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이제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시대다. 1억원을 정기예금에 넣었을 때 사실상 연 42만원이 손해다. 정기예금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가 연 3.81%(6월 말 기준)인 데 비해 7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만 4.4%에 이른다. 세금ㆍ수수료는커녕 물가만 놓고 봐도 벌써 적자다. 정기예금 ‘무용론’이 힘을 받는 건 이 때문이다.은행원인 오정선 외환은행 평창동지점 PB팀장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도 정기예금은 별로 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숫자도 줄고 있고요. 고객뿐만 아니라 은행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가 아닙니다. 우대금리를 줘도 솔직히 물가조차 못따라잡죠. 원금보전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도 없습니다. 때문에 되도록 고객성향에 부합하는 투자상품을 권하고 있죠. 이게 저희들의 임무입니다.” 수익은 둘째 치고 원금이라도 지키려면 은행권 고객이라도 위험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다소 의외다. 저축 장려를 해도 마땅찮을 은행원이 되레 저축을 외면(?)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다. 얘기를 더 들어보자. “이제는 저축만으로 돈 벌기는 불가능하죠. 재테크 패러다임은 투자 쪽으로 굳어졌습니다. 고민스럽겠지만, 위험이 없다면 수익도 없다는 룰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투자자든 상황은 매한가집니다. 방향을 틀어 변화에 순응하는 발빠른 전략이 필요하죠.” 오팀장은 최근 상황을 ‘재테크 과도기’로 규정했다. 흐름이 ‘안전투자 → 위험투자’로 옮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이런 이유로 은행권도 최근에는 투자상품을 부쩍 강화하는 분위기다. 다양한 주식ㆍ채권형펀드부터 실물펀드, 해외펀드까지 속속 내놓고 있다. 그럼 수익률은 어떨까. 굳이 은행권 간접상품을 권할 만한 메리트가 있을까. 어차피 위험을 질 바에야 특화된 증권사ㆍ투신권 상품을 찾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팀장은 여기서 은행고객의 투자성향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은행고객은 원금의 절대보전을 원한다”며 “여기에 약간의 수익률만 제시해도 만족스러워한다”는 게 그의 평가다. 시중금리에 1~2%포인트만 더 제시해도 기꺼이 맡긴다는 얘기다.그나마 투자상품이라면 위험스럽긴 마찬가지다. ‘시중금리+α’를 제시하지만 지켜질지 여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위험·고수익이든 저위험·저수익이든 원금을 깨먹을 가능성은 늘 있다. 오팀장은 “시장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은행권의 +α는 대개 지켜진다”며 “안정적인 채권형펀드에만 넣어도 +α는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보수적인 고객에게 저위험 상품을 연결시켜 낮지만 확실한 수익률을 내준다는 논리다. 물론 고수익을 원할 때는 10~20% 이상 +α가 나오는 공격적인 상품도 소개하지만 성사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그의 경험이다.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해외펀드에 대해서도 물었다. 외환은행 PB답게 해외 상황에 밝을 것 같아서였다. 오팀장의 대답은 질문의도를 보기 좋게 비켜갔다. “한국경제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해외투자를 권하겠느냐”며 “번거로운데다 관리하기도 힘들어 투자대상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일례로 적시투자를 위해 환매시기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이게 애초부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경제만 해도 반짝 회복세인지 자신이 없다고 덧붙인다. 결국 원하는 수익률이 나지 않았을 때 어느 누구도 책임을 못진다는 점을 한계로 꼽는다.곤혹스러운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요즘 은행은 저축이 아닌 대출받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말에 오팀장은 “저금리로 돈 빌려 고수익 부동산에 넣겠다는 심리 같은데 이건 생각보다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빌리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대출이자를 웃도는 수익을 낼 만한 투자처가 없다는 게 그의 답변요지다. 