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는 지구상에서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나 결코 낯설지는 않은 나라다. 다만 그 실상을 올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많지 않은 듯 싶다. 특히 아르헨티나가 1백여년전에 이미 지하철을건설했고 1928년 세계최초로 대중 교통수단인 시내버스를 발명, 운행했던 공업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구나 드물 것이다.한때 아르헨티나라고하면 곧바로 부패와 인플레를 떠올리게 하던시절이 있었다. 또 과거에는 세계 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었으나 정치적 동요와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해 옛 영화를 잃고 지금은 농축수산업 등과 1차산업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보는 이같은 시각을 이제는바로 잡아야 한다.시장개방과 세계화의 물결은 이 곳에도 예외없이 밀려들고 있다.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오랫동안 남미의 파리라는 자부속에 가졌던자존심 높은 자세를 벗어나 21세기를 적극적으로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2억여인구의 남미 공동시장을 겨냥한 다국적 기업들의현지 진출 러시를 맞아 현지 기업들도 생존을 위한 발빠른 변신을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유럽 개척자들에게 수탈을 당하고 이 땅에서 밀려난 인디오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현지기업들이 5백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전통적으로 곡물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남미의 곡창 아르헨티나가 2차대전 이후 국제무대에서 밀려난 이유로는 흔히 정권의 부패와 긴 세월의 군사통치가 꼽힌다. 하지만 남부지역의 곡물과 육류 및 북부의 잡곡을 운송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의 낙후로 인해 물류 (수송)비가 생산비와 맞먹는 불합리한 구조가 오래 지속됐고 이것이 결국 국제경쟁력 상실의 원인이 됐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식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메넴 대통령이 대규모 국토개발사업을 천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현재 아르헨티나는 국가의 역사와 지도를 바꿀만한 대규모 초대형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몇가지 대형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우선 세계 최대의 강폭을 자랑하는 라 플라타강을 가로질러 우루과이를 잇는 초대형 교량공사를 들 수 있다. 현재 영국의 J.래임사가 공사권을 따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루과이 잇는 최대교량공사 추진그리고 남부 휴양지를 관통하는 고속 전철 공사에서는 스페인이 자존심을 걸고 도전하고 있어 일본과 프랑스 기업들이 어떤 조건을내걸어 스페인의 기득권을 무너뜨릴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밖에 남부의 곡창지대와 항구를 잇는 고속도로 및 철도공사, 항만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구미 각국 업체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중이다. 그러나 중동붐을 일으켰던 한국의 건설회사들이 이 수주 대열에서 눈에 띄는 것같지 않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한다.한편 아르헨티나의 일반 노동자들의 교육수준과 숙련도는 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포드 자동차와 프랑스의 푸조 르노사가 브라질 시장에서보다 이곳 아르헨티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점에 힘입은 바 크다. 일본도요타 자동차의 현지공장 설립(곧 준공 예정)이나 영국 로버사의투자결정 배경도 이곳 자동차 부품하청업체들의 생산 능력과 기술수준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아르헨티나에는 지금 제과 식품, 대형유통업, 석유화학산업 등 다종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국적 기업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제 고질적으로 천문학적 인플레를 기록했던80년대의 나라가 아니다. 90년대 초반 실시된 「태환정책」으로 인해 한때 연 5천%가 넘던 인플레는 1%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남미 공동시장(MERCOSUR)이라는 블록으로 무장하고 있다.한국이 종전처럼 섬유나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팔기만하면 되는 단순 무역지대로 인식한다면 착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