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빈의자를 놓고 「먼저앉기?게임을 한다고 가정해 볼 때주위를 도는 사람이 열명이라면 경쟁률은 2대1. 누구라도 해볼 만하다고 여길 것이다.취업은 그러나 「먼저앉기?게임이 아니다. 대기업 은행 공사 등의입사경쟁률은 2~3대1정도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인기있는 직장을얻고 비전있는 일을 선택하려 들면 경쟁률은 수십대 1을 넘어 수직상승해 버리기 일쑤다. 그저 원서 한번 내보는 허수지원을 뺀다해도 취업에는 「좁은 문?이란 완곡한 표현을 넘어 「전쟁?이란 단어가 따라붙게 된다.올해도 어김없이 취업전쟁이 한창이다. 특히 올해는 입사시험에서큰 변화가 있었다. 삼성 현대 LG 등 그룹사들은 물론 중견그룹들과은행권의 대부분 기업체가 암기위주의 지식을 평가하는 필기시험을없애버렸다. 당연히 대학성적 외국어능력 면접점수가 시험의 당락을 결정하는 「3대요소?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 가운데 특히면접전형은 과거 「통과의례?정도로 생각됐던 것에서 명실공히 「사회로 통하는 마지막 관문?이란 성격을 부여받게 됐다. 필기시험의 폐지는 졸업을 6개월 혹은 1년 앞두고 대학가가 온통취업준비에 돌입하게 돼 대학교육을 부실하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오랜 지적을 받아들인 결정이다. 기업쪽에서도 지식평가위주의 인재채용방식으로는 독창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국제경영환경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수만통 서류, 불과 20여명이 심사기업들을 보면 필기시험의 폐지보다 공정하고 종합적인 평가방법을만들기 위해 부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삼성 LG 포철 등이 실시하는 검사제도는 필기시험과는 달리 지각능력 수리공간능력 판단력등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하는 내용이다. 한보그룹의 경우 면접시간을 무려 5시간으로 늘리기로 했고 미원은 노래방 호프집 등을 찾아가 실무자들과의 대화를 통한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면접을 여러단계로 실시하고 질문위주에서 일정한 주제토론을 통해 지원자들을 면밀히 파악하고자 시도하고 있다.또 현대와 포철은 학점평가에서 공정을 기하기 위해 전국대학의학과별 성적분포를 파악, 가중치를 산정해내고 학점과 입사이후 근무평가간의 상관관계를 검토하고 있다. 교수추천제를 도입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학교와 선배사원의 추천을 의무화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그러나 입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서류면접전형강화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무엇이 새로운지 모르겠다는 식이다.사업연도가 새롭게 시작되면 그룹내의 계열사들은 인력수급계획을마련하게 된다. 신입 경력직원이 몇 명, 계열별로 전공별로 몇 명하는 식으로 윤곽이 잡히고 계열사별 계획은 그룹차원에서 모아진다. 그룹에 인력관리부서-혹은 계열사 중 그 해의 주간사회사가 된곳-에서 예산편성 공채일정 신문공고 등의 실무적인 작업을 추진한다. 일단 공채가 시작되면 원서접수 분류 등 서류전형은 그룹차원에서 이뤄지고 면접은 대개 계열사별로 진행된다.지원자들은 우선 서류전형을 담당하는 인력이 얼마나 되겠는가에대해 의문을 갖는다. 대개 그룹의 인력관리부서가 많아도 20명을넘기가 어렵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도 『서류전형이 중요해진 만큼좀더 면밀히 검토해야겠지만 작업인력을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고밝혔다. 결국 서류전형이란 10여명 남짓되는 인원이 수만통의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한정된 시간안에 끝내야한다. 이렇게 보면 강화된 서류전형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왼쪽상단의 얼굴 학교 학과 성적 대학활동 외국어기록칸 등을 한 번씩 들여다본다면 다행이다.원서에 한두번 눈길을 주고 최종선발인원의 3~4배수가 솎아진다.일부기업들이 자체적인 평가기준을 마련,공정을 기하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계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면접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양한 「선전성?의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면접은 길어야 20~30분 동안에 이뤄진다. 면접에 있어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수긍?이다. 서강대 윤은경씨(영문4)는 『면접을 보면서 저는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저 옷 잘입고 화장예쁘게 하는 수밖에 없잖은가라는 얘기가 4학년들 사이에서 일반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입사하고자 지원하는 입장에 서면 메활동성 창의력 친화력 등을 보겠다?라는 말은 사실 애매하기만 한 얘기일 수밖에 없다.◆ 취직과외 … 영어학원·해외연수결국 애매한 것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객관적인 수치를 높이려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원자들은 학점을 높이기 위해안간힘을 쓰고 높은 토익점수를 받아두는 쪽으로 환원된다.현재 G-TELP를 실시하는 선경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그룹들이 토익성적을 중시한다. 외국어학원 수강은 필수적이다. 종로 ELS의 김창수 실장은 『전통적으로 토플수강생이 많았으나 지난 6월부터 토익반에 수강생이 더 몰리고 있다』며 『예년같으면 개학과 동시에 수강생들이 줄어들었으나 금년에는 대기업의 채용방식변화로 인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외국어학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휴학계를 제출하고 어학연수를떠나는 학생들도 급증하고 있다. 조성찬씨(연세대 철학4)는 자신이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1년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금융기관에 들어가고 싶으나 철학전공자이기 때문에 경상계열 학생들보다 불리하다. 영어를 남보다 특출나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재작년 영국의 킹 스트리트 컬리지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덕분에회화와 청취력이 향상돼 TOEIC도 905점을 얻었다』기업들이 서류전형시 학점을 중시함에 따라 재학생들의 재수강률도높아지고 있다.김소은씨(고려대 언어4)는 『B학점이면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학점을 중시한다는 발표가 있고 재수강하는친구들을 자주 본다』고 말한다.경희대 취업정보센터는 변화된 면접의 방향을 잡지못해 설왕설래가많았던 무렵 모교 출신 대기업임원들을 초청, 메열린 모의면접 및토론회?를 개최했다. 연습으로 면접체험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이 역할연기는 「실제상황?을 방불케 하는 비장감마저 감돌았다.졸업생들의 취업난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사회문제다. 필기시험 폐지와 서류면접전형의 강화는 취업난을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당초 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던 대학교육의 정상화에도 현실적인 거리감이 있다.그렇다고 취업문제에 있어서 즉효의 처방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노동시장의 구조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바이어스마켓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회문제로서의 취업은미스매칭-구인과 구직자들이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는 상태-을 해결하는 측면에서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노동시장구조의 기본적인 한계속에서도 고르게 「파이?를 나눠갖기 위해서는 「기회의 다양화?와 「정보공개?라는 키워드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룹사 전형은 한날 한시에 치러지고 있다.한 취업준비생은 이같이 푸념한다. 『적성검사 아니면 면접 신체검사가 중복돼 버립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두세군데 지원했다떨어지면 최소한 반년정도를 허송하는 거지요. 적성이든 뭐든 따질계제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들어가야 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