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파문에 뒤이어 5·18 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잘못된관행을 뜯어 고치고 오래된 부패의 고리를 끊겠다는데 우리나라 국민중 그 누가 반대하랴마는 과거에도 그랬듯 이번 정국이 사건 자체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나 고찰을 통해 근본적인 개혁을 하기보다는 이전투구식의 폭로와 성명으로 정치적 목적만 달성한 뒤 용두사미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 걱정된다.정가에서 「정면돌파」니 「사생결단」이니 하면서 듣기만 해도 섬뜩한 정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요즈음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우리나라 경제에 매우 의미있는 중대사건 하나를 목도한다.중대사건이란 다름아닌 현 정국의 악화로 그 빛이 다소 스러지고있는 「수출 1천억달러 달성」이라는 낭보이다.혈기왕성했던 시절 공직에 있던 필자는 겨우(?) 1백억달러 목표를가지고 수출입국이랍시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기업을 독려하고 다닌경험이 있던터라 1천억달러 수출달성이라는 최근 소식에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당시 품질이나 산업디자인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제대로 포장도 되지 않은 상품들이 전국 각지로부터 우마차에 실려와 마대에 담겨 외국배에 실리던 모습을 상기할 수 있으리라. 세계가 알아주는 제철 조선기술 기반 위에 우리 상품을 실은 우리배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있는 요즈음엔 감히 상상하기힘든 광경이다.하지만 「수출 1천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라고 하는화려한 외면의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우리 기업들이 WTO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이나 경쟁국과 어깨를 겨룰만큼 건실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큰 문제이다. 국내적으로 기업들은 인건비와 물류비 및 부동산가격상승 고금리 등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늘 경영압박을 받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기술력과 산업디자인력이 취약한데다 선진국의 고부가가치전략과 후진국의 덤핑공세의 틈새에 끼여 진퇴양난에 놓여 있다.무역규모에 있어서는 세계 12위를 자랑하고 있으나 내실이 없고,장래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WTO출범이후 기술개발과 산업디자인은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양대핵심요소로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산업디자인은 경공업 농수산제품의 경쟁력을 주도하고 있으며 성능이 중요시되는 첨단제품도 일단디자인이 나쁘면 소비자가 외면하는 실정이다. 최근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외국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디자인때문에 외국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무려 53%가 넘어 산업디자인이무역수지뿐 아니라 내수시장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처럼 개방경제시대에 경쟁력의 잣대라 할 산업디자인의 자체개발비중이 겨우 30% 미만에 그치고 있어 「외화내빈코리아」라는 소리를 들어도 속수무책이다.예전에 비해 외국시장에서 우리나라 상품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계경제는 1천억달러 수출고지를헐떡이며 넘어선 우리에게 그 장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OEM방식의 수출에 익숙해 있던 우리 기업들은 이제라도 산업디자인 개발에 적극 나서 우리만의 독특한 산업디자인으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명품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산업디자인 후진국」이라는 조롱은 「1천억달러 수출국가」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오늘도 각계 산업의 일꾼들은 소리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그 어떤 상황하에서도 중단되지않고 인류역사와 함께 전진해온 것이다. 이제 정치적으로 문제가되는 것은 철저히 파헤치고 이 기회에 「정치해바라기」가 「경제우등생」이 되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입만 열면 「고객·세계·초우량」을 지향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여.구치소로 향하는 전직대통령이 기업의 경쟁력을 걱정했다고 해서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는 행여 생각지 말라. 경제인 본연의 과제는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산업디자인 개발에 매진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숭고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며 이는 곧 세계화로 향하는 지름길이 된다.우리에게 있어 영원한 화두는 결국 경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