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세 번의 도전 끝에 간신히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서울 성수동 김모씨에게 지난해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어렵사리 연 사무실 문을 6개월 만에 닫게 된 것. 창업만 하면 월 500만~600만원은 손쉽게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명예퇴직 후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창업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따낸 자격증을 놀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열렬한 시청자이기도 한 김씨는 요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남긴 두 마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다시 출발선상에 섰다.“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生卽死 死必卽生)얼마 전 모 인재파견업체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취득하고 싶은 자격증’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공인중개사(24.5%)를 선택한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취득이유로는 ‘퇴직 후 생계보장 차원’(43.8%), ‘부업이 가능하기 때문’(24.0%),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18.2%)이라고 대답했다.바야흐로 공인중개사시험이 열풍을 넘어 폭풍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공인중개사는 ‘사오정’, ‘오륙도’의 파고를 겪고 있는 40~50대에게는 ‘퇴직 후 담보용’, 청년실업으로 인해 몸살을 겪고 있는 20~30대에게는 ‘실업 탈출용’이며 명예퇴직을 앞둔 남편들을 둔 주부들에게는 ‘부업용’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지난 2~3년간 저금리 여파로 부동산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공인중개사 열풍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이러다 보니 각 학원마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대비하려는 수험생들로 가득차고 관련 출판서적들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시험을 통과한 공인중개사 합격자들은 우선 정부가 정한 사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교육시간은 4일 총 32시간(1일 8시간)으로 정부에서 공인한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와 대한공인중개사협회 두 곳에서 실시된다. 부동산공법, 부동산경영실무, 조세실무, 부동산거래정보망, 권리분석, 중개실무, 개설등록 절차 등 개업 전에 필요한 실무를 중심으로 교육이 실시된다. 이밖에 공인중개사로서의 직업윤리 등도 강의하며 강사로는 현직 대학교수나 행정관청의 담당공무원 등이 주로 나선다. 사전교육을 이수하면 1년 안에 반드시 창업을 해야 한다. 만약 사전교육을 듣고 1년이 지나 창업하게 되면 또다시 사전교육을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폐업을 한 뒤 재창업을 해도 역시 사전교육은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사전교육을 마치면 해당 관청에 사무실 개설 등록을 신청하고 이후 일주일 이내 업무보증설정을 하면 중개업소 개설을 위한 행정적 절차는 완전히 끝난다.하지만 예비창업자들에게는 이때부터가 가장 고민되는 시기다. 사무실 입지야 가장 발전전망이 좋은 곳을 선택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꾸려나가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무실을 마련하더라도 어떻게 홍보해 고객과 매물을 확보할지가 막막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같은 경우 초보 공인중개사들은 크게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전문 부동산 프랜차이즈를 이용하는 것과 중개법인에 들어가 실무능력을 쌓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단 부딪히고 보자’는 식의 ‘맹장(猛將)형’ 공인중개사들 중에는 전문 프랜차이즈 간판을 걸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무실을 여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위험부담이 크므로 드문 케이스다.전문 프랜차이즈 중개업체들을 이용하게 되면 인터넷을 통해 홍보 및 매물등록을 할 수 있다. 또 해당 부동산 홈페이지도 개설해 주고 있다. 중개업무 전반에 대해서 관리해 준다는 점에서 초보 중개업자에게는 이점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각 업체들이 정한 연간회비와 가입비 등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현재 부동산중개업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는 부동산114, 닥터아파트, 부동산플러스, 부동산뱅크, 스피드뱅크, 부동산써브, 유니에셋,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내집마련정보사 등이 있다. 이들 업체는 각각 연회비와 가입비, 지원 서비스 면에서 차이가 난다.부동산114는 2년을 기준으로 가입비로 220만원을 받으며 연회비는 165만원이다. 부동산뱅크는 가입비, 연회비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2년 의무가입을 조건으로 330만원만 내면 된다. 스피드뱅크는 가입비와 연회비가 각각 110만원이다.경기침체로 휴폐업률이 증가하자 최근 들어서는 아예 대형중개업소에 취직해 실무를 쌓는 ‘지장(智將)형’ 공인중개사들도 늘고 있다. ‘실장’이라는 직함으로 통하며 고객을 확보하며 대개 월급제 또는 계약건당 비율제로 수입을 얻는다.