일례로 6.92%(1년)의 상가담보대출로 돈을 꿔봤자 상가 투자수익률은 고작 6~6.5%에 불과하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수치상으로 역마진이 난다는 뜻이다. 여기에 담보대출비율 축소조치로 2억원짜리 물건이라도 실제 대출금은 7,000만~8,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곁들인다.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본인에게 1억원의 여유자금이 있다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짤지 물었다. 보수적인 투자성향임을 전제로 오팀장은 “50%는 채권형 펀드에, 나머지 50%는 닛케이지수에 투자하겠다”고 답한다. 채권형 펀드는 3개월마다 환매할 수 있는데다 연 4%는 나온다고 봐서다. 반대로 깨질 확률은 거의 없다. 닛케이지수는 해외펀드 중 비교적 안정적인데다 현재로서는 5~6%의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 포트폴리오는 전적으로 오팀장 개인의 사적인 판단이다.PB답게 오팀장에게 ‘부자학’ 요점정리를 부탁했다. 최근처럼 재테크시장이 갈팡질팡할수록 고수들의 한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추어라면 앞서 돈을 번 부자의 생각이나 생활습관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오팀장은 일단 “작은 차이를 무시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그는 “부자는 세금우대와 비과세의 미묘한 차이까지 훤하게 꿰뚫고 있다”고 덧붙인다. 빚을 두려워하는 것도 부자들의 공통분모다. “갚을 능력이 있어 대출·현금서비스를 함부로 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게 오팀장의 판단이다.역시 ‘짠돌이·짠순이’ 습관도 빠지지 않는다. 일례로 신형 휴대전화로의 교체도 부자들에게는 과소비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이 1년이 멀다하고 새것으로 바꾸는 세태와는 거리가 멀다. 오팀장의 부자고객 대부분은 아직도 구형기기를 갖고 있다. 쓸데없는 비용까지 굳이 지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한 것도 교집합이다. 오팀장은 “조그만 투자이익에 연연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업, 일로서 승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전한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부를 일구는 게 잘 모르는 투자세계에 뛰어드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봐서다.투자습관은 꽤 보수안정적이다. 특히 강북부자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하다. 강북의 대표적 부촌인 평창동만 해도 그렇다. 평창동 VIP를 전담하는 오팀장은 “공격적인 상품을 제안하면 낯설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2~3%포인트 가량 수익률이 더 나와도 위험하다면 일단은 노(No)”라고 전한다. 차라리 강북부자는 절세에 더 관심이 많다. 재미있는 건 강북부자의 이미지다. 전통적 세습형 부자답게 예의 있고 점잖다는 게 오팀장의 판단이다. 가령 은행까지 불과 10여분 거리인데도 불구, 정장차림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많다.때문에 강북부자는 리스크를 가장 경계한다. 최근처럼 투자위험이 부각되는 시점에는 극도로 몸을 사리는 게 일반적이다. 신상품에 대한 흡수도 늦다. 강북부자의 핵심 투자전략은 ‘손실은 과감히, 이익은 조심스럽게’로 요약된다. 오팀장은 “화려한 청사진에 현혹되기보다는 돌다리도 두드려 본다는 식의 신중한 접근이 많다”며 “확실한 곳에 투자하되 손실이 나오면 과감히 터는 전략을 선호한다”고 전한다.오팀장이 건네준 투자 10계명 중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인터넷 손품’이라는 게 있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것도 훌륭한 재테크라는 뜻이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금융기관은 인터넷 고객에게 각종 수수료 면제와 우대이율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주식투자 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다. 오팀장은 “예를 들면 인터넷 예금은 통장이 없는 대신 우대이율에 해지까지 손쉽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도움말=오정선 외환은행 평창동지점 PB팀장약력: 1963년 서울 출생. 2003년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졸업. 현재 연세대 경제대학원 재학 중. 외환은행 평창동지점 PB팀장. 스톡데일리 재테크 컨설턴트. 롯데ㆍ삼성 등 주요 기업체 강사. △저서 <노후에 호강하는 사람, 노후에 고생하는 사람>, <저금리시대의 알짜배기 재테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