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의 명성은 누가 뭐래도 국내 톱이다. 적어도 백화점만은 적수가 없다. 최근 경쟁사가 운영하는 할인점의 급성장으로 유통명가 위상에 타격을 입었지만 백화점 최강의 자리는 굳건히 지키고 있다.하지만 이런 파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명품분야는 다소 취약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본점의 명품비중(매출액 기준)이 10%를 넘지 않아 경쟁 백화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명품시장이 급성장을 거듭해 온 터라 롯데 입장에서는 위기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자연 회사 내부에서도 명품을 강화하지 않고는 명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3월 롯데 본점 옆에 단독건물로 문을 연 명품관 에비뉴엘(Avenuel)은 롯데의 야심작이다. ‘명품의 강북시대를 연다’는 의미 외에 ‘명품명가 롯데’라는 등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했고, 전체적인 운영 역시 신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이사(신영자 부사장의 딸)가 직접 챙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백화점 내부의 기대 역시 무척 높다. 회사측은 연내에 일단 8~10% 수준인 본점의 명품비중을 15%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매출액 또한 에비뉴엘을 지렛대 삼아 1,500억원까지 높인다는 구상이다. 하성동 해외명품팀장은 “에비뉴엘의 인지도와 반응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는 만큼 당초 기대한 수치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명품관의 개관으로 롯데가 앞으로는 명품전쟁에서도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롯데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에비뉴엘은 신개념의 명품관시대를 열어갈 선두주자라는 평가에 걸맞게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돋보인다. 우선 매장면적이 5,200평 규모에 이른다. 영업면적이 3,000평이고, 부대시설이 2,200평을 차지한다. 이는 단일 매장면적으로는 갤러리아 명품관에 이어 두 번째다.명품관의 수준을 가늠하는 명품브랜드 수도 96개에 이른다. 최고의 상품을 끌어들인다는 당초 계획대로 샤넬, 루이비통, 버버리 등 세계 최고 브랜드를 잡는 데 성공했다. 특히 에비뉴엘은 이들 세계적 브랜드를 위해 복층으로 꾸며진 국내 최대 규모의 메가스토어 매장을 제공했다.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명품브랜드들도 파격적인 매장운영을 약속하고 나섰다. 루이비통은 국내 백화점 가운데 최초로 의류를 포함한 풀라인(Full line)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샤넬은 전세계 2개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특별 향수를 판매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샤넬, 불가리, 반클리프아펠, 쇼메, 프랭크뮬러, 미키모토, 보스, 베르사체 등은 강북상권에서는 처음으로 단독매장으로 운영한다.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매장과 브랜드도 여럿 확보했다. 스와치그룹의 최고가 시계매장으로 유명한 뚜비용샵을 비롯해 마놀로블라닉, 로얄아셔 같은 브랜드가 들어왔다. 또 오브제의 디자이너 강진영씨가 뉴욕에서 선보이고 있는 Y&Kei도 에비뉴엘 매장 안에 숍을 오픈했다.에비뉴엘의 전략은 단지 명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고급 문화와 트렌드를 함께 판다는 것이 롯데의 구상이다.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 보면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구체적으로 ‘가든&갤러리’와 ‘휴’(休)라는 테마를 통해 외국의 부티크호텔과 견줘도 손색없는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실내 인테리어를 갖췄다. 특히 국내 유명작가의 창작기획전 등을 유치해 고품격 문화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특히 에비뉴엘 라운지는 인테리어디자이너 해리 그레고리가 직접 선택한 앤티크 스타일의 가구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거실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라운지 안에 있는 도서관에는 각 명품브랜드들과 VIP고객들이 기증한 미술, 디자인, 패션, 건축, 사진 등 예술 관련 서적 1,000여권이 비치돼 있다.백화점의 명품전쟁은 마케팅에서 판가름이 날 가능성이 크다. 에비뉴엘 역시 이를 감안해 VIP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백화점 자체 자료를 바탕으로 최고 고객 500명을 별도로 선정해 이들에게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이들을 위해 사교모임과 강좌를 별도로 열고 있으며 멤버스클럽도 따로 만들었다. 여기 멤버들에게는 개인도우미의 서비스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하고 지인들끼리 개인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빌려주기도 한다. 고객이 원할 경우 최고급 차량과 샴페인 제공 등은 기본이다.롯데는 에비뉴엘 오픈과 함께 기존의 본점 명품관에도 변화를 줬다. 롯데 본점은 그동안 1층과 4층 매장을 명품관으로 운영해 왔다. 일단 1층은 까르띠에 등 일부 브랜드를 에비뉴엘로 이전한다. 빈 공간에는 셀린느, 디올, 이브생로랑 등 새로운 브랜드로 채운다. 특히 1층은 모두 명품매장으로 구성해 집약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4층은 이동이 크다. 전체 20개 브랜드 가운데 오일릴리, 가이거, 마리나리날디 등 3개 브랜드만 남긴다. 나머지 17개(버버리, 돌체&가바나, 겐조 등)는 에비뉴엘로 옮긴다. 빈 공간은 대부분 란제리매장으로 바꾼다. 4층의 경우 명품기능을 대폭 낮추는 셈이다.롯데는 에비뉴엘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이미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그동안 적어도 백화점만은 불패신화를 이어왔다고 자부하는 상황에서 자칫 에비뉴엘의 영업이 부진할 경우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는 까닭이다. 더욱이 오너 일가가 직접 챙기고 있어 ‘실수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롯데는 잠실점, 부산점, 대구점 등의 명품매장은 그대로 운영한다. 어차피 에비뉴엘과 고객이 거의 겹치지 않는 만큼 기존의 방식대로 계속 꾸려나갈 예정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명품선호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넓힌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