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출시 전부터 이벤트 제의 적극적…오프라인 모임 주선도

지난 3월 니콘 디지털카메라를 수입, 판매하는 아남옵틱스는 세계 디지털카메라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니콘의 야심작인 렌즈교환식(SLR) 디지털카메라 ‘D-70’에 하자가 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을 수용, 제품판매를 중단하고 본사에 품질검사를 의뢰한 것.사건의 발단은 전문가용 디지털카메라 인터넷 커뮤니티인 ‘SLR 클럽’의 게시판에 ‘D-70’에 결함이 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태양처럼 강렬한 빛에 노출될 때 피사체의 주변에 녹색 잔영이 번지는 ‘블루밍 현상’이 발견된다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비슷한 불평이 밀어닥쳤고 아남옵틱스는 환불 조치와 판매 일시 중지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소니는 ‘F828’에 결함이 있다는 불만이 동호회 게시판에서 이슈화되자 해명자료를 올리고 환불 조치한 일이 있다.DVD타이틀 업계에서도 유사한 일이 종종 벌어진다. 지난해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경우 재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DVD 동호회인 ‘DVD프라임’에 올려지자 대원측은 환불 조치를 내렸다. 이 사이트의 박진홍 대표는 “최근에는 <반지의 제왕> 타이틀의 사운드에 하자가 있어 리콜을 요청한 상태”라며 “소비자들의 의견이 제품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후원사, ‘이벤트 비용 걱정 마’인터넷 동호회의 영향력이 강해짐에 따라 동호회에 ‘러브콜’을 보내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테스트 제품을 미리 보내 리뷰를 부탁하는 것은 기본이고 배너광고, 동호회 행사 지원, 공동 이벤트 등 형식도 다양해지고 있다.대표적인 공동 이벤트로 디시인사이드의 ‘출사대회’와 DVD프라임의 ‘DP어워드’를 들 수 있다. 국내 최대의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는 업체의 후원을 받아 매년 2회 ‘출사대회’를 열고 있다. 후원사들은 회원들의 오프라인 행사인 출사대회 경비 전액을 부담하는 대신 행사장에 부스를 마련해 홍보활동을 벌인다. 매년 최고의 타이틀을 선정하는 DVD영화제인 ‘DP어워드’도 후원사들이 모든 경비를 조달하고 있다.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제품과 관련한 공동 이벤트를 제안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클릭’ 출시에 맞춰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이라는 일반차 경주대회를 열면서 디시인사이드와 공동으로 사진대회를 열었다. 자동차 경주대회를 주제로 사진콘테스트를 열어 행사는 물론 신제품을 알리기 위한 의도였다. DVD프라임은 매년 2~5회 DVD 시사회인 ‘DVD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상영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정식 출시를 앞둔 대작 타이틀이다.동호회 회원들과 만남을 시도하는 업체들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캐논은 자동 초점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불만이 발생하자 소비자 설명회를 열어 공식 입장을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팬택앤큐리텔이 ‘큐리텔 동호회’ 회원들의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하고 홍보활동을 펴는 등 비공식적인 활동도 증가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광고제작에도 동호회의 의견을 묻고 있다. 지난해 스타맥스는 흥행 기대작인 <메트릭스-리로디드> 출시에 앞서 4개의 광고 시안을 DVD프라임에 제시하고 여론조사를 벌였다. 스타맥스는 조사결과 최다 득표를 얻은 시안을 선택했다.타깃 마케팅에 안성맞춤업체들이 동호회에 애정 공세를 펴는 이유는 뭘까. 우선 동호회의 회원이 방대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디시인사이드의 하루 방문객 수는 120만명이고 페이지뷰는 2,200만건에 이른다. 37만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세티즌의 일일 페이지뷰는 150만건에 달한다.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모인 사람들의 목적이 비슷하므로 업체 입장에서 동호회는 타깃 마케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이와 관련, ‘세티즌’을 운영하는 모비즌닷컴의 임성천 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뷰를 위해 제품을 보내 달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먼저 제품을 보내 리뷰를 부탁한다”며 “인력이 부족해 리뷰할 제품이 밀려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회원들의 활동이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한번 입소문을 타면 전파속도는 어느 매체보다 빠르다. 특히 이슈가 되는 글의 경우 1시간에 수백개의 ‘댓글’이 올라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하지만 동호회는 위협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제품의 결함을 지적하거나 업체의 서비스를 문제 삼는 글이 이슈화되는 경우 매출에 즉각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업체들이 동호회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디시인사이드의 박주돈 이사는 “대부분 업체들이 담당 모니터링 직원을 채용해 부정적인 글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거나 해명 기회를 요청하고 있다”며 “하지만 동호회가 소비자들의 모임인 만큼 업체들의 입장을 수용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영향력이 큰 동호회 커뮤니티 가운데 기업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수익모델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광고섭외는 밀려오지만 회원들의 반발 때문에 무작정 받아들일 수도 없다. 회원들이 올린 글이 주력 콘텐츠이다 보니 유료서비스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디시인사이드를 운영하는 디지털인사이드의 박주돈 이사는 “지난해 매출 87억원이 모두 공동구매를 통해 발생하는 등 매출구조에 한계가 있다”며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INTERVIEW 김동우 매니안닷컴 사장‘윈도 마니아’의 화려한 변신지난 1월 윈도 마니아 사이트인 ‘윈비비에스’가 매니안닷컴이라는 독립법인으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김동우 시솝(29)은 운영자에서 한 기업의 어엿한 전문경영인(CEO)으로 변신했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직업이 된 셈이다.김사장이 동호회를 차린 것은 2000년, 대학 3학년 때의 일이다. 전공이 컴퓨터공학이니 윈도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당연했다.“당시는 윈도의 격변기였어요. 해가 다르게 새로운 버전이 발표돼 사용자들의 혼란이 컸잖아요. 그런데 마땅히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가 없더라고요. 저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요.”시작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무료 홈페이지 계정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회원이 늘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용량과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다행히 한 쇼핑몰의 투자를 유치해 사이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는 회원 50만명, 일일 페이지뷰 180만건에 이르는 견실한 사이트로 자랐다. 올해는 회원수가 6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김사장은 기대하고 있다.“회원이 100만명에 이르면 안정권에 들어설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원을 늘리기보다는 회원들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이트로 키우고 싶습니다. 마니아 사이트의 생명은 회원들의 활동량이니까요.” 김사장은 최근 매니안닷컴에 보이는 업체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며 사업전망이 밝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MS조차 공동 마케팅을 제의하는 등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안철수연구소 등 유력업체와 제휴한 공동 마케팅, 유료 온라인 교육, 공동구매 등을 수익모델로 잡고 있습니다. 기업인 만큼 수익창출이 최우선이지만 마니아 사이트의 본분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업체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