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 수치가 지난 5월18일 나왔다. 결과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5.6%(연율 기준) 성장으로 기록됐다. 더욱이 8분기 연속 플러스다. 한때 마이너스를 헤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당사국인 일본에서조차 ‘본격적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5%대 경제성장률의 일등공신은 지속적 수출증가와 민간소비 지출 회복이다. 일본 내각부도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5%를 훌쩍 뛰어넘은 것은 수출과 내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범위를 넓혀 지난 2003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 전체를 봐도 일본 경제 회복 스피드는 괄목할 만하다. 경제성장률의 경우 연 3.2%를 나타내 정부 전망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1996년의 3.6%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올해 5% 이상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다른 신호도 긍정적이다. 일본 GDP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를 보면 고용증가에 힘입어 지난 1분기에 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4.0%나 늘어났다. 이는 전체 성장률 5.6% 가운데 2.2%나 기여한 것이다. 다케나카 헤이조 재정ㆍ금융상은 “일본 경제가 순항 궤도에 올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기업 설비투자 역시 증가세가 뚜렷하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782개사를 조사해 발표한 ‘기업들의 2004년도 설비투자동향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전년보다 10.1%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9년 만에 처음이다. 제조업과 비제조업 등 산업 전체를 놓고 봐도 지난해에 비해 5.5%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지난해보다(2.8%) 크게 웃돌았다.일본 경제 부활의 가속도는 상장기업들의 실적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금융업을 제외한 1,601개 상장기업의 지난해 경상이익을 보면 전년보다 21% 증가한 19조엔에 달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대부분 기업의 이익증가율이 매출액 증가율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강도 높게 추진한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등 경영합리화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의 경우 매출액은 2% 늘어난 데 비해 순이익은 25% 증가했다.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일본 공장의 본토 유턴은 부활의 또 다른 상징이다. 캐논이나 샤프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카메라 액정TV 등 고부가가치 첨단제품들을 만드는 공장을 일본에 속속 짓고 있는 것이다. 한때 ‘탈일본’을 외치며 중국 등지로 몰려 나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1년간 공장용지 취득 건수가 전년보다 20% 늘고, 취득 면적은 40% 급증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일본 경제의 부활은 우연이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아 얻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10여년에 걸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목표를 경쟁력 강화에 두고 선택과 집중에 매달렸다.지난해 말 일본 소니 사장이 “삼성전자를 배우자”고 말한 적이 있다. 소니는 두말할 필요 없이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자 기둥이다. 이를 두고 당시 국내에서는 “이제 우리가 일본을 가르치게 됐다”며 으쓱해 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하지만 삼성전자와 한 식구인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평가에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연구소측은 ‘우리가 일본의 제조업으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기업이 10년 이상의 불황 속에서도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철저한 구조조정과 주력제품 집중개발, 신시장 창출 등 쉬지 않고 기업의 체질을 개선한 것이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실제로 일본 기업들의 자부심도 부쩍 커졌다. 대표적인 것이 ‘메이드 인 재팬’ 전략이다. 골자는 ‘일본에서 잘 만들어 제값 받고 팔자’는 것. 도요타, 닛산, 소니 등은 “핵심부품 제조는 일본에서 하고 있다”며 적극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슈퍼마켓과 전자상가들까지도 일본산의 우수성을 알리는 안내판을 붙일 정도다. 국내기업들이 앞다퉈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한국의 경우와는 극히 대조적이다.우리는 지금 산업공동화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일본이 지나온 어두운 터널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기업들이 왜 다시 국내에 복구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때를 놓치면 한국 경제는 진짜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해법은 먼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10년 불황을 타산지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특히 그들의 불황탈출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조업이 중심이 돼 위기를 돌파하고 이에 정부가 규제완화 등으로 적극 화답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아울러 매년 되풀이 돼 온 춘투(春鬪)가 사라지는 등 안정된 노사관계 구축도 그냥 흘려 보아서는 안될 대목이다. 안정된 정치시스템과 획기적 교육개혁 역시 일본이 다시 서는 데 큰 힘을 보탰다는 평가다.우리 경제는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매우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의욕은 넘치지만 달성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지금처럼 정부와 기업이 따로 움직이면 5년, 아니 10년 후에도 여전히 ‘꿈’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교훈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