경기도 일산 장항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당초 서울 강서구 쪽에 사무실을 마련할 생각이었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일단 실무적인 부분부터 배우자는 생각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취업했다”면서 “일은 고되고 수익은 적지만 창업을 위한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업무에 임한다”고 말했다.주로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자격증을 획득한 공인중개사들은 각 부분별 특화된 전문 부동산업체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영역도 빌딩 오피스 중개업체는 물론 토지, 경매, 오피스텔에까지 다양하다. 이 같은 업체들은 유명 취업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원주택 단지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H사 고민철씨는 “개발부터 판매까지를 전담하기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들 대상으로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5명 채용에 무려 200명이 넘게 응시했다”고 말했다.최근 들어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 전문교육강좌를 이수하는 경우도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아파트 등 주택만을 취급하기에는 너무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강좌에는 갓 자격증을 딴 공인중개사들 외에도 이미 한 번 이상의 쓰라린 실패를 맛본 사람들까지 몰린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와 대한공인중개사협회 외에도 부동산114와 스피드뱅크 등에서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한 강좌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의 경우 컨설턴트, 경ㆍ공매, 부동산개발, 풍수지리, 창업실무과정, 주택ㆍ상가 임대차, 공법ㆍ세법 등의 강좌를 개설해 놓고 있다. 또 대한공인중개사협회는 부동산 창업중개실무, 토지개발최고위전문가과정, 경·공매, 부동산개발컨설팅, 풍수지리, CPM(부동산자산관리), CIPS(국제부동산중개사), 부동산법률 등의 실무강좌를 마련한 상태다.또 부동산114에서는 부동산중개업 창업과정을 개설해 창업에 따른 전반적인 업무를 강의하고 있다. 부동산114 교육팀 이경미 대리는 “공인중개사 합격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영업방식이나 사무실 운영방식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전문화되고 체계화되고 있다”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과 인근 중개업소와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 역삼동 하나공인 이주성 대표도 “공인중개사 합격 이후 컴퓨터 운용부터 마케팅까지 배워야 할 것들이 오히려 더 많다”며 “자격증은 사무실을 개설해도 좋다는 뜻이지, 전반적인 실무를 안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실무교육 필요성을 강조했다.돋보기 중개업 창업 서적‘선배의 충고’를 읽어라서점에 출간돼 있는 부동산중개업 창업, 경영관련 서적은 총 90여권 정도다. 출간된 대부분의 책들은 부동산중개업법과 관련한 법률적 지식만을 전달해줘 현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저자들도 현직 강사나 부동산 재테크 카페 대표들이다. 실무적인 내용이 부족하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하지만 최근 공인중개사가 크게 늘고 휴폐업률도 급증하면서 창업부터 운영까지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들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 책은 대개 부동산중개업으로 성공한 현직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숨은 노하우를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기술돼 있다.신간 <부동산 고수들의 숨은 기술비밀과외>는 부동산중개 실무를 다룬 ‘부동산 숙달하기’의 후속편으로 지난 10년간 저자가 쌓은 각고의 중개기술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책은 중개업무를 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잠실에서 현업을 하고 있는 저자는 “공인중개사야말로 배짱과 결단력, 자본력, 과학적 분석능력, 냉철한 판단력, 동물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변수들을 체계적으로 쉽게 설명했다”고 밝혔다.<성공하는 부동산업 창업의 길>은 현재 대한공인중개사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김부원씨 외에 현직 공인중개사들 7명이 공동집필한 실무지침서이다. <성공하는…>에서는 부동산 창업의 의의와 현황, 개업 후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점까지 거의 모든 분야들을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내용 중 ‘창업 후 나의 첫 실수’에서는 저자들이 직접 털어놓은 자기반성 및 고백이 담겨져 있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부동산 인터넷서점 ‘리북스’ 진재형 대표는 “실무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실무적인 설명을 곁들인 해설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다”면서 “이들 서적은 창업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