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까지 우먼파워 세상 … 외조로 성공한 여성 많아

현재 우리 사회에는 여풍(女風)이 드세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1번에는 으레 여성이 지명됐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성을 간판으로 총선을 치러냈다. 남성의 전유물이다시피 됐던 정치판을 여성이 주도한 것이다. 그것도 둘 다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이른바 ‘치맛바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역사 사료에 따르면 우리 여성들은 원래 소극적이지 않았다. 중국의 고대기록인 <당서(唐書)> 신라조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저자(市)에서 여자들이 물건을 사고팔고 하였다’고 기록돼 있는데 중국인들은 시장에서 여성들이 상업을 주도하는 것이 신기해 이를 기록한 것이다. 같은 기록은 ‘진평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그 딸 선덕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여성이 국왕이 된다는 것은 중국인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우리나라는 이처럼 고대부터 여성이 상업 행위를 주도하고 국왕까지도 될 수 있었던 우먼파워의 사회였다. 고려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지위의 높고 낮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재산상속 여부이다. <고려사>나 현존하는 고려시대 고문서에는 상속관계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전해지는 단편적인 기사들을 검토해 보면 고려시대의 재산상속은 남녀차별이 없는 ‘자녀균분’(子女均分) 상속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관념을 대폭 받아들인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의 상속 규정도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자녀균분제였다. 조선 초기만 해도 아들과 딸, 친손과 외손의 구별이 엄격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남자가 장가를 가서 처가살이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하나의 사회적 풍습이었다. 딸만 있고 아들이 없을 경우 양자를 들이는 대신 사위가 대를 잇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남녀가 평등하게 상속받다 보니 세칭 장가 잘 가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은 부인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는 바람에 형편이 핀 인물이고, 퇴계 이황에게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 등이 이런 현상을 말해주는 것이다.제사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초기에는 아들뿐만 아니라 딸도 제사를 모실 수가 있었다.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편찬된 족보는 부(父)→자(子)의 친계로 이어지는 제사 상속뿐만 아니라 부 → 여(女) → 자의 외계(外系)로 이어지는 제사 상속이 빈번했다.이처럼 조선 초기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직접 정사에 참여하지 못할 뿐 별다른 차별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양란(兩亂) 이후인 17세기께부터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신분제 해체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이에 위협을 느낀 양반 사대부들이 성리학적 통치질서를 강화하면서 남녀차별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남녀 균분상속의 문제점이 지적됐고, 예법이 강화되면서 제사를 지내는 의무가 하나의 권력이 됐다. 이에 따라 17세기에는 종손(宗孫)과 지손(支孫)이 차별되면서 적장자 우위상속제가 나타나고, 남녀도 차별받았다. 여기에 일제시대에 여성을 비하하는 일본 문화가 전파되면서 남녀차별은 더욱 심해졌던 것이다. 결국 조선 여성들은 양란 이후 조선 사대부 사회가 보수화돼 가면서 점차 ‘인간’으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졌는데, 여기에 일제의 극심한 여성차별이 더해지면서 남녀차별이 사회화, 제도화되었던 것이다.현재의 여풍 현상은 이런 그릇된 남녀차별의 역사를 원래대로 바로 잡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일 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가 계속되면서 나타났던 여러 문제가 바로 잡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패문제이다. 세계적인 수치인 우리 사회의 부패문제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사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게 군사문화이다. 이런 군대 경험을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는 남성들에 의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린 결과가 오늘날의 부패문화인 것이다. 여성이라고 ‘안되면 되게 하라’는 목적지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는 소수의 경우이고 대다수는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 마련이다.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였던 60년대나 경제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던 70년대에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정신이 필요했고, 그것이 급격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 2만달러를 지향하는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비합리적 사고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는 정상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더 성숙시키고 선진국 시민들과 같은 의식을 공유하게 하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할 것이다.우리 역사에는 남성의 외조(外助)로 성공한 여성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신라의 미실이 대표적인데 <화랑세기>는 미실을 ‘백가지 꽃의 영겁이 뭉쳐 있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미모로 진흥ㆍ진지ㆍ진평 등 3명의 국왕을 좌지우지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도 4명(사다함ㆍ세종ㆍ설화랑ㆍ미생랑)이나 거느린 여걸이었다. 그런데 풍월주 세종은 미실의 남편이었다. <화랑세기>는 세종에 대해 ‘황후의 아들로서 미실에게 정절을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미실이 이 남성, 저 남성을 거느리는 동안에도 그는 시종일관 미실에게 정절을 바치며 외조를 다했던 것이다.현대에는 한국 가정법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고 이태영 여사의 남편 고 정일형 박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혼한 부인에게 뒤늦게 법학공부를 권유했고, 39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태영 여사는 195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열어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시켰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 더불어 살면서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동반자라는 점을 보여준 바람직한 사례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돋보기|역술가가 본 한국여성 / 노해정 사주아카데미 대표한반도 음기 왕성, 여성대통령도 가능역학으로 볼 때 한국의 방향은 축(丑), 인(寅)에 속한다. 축은 음기의 기운이 끝나는 곳인 반면, 인은 양기가 태동하는 곳으로 풀이된다. 즉 한국은 음기와 양기가 교합하는 장소라고 볼 수 있다. 또 한국을 오행(五行)으로 표시하면 목(木)에 해당한다. 목은 반드시 수(水), 화(火)를 얻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이중 수(水)는 음기에 해당되며 성별로는 여성에 속한다. 결국 오행학적으로 볼 때도 여성의 존재는 우리나라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풍수로 우리나라를 보면 국토의 약 70%가 산으로 돼 있다. 산은 반드시 계곡을 끼고 있으며 지형상 다양한 표고차를 만들어 낸다. 풍수상 들어간 곳은 음이요, 여성이므로 다른 나라에 비해 음기가 동하는 지형이 매우 많은 것이 한국 풍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음기가 많은 지형에서는 여성의 비중과 역할이 남성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행, 풍수로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비중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하고 높다고 할 수 있다.역학에서는 현대사회를 후천(後天)이라고 말한다. 후천세상에서는 음이 주도하는 사회가 열리게 되며, 이런 음이 나타내는 것이 바로 여권이 신장하는 한편 여성의 역할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기운은 앞으로도 많은 여성의 사회참여라고 하는 현실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특히 스포츠, 정치 분야 등 과거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시피 한 분야에서 여성의 비중과 역할이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나아가 18대 대선에서는 여성대권주자와 여성대통령 탄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