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양승득 편집장김유성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62)은 요즘 상호저축은행 오너 및 경영인들의 사기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안쓰러운 것 이상으로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서민 금융지원의 버팀목이 돼 온 상호저축은행(이하 저축은행)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리고 있기 때문이다.저축은행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 숫자도 줄고 역할도 쪼그라들었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투명하고 성숙한 금융기관으로 태어났다. 실제 수신고는 외환위기 이전의 최대치를 뛰어넘어 5월 말 기준 3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거래자들도 380만명에 근접했고, 2002년 6월 이후 상당폭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이처럼 수치상 청신호를 켜고 있음에도 저축은행 경영자들이 수심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김회장은 저축은행에 걸맞은 규제 완화 등 제도보완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즉 규제는 은행 수준으로 강한데다 다양한 수익원마저 없어 이대로 가다간 저축은행들이 다시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저축은행 경영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는 것.김회장은 관치금융시절의 낙하산 인사들과 달리 업계의 자진 요청으로 등판한 구원투수다. 그런 만큼 김회장에게 바라는 저축은행업계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6월13일에 취임 1주년을 맞은 김회장을 6월10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그동안 저축은행들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했나요.먼저 상호저축은행(당시 상호신용금고)의 숫자는 외환위기 전 237개에서 지난해 말 114개로 과반수가 줄었습니다. 여신의 경우 26조2,033억원으로 IMF 구제금융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않았지만 수신의 경우 5월 현재 29조1,537억원으로 96년 최고치인 28조6,060억원을 경신해 조금씩 진일보하고 있습니다.경영방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오너들이 주로 경영을 했지만 지금은 50% 이상이 전문경영인들에게 넘어갔어요. 서울의 경우 27개의 저축은행 중 오너 경영인은 3명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시중은행 등의 대형금융기관에서 전문가들을 영입해 온 것이죠. 그만큼 투명하고 성숙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 준법감시인, 감사위원제도 등이 도입된데다 허가만으로도 가능했던 저축은행의 대주주 변경을 지난해 말 법개정을 해 승인으로 강화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예전처럼 문제 있는 대주주들은 아예 진입조차 못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저축은행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아주 아쉽습니다.요즘 저축은행들은 어떻습니까.전반적으로 저축은행 경영자들의 사기가 뚝 떨어진 상태입니다. 사실 저축은행에서 대출받는 사람들은 거의가 서민들입니다. 아마 이들 가운데 시중은행이나 보험, 카드 등 제1ㆍ2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이들은 1%도 채 안될 겁니다. 은행들 입장에서 보면 저축은행들의 여신은 불건전여신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저축은행들이 이들에게 대출한 것은 ‘고위험에 따른 고금리’ 원칙 때문입니다. 신용이 떨어지는 만큼 금리로 감당하겠다는 것이죠. 이런 특성이 있는 저축은행들에 건전성 기준을 은행 수준으로 강화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축은행들이 대출기준을 까다롭게 해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은 물론 아예 대출을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예대마진이 주수입원인 저축은행들에는 결정타인 셈이죠. 이 때문에 어떤 경영자는 5,000만원의 목돈을 갖고 고금리로 불려달라고 온 고객을 그냥 돌려보냈답니다. 그분의 얘기가 ‘무슨 수로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돌려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저축은행의 미래상은 어떨까요예전에는 국민은행이 대표적 서민금융기관이었습니다. 일정액을 서민들에게 대출토록 의무화했었지요. 당시 서민들이 세금 등의 납부고지서 결제를 위해 (시중은행들도 취급했음에도) 국민은행 지점에 몰려 긴 줄이 이어진 것을 보고 서민금융기관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다시 예전과 같은 제2의 국민은행을 만들지 않는 한 저축은행들이 이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하고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려면 저축은행업계가 앞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틀을 정립해야 할 겁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회장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아무래도 업계의 숙원사업이었던 상호저축은행법 제37조 3항 개정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고의나 과실이 없음에도 임원과 과점주주가 연대책임을 지던 것을 은행과 동일하게 고의 및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도록 처벌조항을 완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가 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무과실을 입증해도 처벌을 받아 아무도 상호저축은행 경영자로 오려하지 않았거든요.그동안 저축은행업계의 공동온라인센터 주전산기인 NCR 기종이 단종돼 시스템 운영이 늘 불안정하던 문제점도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IBM으로 교체선정하고 전산센터를 여의도 증권전산센터로 이전하고 있는데 2개월 앞당겨져 7월 말이면 마무리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저축은행들간의 통합전산망이 확대돼 매우 편리해집니다. 이에 따라 회원사로부터 중앙회가 변했다는 말을 듣게 됐고 중앙회의 위상도 많이 제고됐습니다.올해는 저축은행을 국민들이 신뢰하는 금융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7월부터 홍보추진위원회도 만들고 영업안내 책자도 발간해 배포할 계획입니다.마지막으로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서민경제 안정 및 활성화를 위해서는 서민층의 일자리를 만들어주거나 소득증대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축은행 같은 서민금융기관을 통해 적정한 금융지원 방안이 필요합니다.은행의 경우 고위험 저신용자에 대해서는 대출해 주기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권 금융기관 중에서는 저축은행만이 정상 대출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저축은행이 이나마 못해준다면 서민경제 안정은 더 멀어질 것입니다.저축은행이 서민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거나 나아가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기능과 역할에 상응, 대우를 해서 균제와 조장이 균형을 이루도록 법과 제도가 마련됐으면 합니다.약력: 1942년 경북 안동 출생. 59년 안동고 졸업. 66년 성균관대 법률학과 졸업. 91년 재무부 중소금융과장. 93년 손해보험과장. 98년 예산청 총무과장. 99년 예산청 국장. 99년 대한생명보험 상근감사. 2003년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주량 : 안함 △담배 : 안함 △건강관리 : 그때그때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함 △운동 : 골프(핸디 10) △최근에 읽은 책 : <우리선비>(정옥자, 현암사) △절친한 친구 및 모임 : 한빛회(안동사범 병설 중학교 동기생 모임) △가족관계: 부인 송수경씨와 1남 1녀인터뷰 후기‘투명·성숙’ 거듭 강조대화의 상당부분을 상호저축은행의 투명성과 성숙해진 모습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을 만큼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만남이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돈 갈증을 해소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외부 시각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것. 상호저축은행 업무를 직접 담당한 경력(재무부 중소금융과장)을 갖고 있지만 입장을 바꿔 새로운 눈과 관점으로 업계를 이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경제부처와 보험업계를 고루 거치며 쌓은 경륜과 식견이 앞으로 상호저축은행업계를 어떻게 탈바꿈시킬 것인지가 기대되는 1시간여 동안의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