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여성임원 23명 … 삼성 신입 여사원 비중 40%

“5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지요.” 지난해 12월 CJ그룹에서 첫 여성임원으로 탄생한 장계원 상무(CJ GLSㆍ53)는 5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 82년 입사 때에는 임원은커녕 과장, 부장도 ‘오를 수 없는 나무’였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나마 몇 되지 않은 여직원들 중에 사원, 대리에서 직장생활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러다 보니 그녀에게는 그룹에서 ‘첫’이라는 관형사가 늘 따라붙었다. 첫 과장, 첫 부장, 첫 임원. 그녀 또한 중도에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래, 한번 해보자’는 오기로 참고 견뎠다. 그리고 21년 만에 꿈을 이뤘다.장상무가 겪은 여성직장인으로서의 어려움은 이제 옛말이 될 것 같다. 능력만 있으면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올 3월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윤송이씨(28)가 SK텔레콤 상무로 발탁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우먼파워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분야에서도 여성이 맹활약하고 있는 현실이다. IR팀장을 여성이 맡거나 해외주재원으로 여성을 보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더 이상 여성을 남성의 보조인력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것. 점차 여성상위시대가 대기업에서도 본격화될 날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여성임원의 ‘여성’을 떼라임원은 기업의 별이자 경영의 지휘관들이다. 그러나 지휘봉은 남성에게만 주어졌다. 30대그룹으로 제한하면 90년도에는 오너 일가를 제외한 여성임원이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삼성그룹에서만 10명의 여성임원이 핵심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 LG 등 10대그룹(2004년 4월 자산기준)만 따져도 23명에 달한다.삼성에는 이현정 삼성전자 상무(44), 이정민 제일모직 상무(35), 박현정 삼성화재 상무(42), 최인아 제일기획 상무(43) 등의 임원이 활약하고 있다. 이현정 상무는 2003년 임원으로 영입된 케이스.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공학 박사 출신인 그녀는 현재 홈비즈니스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정민 상무는 이탈리아 브랜드 ‘루이자 베까리아’의 수석디자이너 출신. 제일모직이 여성복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했다.LG는 윤여순 LG인화원 상무(49), 김진 LG전자 상무(44), 김애리 LG생명과학 상무(44), 이숙영(43)ㆍ설금희 LG CNS 상무(43), 송영희 LG생활건강 상무(43) 등 총 6명이다.김진 상무(정보통신디자인연구소장)는 LG전자 여성임원 1호다. 83년 디자인종합연구소에 입사, 2000년 부장급(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한 뒤 1년 만에 임원이 됐다. 98년 ‘굿디자인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이숙영 상무(기술연구부문장)는 89년 경력사원으로 입사, 2002년 12년 만에 상무가 됐다. 그녀 역시 부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수석’이라는 직급을 뛰어넘어 바로 임원으로 발탁된 것. 행정자치부 재난관리시스템 개발 같은 크고 어려운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설금희 상무(인사·경영지원부문장)는 이화여대 졸업뒤 1983년 금성사(현 LG전자) 전산실에 입사했다. 1987년 LG CNS 전신인 STM으로 옮긴 뒤 ‘최초의 ERP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LG전자 신회계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올해 승진한 김애리 상무(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 의약개발 그룹장)는 국내 최초의 미국 FDA 승인 신약인 ‘팩티브’를 개발한 성과를 최고경영진이 높이 산 결과다.SK도 올해 처음으로 여성임원을 배출했다. 올 1월 영입한 강선희 SK(주) 상무는 기존의 홍보팀, IR팀, 법무팀을 한데 모아 만든 CR전략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첫 여성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눈에 띈다. 강상무는 사법시험(30회)에 합격한 뒤 91년부터 서울민사지법, 대구지법에서 판사로 재직했다.20대인 윤송이 상무는 재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윤상무는 인공지능 전문가로 과학기술원(KAIST) 졸업 뒤 2000년 24세 나이로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국내 최연소 여성 박사 출신이다. 무선인터넷과 관련한 지능형 커뮤니케이션 태스크포스팀을 이끌고 있다.KT는 조화준 IR팀장을 비롯해 4명의 여성임원을 배출했다. 조상무는 우리나라 IT업계에서 IR를 책임지는 유일한 여성관리자다. 조상무가 처음 KT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93년 박사출신 공채 때다. 당시 한국통신경영연구소에 입사한 뒤 마케팅본부와 기획조정실을 거쳤다. 2000년 당시 차세대 영상이동통신인 IMT-2000 사업추진본부에서 재무담당 팀장을 맡아 사업허가를 성공적으로 따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밖에 이영희 상무(중국법인장ㆍ46), 권은희 상무(서비스개발연구소 BCN 응용연구팀장), 이후선 상무(영업본부 기업영업3팀장ㆍ49)도 KT를 대표하는 여성파워다.하나로통신은 4월 초 국내 통신업계 최초로 여성 CFO를 탄생시켰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재무담당 부사장 제니스 리(43)를 영입한 것. 제니스 리의 탁월한 재무관리 능력은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92년 대우중공업 미주본사에 근무하던 그녀는 98년 볼보건설기계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뒤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의 성공적인 구축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2000년 8월 재무담당 부사장에 오른 이력을 자랑한다.이밖에 코오롱에서도 지난해 첫 여성임원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김복희 코오롱FnC 상무(42·정보실장). 