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를 억제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지하경제를 양성하고 있다.재정경제원이 올 정기국회에 제출한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에 대한비판의 소리가 높다. 「탈세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과세특례자를대폭 확대하고 있어서이다. 과표양성화로 「소득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전격 실시한 금융실명제의 기본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부가세법 개정안의 골자는 △과세특례기준금액을 연간 매출액3천6백만원에서 4천8백만원으로 상향조정하고 △연간 매출액이 4천8백만∼1억5천만원 미만인 개인사업자에 대해 간이과세제도를 도입하며 △면세점을 연매출액 1천2백만원에서 2천4백만원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재경원은 영세사업자의 세부담을 줄이고 납세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부가세법을 이같이 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과특자가 1백32만명에서 1백42만명으로 늘어나고 세금은 약 5백25억원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간이과세제 도입으로 연간 매출액이1억5천만원 미만인 중소사업자의 세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강조한다. 간이과세제도란 매출총액에 국세청장이 고시하는 업종별부가가치율을 곱해 산정한 부가가치추계액에 세율(10%)을 적용해내야할 세금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업종별부가가치율에 따라 과세하기 때문에 매출세액과 매입세액을 동시에 계산해야 하는 일반과세방식보다 세액계산이 간편해지고 세부담도 감소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개정안은 『중소사업자의 세부담경감 및 납세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아래 과특자를 양산해 부가세의 근본을 흔드는 개악』(정영헌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혹평이 확산되고 있다. 간이과세제도는 사실상 과특기준을 1억5천만원으로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재 평균부가가치율이 24% 수준인 것을 감안할 경우 간이과세대상은 세율이 2.4%인 과특자와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그결과 『정직한 세금계산서 주고받기를 유도해 과표를 양성화한다는 부가세의 기본골격을 뒤흔들어 놓게 된다』(최명근 서울시립대교수). 이번 세법개정으로 전체 부가세사업자중 74.1%인 1백77만명이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지 않게 된다. 불과 25.9%인 62만명만이 과표양성화의 질곡을 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특례기준 3천6백만원시 부가세 18% 탈루세금계산서를 제대로 주고받지 않을 경우 세금탈루는 불을 보듯 명백하다. 과특기준이 3천6백만원일 때 부가세액은 과특제도가 없었을 때보다 약 18.8%나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조세연구원,「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의 부가가치세 과표양성화에 관한 분석」). 또부가세 탈루는 소득세 탈루로 이어진다. 종합소득세를 신고납부한사람은 지난 93년 1백15만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납세의무자3백16만명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수준이다. 나머지 2백1만명은 과세미달(면세점이하의 소득)로 종소세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따른 소득세 탈루는 내야할 소득세의 24%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정영헌 연구위원). 부가세 과표가 드러나지 않아 소득이양성화되지 않고 결국 부가세와 소득세를 모두 빼먹게 되는 셈이다.재경원도 이같은 과특제도의 맹점을 알고 과특제도를 폐지한다는원칙을 정했었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 바이블이라고도 할수 있는 「신경제5개년계획」에서도 과특제도폐지 방침은 명확히 제시돼있다. 재경원은 지난해 마련한 세제개혁방안에서 당시 6백만원이었던 면세점을 연차적으로 3천6백만원까지 올려 오는 98년께 과특제도를 없앤다는 「일정」을 제시하기도 했다.그러던 재경원의 태도가 갑자기 1백80도 바뀌었다.『과특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원칙은아직 살아있으나 당장 폐지할 경우 중소영세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강만수 재경원 세제실장)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가 제시됐다.그러나 재경원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세부담완화라는 정치권요구에맞춘 징세편의주의적 합리화라는 지적이 강하다. 세금탈루를 조장하는 과특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표는 양성화하되 세율이높으면 인하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만이 「정부가 지하경제를 양성한다」는 불명예를 씻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