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적 성매매 심각성엔 ‘공감’…왜곡된 성문화 바로잡아야

요즘은 직장인 2~3명만 모이면 흘러나오는 얘기가 행정수도이전 위헌 결정과 성매매특별법이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의견이 그만큼 분분하다는 방증이다. 사회 각계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 법률에 대한 의견은 찬반양론으로 나뉜다. 성매매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인 강지원 법률사무소 청지 변호사(55)와 ‘한시적 규제주의’를 주장하며 이번 특별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59)을 만나봤다. 두 사람은 매매춘에 반대한다는 입장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해결방식이나 그에 따른 부작용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게 엇갈렸다. 강변호사와 김 전 소장은 공통적으로 성매매가 근절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음성형 성매매를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강지원 법률사무소 청지 변호사성매매특별법을 놓고 말이 많은데요.당연히 있어야 할 법률 아닙니까. 왜 반대의견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 선진국 중 우리나라처럼 성산업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 또 있나요. 국내 성매매시장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엄청납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과 인성을 해치는 요소입니다.이 법률이 성매매의 음성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습니다.공공연히 이뤄지던 성매매가 단속을 피해 음성화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매매가 음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입니다. 60년대만 해도 100개가 넘었던 집창촌이 지금은 30여개 남짓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집창촌에 있던 성매매 여성이 지금 다 어디 있겠습니까. 음성화는 성매매의 ‘고급화’를 의미합니다. 좀더 나은 환경을 원하는 매매춘 수요자가 생기면서 고급화되고 이것이 바로 음성화입니다. 이번 특별법의 핵심은 업주와의 전쟁입니다. 성매매시장의 삼각 구도를 이루는 업주와 남성 수요자, 성매매 여성 중 자금력과 시설이 있는 업주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특히 음성화된 성매매시장의 업주를 추방하는 게 이 법률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당초 법안 취지 자체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그렇지만 현재 경찰의 단속은 집창촌에 집중돼 있습니다.법률시행 초기단계에서 이뤄진 계도용 단속입니다. 우선 집창촌을 깨뜨림으로써 업주에게 성매매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또 수요자인 남성도 각성시키는 선전효과가 있습니다. 이 단속으로 성매매가 계속 줄지는 않을 것입니다. 집창촌을 상시 단속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합니다.성매매 여성의 보건문제나 성폭력 증가 우려를 말하기도 하는데요.업주를 퇴출시키는 데 성공하면 자발적 매매춘 여성과 남성 수요자의 일대일 관계만 남게 됩니다. 자발적 성매매의 경우 여성 스스로 자신의 건강상태를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또 성폭력은 성매매 수준과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매매시장 규모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에서 성폭력도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결국 성매매 근절은 어렵다는 얘기입니까.이번 특별법도 성매매 근절보다 매매춘시장의 대폭 축소를 위한 것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강도ㆍ절도범을 잡는 특별법을 만든다고 해서 이런 범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시장축소만 해도 국제적인 망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성매매특별법 시행이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일부 의견도 있습니다.우리나라 성산업은 현재 ‘이상비대증’에 걸려 있습니다. 향락산업의 번성은 제 살 깎아먹기일 뿐입니다. 성매매시장을 대폭 줄이고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산적인 일에 써야 합니다. 해외 매춘관광과 외화유출을 연결짓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해외 매춘관광은 사실 새로운 현상도 아니죠.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접대방식을 대폭 바꾸고 접대비를 줄여 이를 공연, 전시 등 문화산업에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가족문화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개발돼야 이번 특별법이 장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압니다.입법주체인 국회의원과 여성단체의 성매매 근절을 향한 열정만은 높이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형국은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전쟁을 시작한 꼴입니다. 전쟁의 규모나 적의 특성을 미리 알아야 이기지 않겠습니까.그렇게 보는 이유는.우선 싸워야 하는 대상이 너무 많습니다. 전담 경찰은 고작 2,000명이지만 성매매 여성은 도처에 퍼져 있죠. 또 성매매 여성의 탈매춘을 돕는 정부 차원의 시스템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잠재적인 성매매 여성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올 상반기 10~30대 가출여성이 무려 1만4,000명입니다. 이들의 성매매시장 유입을 막을 대책은 있는지요. 이 법안만으로는 성매매와의 전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성매매시장을 축소하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음성화만 부추길 뿐입니다. 성매매는 크게 공개형과 음성형으로 나뉩니다. 공개형은 집창촌이 대표적인 형태로 생계를 위해 이 일을 하는 여성이 많은 게 특징입니다. 수요자 역시 밀입국자나 홀아비처럼 성으로부터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음성형은 인터넷을 통한 만남, 노래방, 보도방 등 말 그대로 몰래 숨어서 하는 성매매를 말합니다. 음성형의 경우 수요자도 사회지도층이고 매매춘 여성도 자발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특별법은 풍선효과만 만들 뿐입니다. 집창촌만 단속대상이 됨으로써 음성형 성매매와 관련된 이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죠. 성매매는 완벽하게 근절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국가도 매매춘이 전혀 없는 곳은 없어요.성매매의 음성화가 가져올 파장은.일부에서는 음성형 성매매가 이미 오래전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음성적인 성매매가 다소 늘더라도 크게 심각한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집창촌 성매매 여성 1명이 하루에 5명의 남성을 상대한다고 보고 이런 여성이 1만명 있다고 가정해보죠. 하루 5만건의 성매매가 주택가로 스며든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특히 음성형 성매매가 늘면 인권유린 사각지대도 깊어집니다. 올 여름에 일어난 유영철 사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요. 또한 특별법 시행으로 성폭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한시적 규제주의란 무엇인가요.성매매시장을 줄이려면 음성형은 없애되, 집창촌은 한시적으로 놔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게 한시적 규제주의입니다. 한강의 오염을 막으려면 정화조는 그대로 두고 폐수를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성매매 종사자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어린 나이에 벽돌공, 식당종업원 등을 전전하다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뛰어든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계에 대한 대책 없이 특별법을 시행함으로써 이들을 음성형 성매매로 내몰고 있는 격입니다. 윤락에 대해 이탈리아나 프랑스, 영국 등은 비범죄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의 성매매시장은 아주 미미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금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나 대만, 태국 등은 오히려 성매매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성매매를 줄이고 싶다면 처벌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집창촌을 잘 관리해 이곳 여성 종사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는 운동도 병행돼야 합니다.성매매 인구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종암경찰서장 시절 저도 처음에는 ‘성매매를 완전히 없애야겠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집창촌 실태를 파악하고 보니 이것이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미성년 성매매와 인권유린 문제를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여기에 온힘을 모았습니다. 미성년 성매매 근절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같은 전략을 세우고 전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성계가 벌이고 있는 성매매와의 전쟁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성공적인 탈매춘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죠. 저 역시 성매매를 줄이고 해당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몇가지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그중 한 가지는 내년쯤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저에 대한 여성계의 반감이 심하지만 저는 제가 가는 길에 확신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끝까지 계획을 실행해 나갈 것입니다.강지원 법률사무소 청지 변호사약력 : 1949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72년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76년 제18회 사법고시 합격. 89년 서울보호관찰소 소장. 97년 문화체육부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 2001년 어린이 청소년포럼 대표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약력 : 1945년생. 조선대 졸업. 70년 전남 광산경찰서 정보과 순경. 86년 서울경찰청 민원실장. 91년 서울경찰청 민원실장, 성폭력상담실장(경정). 2000년 서울시 종암경찰서 서장. 2001년 서울시지방경찰청 방범지도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