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시장이 수요 실종으로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3월1일 발표된 건설교통부의 미분양 현황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4만1,137가구로 지난해 12월 대비 7.5%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8년 10만2,700여가구를 기록한 뒤 2003년까지 이어지던 미분양 감소 현상이 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순위 내 마감은 고사하고, 아예 미분양 물량을 팔기 위한 업체들의 치열한 ‘마케팅 전략’이 점입가경이다.실제 업계 관계자들은 “청약시장이 실수요 위주로 재편된 만큼 과거와 같은 가수요에 기댄 청약 1순위 마감은 힘들 것”이라며 “서울지역도 비인기 지역 아파트는 미분양이 불가피해 미분양을 털기 위한 전략회의까지 열리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업체 입장에서는 미분양은 그야말로 천덕꾸러기이다. 업체는 빨리 아파트를 팔아 자금을 돌려야 하는데,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에는 자금이 막혀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업체들은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이를 빨리 팔아 치우기 위해 과거에는 고객을 끌기 위한 분양가 세일 작전을 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분양가 인하가 어려워지면서 중도금 무이자, 이자후불제 등 수요자에게 유리한 금융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이 과정에서 미분양 아파트의 또 다른 장점인 청약에 제약 조건이 없다는 점이 부각된다. 실상 미분양 아파트는 청약통장 없이 구입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누구나 돈만 있으면 이런저런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물론 미분양 아파트는 재당첨 제한 또한 받지 않는다. 이 말은 청약통장 가입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도 기간과 순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다른 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이다.서울·수도권 ‘유망 아파트’ 제법 많아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남아 있는 미분양 아파트를 살펴보면 의외로 대단지, 택지개발지구, 역세권 등 유망 아파트의 조건을 갖춘 물량이 눈에 띈다.구로구 개봉동 225-5번지 일대 개봉초등학교 인근 개봉동 현대아이파크는 총 684세대 중 24~34평형 저층부 1~2층에 대략 60여세대가 남아 있다. 분양가는 1층 24평형이 2억115만원 내외, 34평형은 1층 기준으로 3억원 남짓이다. 5층 이하 아파트에 대해 이자후불제를 실시하는 이 아파트는 서부간선도로와 경인로를 통해 시내 진출입이 수월하고, 1호선 개봉역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자양동 일대 주상복합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자양 이튼타워리버 2차도 6~7층 이하에서 미분양 20여세대가 있다. 분양가는 4억3,400만원선으로 이자후불제를 실시하고 있다.수도권에선 파주 교하지구에 미분양 물량이 저층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14블록에 위치한 우남퍼스트빌은 39평과 48평형에 걸쳐 80여세대가 미분양된 상태. 분양가는 39평형 기준으로 2억7,000만원 내외이며 계약금 10%와 중도금 60%를 무이자로 대출해 주고 있다. 12블록에서 분양 중인 진흥효자아파트도 33평형에 15세대 정도가 미분양돼 있다. 분양가는 33평형이 2억2,900만원 내외로 계약금 5%, 중도금 60% 대출을 알선해 주며, 이자의 50%를 회사측이 부담하는 조건이다. 업체 설명대로라면 계약금 1,145만원만 내면 당장 내집 장만이 가능한 셈이다.의정부시 녹양동에 들어서는 1,196세대 규모의 녹양현대홈타운도 230여세대가 분양물량으로 선보이고 있다. 대다수가 5층 이하 물량으로 분양가는 24평형이 1억2,000만원 내외, 32평형이 1억9,000만원선으로 저렴하다. 계약금 10%, 중도금 50%에 대해 이자후불제를 실시하고 있다.분명 비수기철에 나오는 미분양 아파트는 잘만 고르면 실수요자에게 유리한 구석이 많다. 건설업체들도 이런 점을 부각시켜 미분양 주택을 털어 내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이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 대목은 이 과정에서 미분양 주택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주택업체들이 흔히 미분양을 털기 위해 내세우는 금융전략부터 살펴보자. 주택업체들이 내세우는 금융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중도금 무이자 대출과 이자후불제 등 이자를 감면해 주는 것이다.중도금 무이자ㆍ이자후불제 “무조건 좋진 않아”중도금 무이자는 말 그대로 중도금을 무이자로 빌려준다는 의미로, 수요자 입장에서는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을 공짜로 대출받아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건설업체 입장에서 본다면 막대한 이자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로 보인다. 그러나 분양가를 따져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실제 쌍문동에 분양한 모 건설업체의 경우 중도금 무이자를 내세워 미분양 주택을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24평형이 2억1,000만원선으로 인근 동일 평형대 신규 아파트 시세인 1억9,000만원보다 높다. 물론 마감재 등에 따라 분양가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중도금 무이자에 따른 건설사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흔적이 농후하다.이자후불제도 마찬가지이다. 이자후불제의 경우 입주 후 중도금 대출에 따른 이자를 수요자가 다시 내야 하는 금융 조건이다. 물론 중도금 대출에 따른 이자를 꼬박꼬박 내는 수요자 입장에서 본다면 ‘안 해주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분양가 자체가 높게 책정돼 수요자에게 제시된다면 이러한 혜택 역시 무의미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다.이자후불제를 내세운 파주 교하지구 내 모 아파트의 경우 평당 분양가격이 700만원 내외다. 주변 신규 아파트의 매매가격이 평당 650만원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가 높은 셈이다.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아파트가 싸기 때문’, ‘청약하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까’, ‘각종 금융 혜택을 받아 임대용 사업을 염두에 둔 사람들’ 등 이유가 다양하다.하지만 입지가 떨어지거나 교통여건이 좋지 않은 아파트의 경우 입주시점에서 전세가 나가지 않거나 나중에 되팔 때 거래가 되지 않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다수 물량이 1~2층 저층부에 몰려 있다.한마디로 미분양 아파트는 ‘미분양이 될 만한 조건’을 갖춰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누구나 생각하는 ‘가격 상승’이 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코 ‘싸지도 않은 비지떡’을 살 경우 낭패를 보는 것은 고스란히 ‘산 사람 몫’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