 가량 늘었다.협회는 가장 많이 일어나는 중개사고 유형을 △주민등록증 위조에 의한 사기 △소유자 위임장 미확인 △신용대출에 따른 포괄근저당권 미확인 등 세 가지로 나눴다.주민등록증 위조에 의한 사기의 경우 선량한 소비자와 공인중개사가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월세 세입자가 주택 소유자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소유자로 가장하고 전세계약을 체결, 전세보증금을 횡령한 후 잠적하는 것이다.또 사기범이 아파트 소유자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주변보다 싼 가격에 급매물을 내놓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횡령하는 사고도 잦다. 이 경우 등기부등본과 소유자의 주민등록증이 일치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도 별 의심 없이 계약을 추진하는 맹점이 있다.위임장 미확인 사고도 빈번하다. 소유자가 아닌 제3자와 계약을 맺으면서 대리권 유무를 확인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를 말한다. 주로 소유자와 부부관계 또는 부자, 모자 등 친인척 사이에 자주 발생하는 게 특징이다.법적으로 소유자의 위임을 받지 않고 계약을 체결한 것은 무효인데다 공인중개사가 계약을 중개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가족관계라고 소홀히 임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잖다.신용대출에 따른 포괄 근저당권 미확인 사고는 매도자의 은행 대출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자주 발생한다. 별도의 근저당권 설정 없이 포괄 근저당권으로 설정되는 신용대출을 공인중개사가 확인하지 않고 단순히 설명만 했을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이런 중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확인에 또 확인’을 거듭하는 게 최선이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는 인터넷 고지를 통해 “중개대상물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ㆍ설명을 통해 중개사고 예방할 수 있다. 모든 중개대상물은 확인설명서를 발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최광석 변호사는 “공인중개사는 전문직업인 만큼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중개사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가격 절충’ 정도에 두는 경우가 많아 아쉬울 때가 많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책임중개’를 위해선 법률적 지식까지도 든든하게 갖출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중개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매수인에게 권원보험 가입 등을 권유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반면 고객인 중개의뢰인의 요구로 문제가 발생했지만 책임을 공인중개사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적잖다. 박애영 대한공인중개사협회 연구원은 “고객이 편의를 이유로 절차를 생략하라고 요구, 이를 받아 들였으나 뒤늦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꽤 많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의뢰인이 과세를 피할 목적으로 이중계약서를 요구하거나 제3자 대리인과 계약할 경우 위임장 등 절차가 귀찮다며 생략하도록 요구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또 미등기 전매나 재개발 입주권 거래에서 위험성을 고지한 중개사에게 사고의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다.박연구원은 “공인중개사 스스로 과실을 줄이고 정직성을 바탕으로 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중개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