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사람이 한 도둑 잡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방비를 아무리 단단히 해도 도둑이 들어올 곳은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인터넷 세상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두겹 세겹의 보안장치를 해도 해커와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개방적인 인터넷의 속성상 낯선 자의 침입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사실이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의 보안 문제는 도를 넘어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바이러스 감염률이 세계 최고라는 부끄러운 조사마저 나온 상황이다. 이외에도 여러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 정상급의 ‘보안사고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해킹과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의 범위는 전 국가적이다. 최근 국회와 해양경찰청 등 10개 국가기관이 해킹돼 화제가 됐지만 국가기관이 해커들의 제물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 102건, 2001년 277건, 2002년 539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국가정보원은 밝히고 있다.기업, 대학, 연구소, 개인 PC에 대한 침해사례도 적잖다. 특히 방어시스템이 미비한 개인 PC를 경유지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 우려되고 있다. 또 중소기업의 경우 적절한 보안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 않아 침해사례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중소기업의 70%가 침해로 인해 업무가 중단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해킹과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는 비단 침해당한 서버나 PC의 원상회복 비용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손상된 데이터로 인한 무형의 피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소매업의 경우 시간당 데이터의 가치가 645만달러에 이른다. 연구소의 연구 데이터가 사라지는 경우 그 피해는 산정조차 되지 않는다. PC 안에 백도어가 설치되면 자신의 PC 안에 저장된 정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출될 수도 있다.해커들의 공격 수법은 날로 첨단화되고 있지만 실제로 큰 피해를 입히는 해킹 바이러스는 원시적 방법이다. e메일 등을 이용해 퍼지는 웜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e메일이 보편화된 요즘 이들의 확산속도는 엄청나다. 1ㆍ25인터넷 대란을 일으킨 ‘슬래머웜’은 출현한 지 10분 만에 전세계로 확산됐고 ‘사세르 웜’은 사흘 만에 50만대의 PC를 감염시켰다.해킹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기술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지만 완벽한 시스템은 없는 실정이다. 새로운 형식의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보안시스템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침해를 완전히 방지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안업계는 스스로 학습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능동형 보안시스템을 개발해 ‘문단속’을 더욱 단단히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보안기술이 향상되는 것으로 보안사고가 줄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비를 운용하는 사람이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발생하는 바이러스를 체크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는 깐깐한 관리만이 침해로 인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각국 정부는 인터넷 정보보호를 위한 국가적 전략을 속속 내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침해로 인한 피해액이 매년 150억달러에 이를 정도니 정부가 정보보호에 발벗고 나설 만하다. 중국 역시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정보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각종 연구기관을 설립하는 등 체계적인 정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고려대학교의 임종인 교수는 “보안문제는 공공기관의 문제만도 개인의 문제만의 문제도 아니다”며 “전 사회적 정보 리스크 관리체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