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 좋은영화 기획실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만화책을 집어 든다. 4월 말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개봉을 앞두고 있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만화 보기는 게을리 할 수 없는 중요한 일과다.김기덕 SK커뮤니케이션즈 싸이월드커뮤니티사업팀 마케팅파트 대리는 틈만 나면 싸이월드에 접속해 다른 사람의 ‘미니홈피’를 구석구석 살펴본다. 김대리의 특기는 ‘모르는 사람 홈페이지 보기’다. 로그인할 때마다 불특정인의 홈페이지로 이동하게 해주는 ‘랜덤 미니홈피 가기’를 클릭한다.전혀 다른 행동 같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네티즌을 파악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조윤미 실장이 만화를 읽는 이유는 만화를 즐겨 보는 계층과 인터넷 이용 계층이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에서 네티즌 공략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또 최근 몇 년 새 인터넷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가 대박신화를 기록하면서 만화 읽기가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김기덕 대리 역시 마찬가지. 김대리는 대표적인 블로그 사이트인 싸이월드를 담당하면서 네티즌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네티즌의 시각과 이슈를 포착하기 위해 싸이월드 회원들 홈페이지를 본의 아니게 ‘스토킹’을 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영화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업종으로 부각되면서 마케팅 담당자들이 부쩍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네티즌 마케팅’이다. 실제로 한국영화 돌풍의 주인공인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케팅 관계자들은 온라인 마케팅 비중이 몰라보게 늘었다고 전한다.이는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굴뚝산업으로 분류됐던 제약이나 가전,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도 온라인 마케팅은 점차 그 중요도를 높여가고 있다. 또 건설회사 역시 인터넷으로 서서히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게 광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온라인 광고 시장의 크기만 봐도 지난해 2,400억원에서 올해 3,200억원 가량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인터넷 이용자수는 지난해 6월 기준으로 2,800여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이 국내에 소개된 90년대 중반에 비해 60배나 커진 숫자다.특히 소비시장에서 주요 타깃이 되는 20대와 30대는 전체 인구의 과반수가 네티즌이다. 한국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20대는 10명 중 9명이, 30대는 10명 중 7명이 네티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최근 두드러지게 “똑똑해졌다”는 게 광고업계와 기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예전처럼 자극적인 e메일이나 배너광고를 통해서는 자사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네티즌 공략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법은 역시 ‘구전 마케팅’이다. 온라인상의 구전 마케팅은 대개 ‘바이러스 마케팅’이라는 말로 통용된다. “우리 사회는 정보 비대칭성이 사라지고 소비자 쪽으로 힘의 이동이 이뤄졌다. 따라서 광고에 대한 믿음이 많이 퇴색했고 홍보기술도 무력화되는 추세”라는 게 최순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분석이다. 결국 커뮤니티와 같은 가상공동체의 가치가 기존 사용자를 통해 잠재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프로모션 방식이라는 것이다.아예 요즘은 ‘추천제 방식’이라는 이름의 노골적인 구전 마케팅이 유행이다. 마케터가 입소문을 기대하며 마케팅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에게 직접적으로 ‘친구를 불러오라’는 주문을 하는 식이다.바이러스 마케팅 이외에 네티즌의 생활방식을 좇아가는 ‘라이프 트렌드 마케팅’도 인기다. 인터넷 이용자가 온라인에서만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의 과반수가 2시간 내외로 인터넷을 이용한다. 따라서 인터넷 이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좇아 일종의 ‘소비자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 마케터들의 할일이다.해외의 경우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두통약 배너광고가 시나리오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온라인 브로커(e-broker)라는 주식사이트에 배너광고를 실었다. 단 주식시장이 100포인트 이상 하락할 때마다 이 광고가 등장하게 했다. 주가가 대폭락하면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블로그 마케팅’은 네티즌을 잡는 가장 최신의 이슈다. ‘1인 미디어’로 알려진 블로그는 e메일과 커뮤니티를 잇는 인터넷 최고의 서비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따라 블로그를 활용한 마케팅 방법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최근 한국사회는 네티즌을 빼놓고 어떤 분야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네티즌의 위력이 커지고 있다. 탄핵정국을 맞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촛불시위라는 색다른 광경을 만들어낸 것 역시 네티즌의 힘에서 비롯됐다.일부 유머의 수단으로 쓰였던 패러디 포스터는 총선용 홍보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된다. 대안미디어였던 인터넷 미디어들이 새로운 미디어세력으로 부상한 것 역시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소위 ‘떴다’고 하는 유명세도 인터넷을 통해서 가능한 세상이다.물론 네티즌들의 이 같은 활약을 두고 ‘네티건’이라는 용어로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다.네티즌과 훌리건을 조합한 말로 네티즌들이 지나치게 선동적으로 움직여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하지만 일단 ‘똑똑해진’ 네티즌들이 스스로의 자정능력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변현우 오리콤 사이버전략팀 차장은 “최근 광고주들이 온라인 마케팅 예산을 점차 늘리는 추세”라며 “특히 네티즌은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