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종의 각기 다른 성격의 전단지 다향 만들어 배포, 상품기획력 높이는 수단으로 적극활용

아침마다 신문 사이에 끼여 배달되는 광고전단지(찌라시)는 천덕꾸러기다. 조간신문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우수수 떨어지는 전단지에 짜증을 내보지 않은 독자들은 아마 드물 것이다.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버리고 또 버리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독자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것이 광고전단지다. 알뜰살림의 정보와 지혜가 담겨 있다며 정성스럽게 챙기는 주부도 물론 많지만 대다수 독자들이 가진 인상은 그다지 좋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이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신문에 끼여 있는 광고전단지의 양은 한국을 훨씬 능가할 때가 많아 신문을 구독하는 것인지 광고물을 배달받는 것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외부에 비친 인상이 이러한 탓에 광고전단지가 광고주의 돈벌이로 직접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일본 통신판매업계에서 빅3 가운데 하나로 통하는 벨루나는 광고전단지가 무슨 돈을 벌어주겠느냐는 선입견을 뒤엎은 성공사례로 주목받는 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말로 끝난 2002 회계연도 결산에서 1,051억엔의 매출과 108억엔의 경상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6.8%가 늘었으며 경상이익률은 10.3%로 동종업계 최고에 랭크됐다. 경상이익만 놓고 보면 도쿄증시에 상장된 통신판매업체 6개사의 전체 이익 중 벨루나의 비중이 40%를 넘는다. 나머지 5개사의 경상이익을 모두 합쳐도 벨루나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발군의 성적을 올렸다는 얘기다.인감도장을 방문판매하는 업체로 출발해 지난 83년부터 의류 통신판매사업에 뛰어든 이 회사는 현재 3종의 정기 판촉광고물을 발행하고 있다. 의류와 잡화가 중심인 ‘벨루나’, 보석 및 원예용품 등을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종합 카탈로그 ‘루프란’, 그리고 가구와 건강용품 등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멋진 생활’ 등이 그 면면이다. 지난해 발행된 이들 3종의 판촉광고물은 모두 4,369만부에 달했다. 잠재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판촉광고물을 만들고, 이를 수십 수백만 명의 회원들에게 뿌리는 것은 모든 통신판매업체가 애용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3종의 판촉광고물을 4,300만부 넘게 제작해 배포했다는 점에서는 벨루나나 다른 경쟁업체나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그러나 이 회사의 숨겨진 강점은 판촉광고물을 뿌리는 전략, 즉 전달경로와 실제구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성공률에 있다. 다른 업체들처럼 광고물을 배포하더라도 좀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판촉활동이 될 수 있도록 싣는 내용과 고객리스트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에서 각종 데이터를 정확하게 뽑아낼 수 있도록 광고전단지를 100% 활용했다는 점이 이 회사의 성장을 떠받친 비결로 꼽히고 있다.벨루나는 B4 또는 B3 사이즈의 종이에 각종 염가, 기획상품이 가득 담긴 광고전단지를 일주일에 1,000만장 이상 제작, 일본 전역에 배포하고 있다. 이는 2~3주간만 계속 뿌리면 일본의 모든 세대를 커버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이다.하지만 광고전단지가 실제 상품구입으로 이어지는 확률은 결코 높지 않다. 배포량의 0.15~0.2%선이다. 1건의 주문을 얻기 위해 약 6,000~8,000엔의 광고비가 투입된다는 것이 회사측의 계산이다. 한편 이 회사가 고객들로부터 얻어내는 수주단가는 1만4,000엔을 조금 넘고 있다. 이들 숫자만 놓고 따진다면 매출에 대한 광고비 비중은 50% 전후까지 올라간다. 일본의 다른 통신판매업체들이 적정수준이라고 평가하는 20~30% 비율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는 비용구조이거니와 잠재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뿌리는 광고전단지라 해도 무모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연간 4,300만부 넘게 제작벨루나가 이익이 남지 않고 돈만 잡아먹는 것 같은 광고전단지를 대량으로 뿌리는 이유는 전혀 엉뚱한 데 있다. 