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님들은 우리 회사의 보물입니다.”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김순무 한국야쿠르트 사장(61)의 애정은 각별하다. 호칭도 꼬박꼬박 ‘여사님’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가 성공한 것도 순전히 방문판매(이하 방판) 사원들인 ‘여사님들’ 덕분이라고 치켜세운다. 실제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파워를 알게 되면 김사장의 말이 결코 ‘립서비스’가 아님을 실감한다. 2003년 회사 전체 매출액이 8,650억원인데 이중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벌어들인 금액이 6,700억원에 달한다. 더군다나 김사장은 공채 1기 출신. 47명에서 출발한 방문판매조직이 1만2,000명으로 크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산증인이다. 따라서 방판조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0년 CEO로 취임한 뒤 줄곧 머릿속에 담고 있는 화두도 어떻게 하면 지금의 방판조직을 더욱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인가이다. 김사장은 “향후에도 방판을 근간으로 회사의 비전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아울러 “제품의 질을 더욱 높이고, 기업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간다면 세계 일류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인터뷰는 3월30일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이뤄졌다.요즘도 방문판매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한국야쿠르트가 업계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제품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형 유산균 개발, 위 건강 발효유 ‘윌’ 등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탄탄한 야쿠르트 아줌마 조직이 큰 밑거름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사님들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최대 자산이자 보물이다’고 늘 말하고 다닙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따라서 1만2,000명의 야쿠르트 아줌마들이야말로 우리 회사가 지난 33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공채 1기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방판조직을 꾸리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죠.지난 71년 공채 1기로 입사할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해 8월 처음으로 야쿠르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방판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발효유의 특성상 4도 이하의 냉장시설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냉장고를 갖춘 집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직접 제품을 소비자에게 배달할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일자리를 얻기 힘든 주부들을 활용하자는 생각에 아줌마로 방판조직을 꾸리게 된 것입니다. 71년 5월1일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47명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 1만2,000명으로 늘어난 것입니다.힘들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요.우여곡절이 많았지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 방판이라는 유통방식을 찾기 힘들었거든요. 더군다나 자체적인 제품력도 없었고. 당시 슬로건이 ‘손에서 손으로’입니다. 우리 판매원들이 직접 소비자를 만나서 설득하고 손으로 전달해 주라는 뜻이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지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70년대 중반 석유파동으로 온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을 때입니다. 원료공급이 전혀 안되는 바람에 엄청 고생했지요. 분유나 설탕을 구할 수 없었으니까요. 원재료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방판조직 구축에 실패한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야쿠르트가 1만명이 넘는 거대 방판조직을 구축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려주십시오.방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우선 제품이 뛰어나야 합니다. 또 기업이미지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판매원들이 회사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 매출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조직 또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여사님들 중에는 30년 넘은 사람들도 수두룩합니다. 최고령자는 현재 76세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지요.조직관리가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우리는 35년의 방판 역사를 거치는 동안 아줌마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독특한 방식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우선 정년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장기활동자에 대한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각종 시상제도도 다양합니다. 20년 근속자에게는 동남아관광, 25년 활동자에게는 미주여행을 보내줍니다. 이렇게 되자 장기근무에 대한 혜택을 받기 위해 3년 이상 근무하게 되면 웬만해서는 그만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들은 고객관리 노하우가 뛰어나기 때문에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또 판매왕 제도가 없습니다. 보험과 전자회사들의 경우 매년 ‘올해의 판매왕’을 뽑고 대대적인 축하행사도 펼치고 있지만 억대 연봉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월 100만원 미만의 수입을 얻고 있는 형편입니다. 반면 우리는 판매원들의 수익이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는 평균화 정책으로 우리의 일관된 정책 중의 하나입니다.친절교육을 특히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친절은 필수적입니다. 