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학 후 벤처기업을 설립한 한국인 기업가가 미국 유력 과학기술전문지에서 선정한 100대 청년 혁신가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미국 매사추세츠 벌링턴에 위치한 밀레니얼넷의 이석우 대표(34ㆍ창업자 및 기술부문 대표ㆍChief Technology Officer)다.MIT에서 간행하는 과학기술 전문 월간지 <테크놀로지리뷰>는 매년 35세 미만의 주목할 만한 100대 혁신가를 선정한다. 컴퓨터, 의약, 나노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혁신을 이뤄낸 연구자, 기업가 등이 대상이다. 밀레니얼넷은 지난 9월 컨설팅회사인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이 수여하는 ‘이동통신기술대상’을 수상했다. 4월에는 다우존스벤처와이어가 선정하는 ‘투자자가 선택한 10대 기업’에 들었다. 최근에는 미국 ISA(Instrumentation Systems and Automation societyㆍ계측자동화협회)에서 주는 더글러스애닌공로대상(Douglas H Annin Award)을 받았다. ISA는 미국의 계측산업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협회다. 매년 계측자동화에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한다. 이중 더글러스애닌공로대상은 최고의 상이다. 해당자가 없으면 수상자를 선발하지 않는다. 이석우 대표가 밀레니얼넷을 설립한 지 4년여 만의 일이다.이석우 대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선 마이크로 센서 네트워크 시장에서 두드러진 기술혁신을 이뤄냈기 때문이다(별도기사 참조). 저전력 무선 마이크로 센서 네트워크 시장은 급성장하는 분야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시장조사기관 온월드는 지난해 시장규모가 1억5,0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7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월드의 마레서 홀터 연구담당 이사는 “밀레니얼넷의 저전력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밀레니얼넷의 2차 투자를 주도한 BCE캐피털의 짐 올란도 이사는 “밀레니얼넷은 무선 마이크로 센서 네트워크 시장의 사실상의 리더”라며 말했다.이석우 대표가 미국 매사추세츠에 밀레니얼넷을 설립한 건 2000년 6월이다. MIT에서 기계공학박사 학위 취득 후 바로 회사를 설립했다.유학생의 신분으로 사업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사업을 강하게 권유했다. 동업까지 제안했다. 이석우 대표의 연구성과가 상업성이 높다고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이대표의 로봇 제어기술에 대한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상품을 개발, 회사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창업자금은 3만달러로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첫 1년은 직원 4명이 근근이 회사를 유지할 정도밖에 안됐다. 자금 및 고객유치를 약속했던 지도교수도 1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이석우 대표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MIT 지도교수가 사업 권유그러던 중 고객이 원하는 게 밀레니얼넷의 제품방향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장은 무선 네트워크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표 전공은 센서였지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이대표는 시장에 기술을 맞추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렸다. 대신 기술에 관한 모든 문제를 홀로 풀어야 했다. 그러나 난관이 오히려 득이 됐다. 네트워크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혁신을 이룬 것이다.이대표는 업계 최초로 극 저전력 무선 마이크로 센서 네트워크 ‘아이빈’(i-Bean)을 개발했다. 아이빈은 엄지손톱만한 센서를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한 제품이다. 동전 크기의 리튬전지 하나로 5년에서 10년까지 별도의 관리 없이 작동한다. 기존에는 2주에서 4주 작동이 고작이었다. 이대표가 전기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대표의 전공이 센서였기 때문이다.센서와 네트워크는 기술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기존에는 네트워크는 그대로 두고 센서를 바꾸려고만 노력했다. 이대표는 정반대로 접근했다. 센서에 네트워크를 연결하려고 했다. 네트워크를 센서에 맞게 새로 구성한 것이다.MIT 지도교수가 사업권유 전력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였을 뿐만 아니라 센서 네트워크 구성을 사람의 도움 없이 기계 스스로 하는 것도 특징이다.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는 센서의 수도 수백개 이상 확장할 수 있다. 센서수가 100개를 넘어서면 네트워크 구성이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대표는 “기술적으로는 1,000개 이상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찾는 고객이 없어 개발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1년간의 연구 끝에 시제품 만들고 특허도 출원했다.그러나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다고 사업이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대표는 ROI(Return on Investmentㆍ투자회수율)라는 개념도 모르는 엔지니어였다. 게다가 2002년은 벤처투자가 상당히 위축돼 있을 때였다. 인터넷 거품 붕괴와 증권시장 하락 여파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수십곳을 두드렸다. 결국 2002년 12월 3개 벤처캐피털로부터 6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독특한 기술과 시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5월에는 추가로 1,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현재 밀레니얼넷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관련제품을 공동개발해 일부는 이미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이대표가 MIT에 공부하러 온 지 9년만의 결실이다.처음 미국에 공부하러 온 1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40시간 일하고 8시간 자면서 공부하기를 반복했다.지도교수와 함께 공부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교수가 지도학생 3명을 불렀다. 400페이지 가량 되는 제어이론에 관한 책을 툭 던져주더니 이틀 후에 토론하자고 했다. 인도에서 온 동기는 한술 더 떴다. 내일 저녁에 미리 공부할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대표는 그게 MIT 분위기인 줄 알고 밤을 새워 겨우 읽어갔다. 그 인도 친구는 하루 만에 다 읽고 미리 교수에게 요약까지 해서 보냈다. 충격이었다.천재들과의 경쟁과정은 고됐지만 의미도 있었다. 논문과 교재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대학자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고체역학분야의 대부와 같은 크렌달 교수를 만났다. 논문과 교재에서 이름으로만 접했던 대학자를 직접 만난 게 감격스러웠다. 저서를 읽었고, 존경한다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대학자는 20대 중반의 석사과정 학생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공부와 인생을 함께 배우는 순간이었다.공부방법도 학부 때와는 많이 달랐다. 교수가 아침에 전화를 걸어 어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며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불러 그 아이디어 분석하고 구현했냐고 확인했다. 교수는 높은 수준의 개념만 구성하고, 나머지는 학생 몫이었다. 학생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석사과정 때는 낯선 공부방법 때문에 고생도 심했다. 그러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공부는 이후 연구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이대표는 당초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기계공학을 선택했다. 뉴저지주립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있는 작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일찍부터 제어분야에 관심을 돌렸다. 94년에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최초로 마이크로 로봇 경진대회에 나가 은상을 수상했다. 영어는 대학 1학년 때부터 꾸준하게 공부했다. 유학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지만 영어는 꼭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이대표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캐즘(Chasm)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캐즘은 작은 협곡이라는 뜻인데 첨단기술기업이 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을 하기 직전의 고비를 말한다. 캐즘을 넘어야 시장이 자생력이 생겨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르게 된다.“밀레니얼넷은 캐즘 바로 앞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캐즘을 뛰어넘을 것임을 자신합니다. 문제는 캐즘을 뛰어넘는 기간입니다. 1년이냐 3년이냐에 따라 사업전략이 크게 바뀌기 때문입니다.”약력: 1970년생. 서울대 기계공학 졸업. MIT 기계공학 석사. MIT 기계공학 박사. <테크놀로지리뷰> 선정 청년혁신가 100인 중 한명으로 선정. 미국 ISA(Instrumentation Systems and Automationㆍ계측자동화)협회의 더글러스애닌계측산업공로대상 수상. 밀레니얼넷 창업자 및 기술부문 대표(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