단순히 잠재고객을 새로 확보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전체 통신판매사업의 상품기획력을 높이기 위한 리트머스시험지 역할을 광고전단지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이 회사는 상품의 특성과 3종의 정기 판촉광고물에 맞춰 8개의 기획실을 두고 있다. 이중 3종의 정기 판촉광고물을 담당하는 4개의 기획실은 광고전단지에 들어가는 상품의 기획도 함께 담당한다. 광고전단지에 소개되는 상품은 어쩌다 광고 카탈로그에서 빼온 것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오직 광고전단지에 들어갈 목적으로 개발된 것들이다.일반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발행되는 통신판매용 카탈로그는 시장동향과 소비자의 반응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특정상품이 잘 팔렸다 해도 이를 다음호에 반영하려면 최소한 3개월에서 길게는 1년의 시차가 있게 마련이다. 이에 비해 일주일 단위로 뿌려지는 광고전단지는 안테나 기능이 훨씬 뛰어나다. 한 번 실린 후 주문이 신통치 않았던 상품은 다음주 전단지에서 여지없이 빠지고 새 상품이 자리를 채운다. 반대로 인기가 높았던 상품은 또 한 번 광고전단지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롱런의 가능성을 테스트받는다. 이후 효자상품으로 인정받게 되면 카탈로그의 구매효율을 높여줄 상품으로 기대를 모으며 정기 판촉광고물에도 실리게 된다.카탈로그의 1페이지당 판매효율이 높아지면 자연 매출에서 차지하는 광고비 비중은 내려간다. 이와 함께 광고전단지에서는 구멍이 났다 하더라도 회사 전체로 볼 때 손해는 크게 줄어든다. 카탈로그와 광고전단지의 두 채널을 동시에 동원함에 따라 상품 하나하나의 인기가 높아지면 제조업체에 대한 수주량도 늘어난다. 발언권이 세지고 가격교섭권도 강해짐은 물론이다.벨루나는 이렇게 축적한 방대한 실험결과와 데이터를 상품력을 높이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3개월마다 발행하는 카탈로그만으로 상품내용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개선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다카하시 고지 기획본부 주임의 말에서도 읽을 수 있듯 두 가지 수단을 절묘하게 배합해 활용한 것이야말로 벨루나를 탄탄대로에 올려놓은 비결이 된 셈이다.광고전단지를 통한 상품기획력 제고에 못지않게 이 회사가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실무를 담당하는 인력들의 사고와 자질이다. 벨루나는 실무 일선을 뛰는 직원들에게 ‘선입관을 버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과거의 판매데이터를 토대로 한 과학적 조달기법을 중시하는 한편 패션센스와 시장의 트렌드에 대해서는 직원 자신이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이 회사 사원들의 평균연령은 29세로 일본의 일반 기업들에 비하면 ‘새싹 회사’로 불러도 좋을 정도다. 그러나 통신판매로 벨루나의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중심 연령은 50~60대다. 일본사회에서 구매력이 가장 왕성한 것으로 꼽히는 이들 계층을 대상으로 의류, 잡화, 건강용품 등의 판매에 영업력을 집중시켜 온 결과다.고객과 상품기획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은 연령으로 따지면 부모와 자식에 해당될 만큼 큰 차이가 난다. 따라서 기본에 충실하고 실무자 자신의 선입관을 버려야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좀더 뚜렷이 보일 수 있다고 회사측은 강조하고 있다.세대차를 뛰어넘어 중년의 소비자들이 갖고 싶어 하는 상품을 찾아내려면 선입관이 아닌 과학적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벨루나는 갖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흐름을 감지해낼 새 안테나로 이 회사는 최근 미용실 체인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시장확대를 위해서는 20~30대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지만 여성관련 정보를 가장 빠르고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곳으로 미용실만한 아이템이 없다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