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규모 2010년 1천8백억 달러, 관련기업 싱글벙글

미국에서 이른바 ‘국토안보(Homeland Security) 비즈니스’가 급부상하고 있다. 9ㆍ11테러와 이라크전쟁 이후 테러에 대한 위협이 고조되면서 미국 정부의 국토안보 관련 예산이 급증, 이와 관련된 안보산업이 번창하고 있다.비행기, 선박, 자동차 등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연간 5억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서 사업가, 학생, 관광객 등 합법적 입국자는 제외하고 위조된 비자를 소지한 불법체류자나 테러리스트를 색출하기란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이처럼 어려운 임무를 맡기로 한 기업은 세계적 컨설팅기업인 액센추어다. 액센추어는 미국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외국인들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시스템 개발 계약을 미 국토안보부와 체결했다. 사업규모는 무려 100억달러. 미 국토안보부는 특히 여권과 비자를 활용, 테러리스트를 잡아내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9ㆍ11테러 이후 미국으로 입국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만이 국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내년도 국토안보부 예산을 올해보다 10% 인상한 402억달러로 늘려잡았다.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민간부문의 안보 관련 사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오는 2010년에 이르면 연간 안보 관련 시장규모는 무려 1,300억~1,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덕분에 올 들어 안보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S&P500 지수에 편입돼 있는 안보 관련 기업 13개 종목은 올 초 대비 20% 이상 주가가 올랐다. 다른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이 1% 내외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국토안보 비즈니스 업체들은 특히 오는 11월2일 미국 대통령선거를 가장 큰 사업 기회로 보고 있다. 보스턴, 뉴욕 등 주요도시에서 잇따라 개최되는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에 국제테러단체 알 카에다의 테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업 확장의 기회를 맞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7월 이후 존 애시크로포트 미 법무장관과 연방수사국(FBI) 등에서는 “테러와 관련한 믿을 만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미 대선을 겨냥한 테러에 대해 잇따라 경고하고 있다.실제로 <뉴스위크> 최신호(7월19일)는 미 대선이 테러 우려로 연기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톰 리지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잇단 기자회견에서 “테러의 날짜나 장소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입수되지는 않았지만 알 카에다가 우리의 민주적 절차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미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국토안보부의 한 관리는 “지난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테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알 카에다가 미 대선에도 개입하려 한다는 것을 도청된 알 카에다 소속원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며 “공격에 대비해 대선을 연기하자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고 말했다.이 같은 테러 경고로 미국 정부의 국토안보 지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의회에서는 공항, 항만, 철도 등은 물론 화학공장 등 미국 내 주요시설 전반에 대한 경계 강화를 위해 안보 예산을 더욱 증액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방서, 보건소 등에는 생화학 테러를 사전 감지할 수 있는 장비와 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등 안보 관련 법률을 제정할 계획이다. 테러위협에 노출된 민간사업자들은 올해 자체적으로 204억달러의 비용을 시설경비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안보 관련 기업들이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신기술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멘스 빌딩 테크놀로지스는 최근 테러위협을 사전 감지하는 ‘비디오 감시 카메라’를 개발했다. 이 카메라는 건물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차량이 접근하면 즉각 경보음을 울리고,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가방이 버려진 채 건물 인근 길거리에 떨어져 있다면 경비원에게 이를 알리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 인공지능(AI)을 장착,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도 일일이 탐색, 추적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최근 터널, 교량, 정부건물 등에서 가상실험을 마쳤으며 조만간 활용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한국의 LG전자도 미국 정부에 ‘홍채 인식 시스템’을 납부하는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분주하다. 눈동자 색깔을 인식하는 이 시스템은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신원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시스템은 현재 네덜란드에서 이용되고 있다.컨설팅회사인 액센추어가 국토안보부의 용역을 받아 개발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은 이른바 ‘US-VISIT’라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개발되면 미국 정부는 누가 미국 방문을 계획 중이며, 어느 공항에 언제 도착하는지, 이들의 출국날짜는 언제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사전 입수할 수 있다.액센추어의 스티븐 로레저 정부조달담당 최고경영자(CEO)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움직임을 포착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AT&T, 델컴퓨터, 스프린트 등 네트워크 관련 회사들과 하청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시스템 구축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트럭 제작업체 오시코시는 ‘움직이는 지휘본부’가 가능하도록 만든 특수트럭을 미국 정부에 대규모로 납품할 예정이다. 이 특수트럭에는 장거리 물체도 선명하게 포착하는 특수 비디오카메라는 물론 전화 등의 송수신음을 잡아내는 최첨단 통신장비, 생화학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다. 트럭 한 대당 가격은 100만달러. 오시코시는 지난해 이 특수트럭을 50대 판매했고, 올해는 100대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 존 W 란데로비치 CEO는 “테러위협이 수그러들지 않는 한 미국에서 특수트럽 사업은 계속 번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노스롭은 1억7,500만달러어치의 생화학무기 탐지 시스템을 미국 내 우체국에 판매했다. 미국 정부 내 600개 기관의 안보 관련 데이터를 네트워크화하는 사업에서는 무려 3억3,700만달러는 한번에 벌었다.아직 무주공산처럼 주계약자가 선정되지 않은 분야는 ID카드 사업분야. 각종 신상정보를 카드 한 장에 담는 ‘스마트카드’ 사업자를 뽑기 위해 국토안보부는 현재 계약자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미국 정부는 스마트카드가 도입되면 신원이 확실한 사람은 공항 출입국시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시스템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화학약품이나 폭발물 등을 취급하는 사람들에게는 스마트카드 착용을 의무화, 위험물 관리에도 높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렇다면 이 모든 신기술 장비들이 도입되면 미국은 지금보다 안전해지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그러나 대부분 부정적이다. 고가의 장비가 도입되더라도 아직은 기계 오작동이 많아 실질적 보안업무는 사람들이 일일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실제로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하기 위해 일부 국제공항에 도입한 ‘얼굴 인식 시스템’은 오류가 자주 발생, 입국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죄가 없는 멀쩡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분류, 오히려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하지만 22개 산하기관과 18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한 정부조직, 미 국토안보부가 존재하는 미국 내 안보 관련 기업들은 계속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이 미국의 국토안보에 얼마나 기여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