미소가 없고 친절하지 않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98년부터 사내교육기관인 친절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비롯한 전 임직원이 1년에 두 차례 이상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친절교육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주관하는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6년 연속 업계 1위를 지속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대리점이나 일반유통점 등 다른 유통경로를 고려하신 적은 없는지요.발효유 제품은 4도 이하의 냉장유통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마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방판조직을 이용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냉장고를 갖고 있는 조직이 드물었기 때문에 아줌마들이 매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매일 마셔야 하는 제품의 특성상 일반유통보다는 매일 고객들에게 제품을 전달하는 방판조직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일반유통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부 업체들이 방판 구축과 관리에 실패한 것은 시판과 병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판보다 시판가격이 유통과정에서 더 싸지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방판과 시판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지요. 우리가 오로지 방판유통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지금의 막강한 조직력을 활용해 사업다각화에 나설 계획은 없으신지요.“한마디로 방판조직을 활용해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대로 운용할 것입니다. 한때 라면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방판조직을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방판과 별도로 라면과 음료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조직을 강화해 회사의 규모를 키울 것입니다.방문판매의 미래를 밝게 보시는군요.방문판매가 인터넷쇼핑몰 등 새로운 판매채널에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방판은 방판대로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방식보다 우수한 점들도 적잖습니다. 방판은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서 설명하는 구전 마케팅과 테스트 마케팅을 한꺼번에 실시할 수 있습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1만2,000명의 판매원들이 우수성을 대면해서 설명해줍니다. 여기서 거두는 효과는 탁월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방판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할 것입니다.그러나 방판에만 의존한다면 종합식품회사로 발전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이미 음료와 라면사업을 하고 있듯이 우리의 지향점은 종합식품회사이며 세계 일류기업입니다. 큰 욕심은 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우선은 기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수익을 늘려 나갈 것입니다. 일단 일반 야쿠르트만 하더라도 경쟁사에 비해 30% 정도는 비싼 것이 사실입니다. ‘윌’도 고부가가치 제품의 일종입니다. 우리는 이미 고부가가치에 성공했고, 이런 기조를 앞으로도 고집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도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박사 학위 소지자 7명을 비롯해 50여명의 연구인력이 유산균 부문은 물론 식음료, 건강식품,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들었습니다.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75년부터 임직원 급여의 1%를 기금으로 모으는 ‘사랑의 손길 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일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매년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보금자리 마련, 결식아동돕기 기금 지원 등의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300여명의 임직원들이 사랑의 헌혈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요.10년 뒤 회사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현재 경영의 초점을 연구개발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사업영역은 발효유ㆍ우유 부문과 스낵ㆍ조미식품 부문, 음료ㆍ먹는샘물 부문으로 나뉩니다. 발효유ㆍ우유 부문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기능성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업계 1위 업체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여나갈 것입니다. 스낵ㆍ조미식품 부문에서는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을 활발하게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음료ㆍ먹는샘물 부문에서는 한국의 전통음료를 비롯해 건강지향적인 신제품 개발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음료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약력 : 1943년 대전시 출생, 1962년 대전고등학교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1971년 한국야쿠르트 공채1기 입사, 1989년 이사, 1995년 전무이사, 1997년 부사장, 2000년 대표이사 사장, ※상훈 2002년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한·일 경제인 대상인터뷰 후기1등기업 CEO의 여유, 자신감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나직했지만 자신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1등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여유라고나 할까. 입사 후 줄곧 생산현장을 지켜 온 산증인답게 인터뷰 도중에도 ‘품질’과 ‘소비자 신뢰’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톤이 높아졌다. 분유 등 원부자재 확보에 애를 태웠던 70년대 중반을 회고할 때는 지난 세월이 새삼스러운 듯 잠시 감회에 젖기도 했다. 가장 큰 고민은 ‘5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톱컴퍼니를 이끄는 리더답게 미래에 대비하는 안목이 엿보였다.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 운동과 독서로 하루를 여는 스타일. 한국야쿠르트가 일본측 대주주인 야쿠르트도 부러워할 우수한 제품을 다수 내놓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듯 ‘연구, 개발’이라는 단어가 수차례나 답변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