그녀는 83년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 결혼 후 86년 코오롱상사 숙녀복 ‘벨라’로 옮겼다. ‘벨라’에서 많은 히트작을 내며 96년 코오롱상사 숙녀복 ‘캐서린 햄넷’의 디자인실장을 맡는다. 2000년 회사를 떠나 3년간 미사의 기획이사를 하다가 다시 코오롱으로 돌아온 것.반면 한명의 여성임원도 배출하지 못한 대기업도 수두룩하다. 현대자동차, 한진, 포스코, 한화, 두산, 동부 같은 그룹은 여전히 ‘남성천하’다.재벌가 여성도 뛴다재벌가 여성들의 파워도 세지고 있다. 재벌가 딸들은 평범한 주부로 조용히 살거나 미술관 운영과 같은 문화사업을 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요즘은 적극적으로 경영일선에 나선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남편(고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로 등극했다. 현회장은 시삼촌인 정상영 KCC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극적으로 승리하며 그룹회장으로 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대한전선은 지난 3월 별세한 고 설원량 회장에 이어 부인인 양귀애씨가 고문으로 취임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양 고문은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여동생으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대학생인 두 아들 윤석(23)씨와 윤성(20)씨가 경영일선에 나설 때까지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재벌가에서는 특히 삼성가 여성의 경영참여가 활발하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5녀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국내 자산순위 30위(공기업 제외) 안에 드는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명희 회장의 외동딸인 유경씨도 조선호텔 상무로 재직 중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인 부진씨(신라호텔 상무)와 차녀인 서현씨(제일모직 부장)도 경영일선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롯데그룹에는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이 97년부터 총괄부사장을 맡고 있다. 그녀의 두 딸인 선윤씨와 정안씨도 롯데쇼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오리온그룹의 이화경 사장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베니건스, 온미디어, 메가박스 같은 신규사업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주가를 높이고 있다.여성파워 더 세진다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재계에 여성임원이 속출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차기 경영진 후보군에 상당한 여성파워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전체 직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신입사원 중 여성 비율이 2000년 15%(1,100명), 2003년 27%(1,800명), 2004년 30%(2,100명)로 급증하고 있다. SK그룹은 전체 신규채용 인원의 20%를 넘어섰으며 CJ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로 뽑은 신입사원 160명 가운데 여사원이 48명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CJ는 90년대까지 5~10%에 불과했다.특히 IT와 패션유통업계는 ‘여성천하’를 눈앞에 뒀다. SI업체인 LG CNS의 경우 5,800명의 임직원 중 여성인력 비중이 21%(1,200명). 과장급 이상 여성인력이 260명으로 전체(2,100명)의 12%를 차지한다. 삼성SDS는 여성인력 비율이 전체의 15%인데 앞으로 30%까지 늘릴 계획이다.패션유통업체는 한술 더 뜬다. 이랜드는 임직원의 50%가 여성이다. 과장급 이상 여성 비율이 32%, 대리급 44%, 주임급 53% 등 중간관리직에서도 여성파워가 막강하다. 이들이 향후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오를 것으로 회사 관계자들은 내다본다.재계에 여풍이 강하게 부는 이유는 정보기술(IT) 붐으로 여성 특유의 감성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삼성전자, LG CNS 같은 IT관련 기업들의 여성 비율이 일반 제조업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HP의 칼리 피오리나 같은 세계적인 CEO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돋보기외국계기업전체 20%가 여성…재무ㆍ마케팅 분야 맹활약외국계 기업은 우먼파워의 본산이다. 보통 전체 임직원의 20% 정도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제약업체인 한국MSD는 사장을 포함, 경영진 10명 중 여성임원이 4명이다. 과장급 이상 여성 비율은 43%에 달한다. 총직원 443명 중 여직원 수도 절반을 넘어 245명에 이른다. 모진 상무(제2사업본부장ㆍ39), 이애희 이사(경영전략사업지원부서장ㆍ42), 조정열 이사(제3사업본부장ㆍ37), 김이경 이사(인력개발부서장ㆍ34)가 이들을 대표한다.한국IBM은 전체 직원 2,500명 중 10%인 250명이 여성이다. 임원급으로 박정화 상무(마케팅 총괄), 이숙방 상무보(기술지원), 한혜경 이사(컨설팅), 박주혜 이사(컨설팅), 박소영 이사(컨설팅) 등 5명이다. 2003년 1월 임원으로 승진한 박정화 상무는 현재 마케팅사업본부 총괄업무를 담당하면서 아ㆍ태지역 고객관계관리 컨설팅업무도 맡고 있다.통신장비업체인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는 전체 직원의 25%가 여성이다. 심재민 IT팀 이사, 박미경 경영지원ㆍ대외협력팀 이사, 오미경 재무팀 이사 등이 활약 중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한국루슨트테크놀로지의 R&D를 맡고 있는 한국 벨연구소의 연구인력 가운데 70%가 이공계 출신 여성이다. 독일계 소프트웨어업체인 SAP코리아도 전체 임원 27명 중 류경옥 중견·중소기업 영업담당 이사를 비롯해 3명이 여성 임원이다.볼보자동차코리아는 수입자동차업계 최초로 여성CEO를 배출했다. 최근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향림 사장(43)이 주인공이다.자타가 공인하는 재무통인 그녀는 97년 볼보트럭 재무과장으로 자동차와 첫 인연을 맺은 지 7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이밖에 벤츠마케팅을 총괄하는 김예정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상무, 홍보를 맡고 있는 김영은 BMW 이사 등이 활약 중이다.외국계 기업에 유독 여성임원이 많은 것은 주로 창의력이 요구되는 IT 관련 기업이 많기 때문. 게다가 다양한 복지정책을 내놓고 우수한 여성인력 확보에 적극 나선 것이 주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