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가을 경주로 출장가게 되었다. 노송이 둘러선 왕릉들이 여기저기 솟아있는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내가 공직생활을 시작한곳이라 추억도 많지만 이번에는 남산에 있는 옥룡암(玉龍庵)을 찾았다.시내에서 불국사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황금물결 가을들판을지나 산골짜기로 올라가니 조그마한 절 옥룡암이 조금은 퇴락하였지만 낙엽속에 묻혀 있었다. 내가 머물던 추성각(秋聲閣)의 툇마루에는 가을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25년전 늦가을 경주에 처음 부임하였을 때 내가 앉아야 할 의자가너무 커서 거북스러웠고 젊은 나를 「영감님」이라 불러 어쩔줄 몰라 했었다. 첫달 봉급을 받고보니 한주일분이 빠져 하숙비에도 모자라는 16만여원밖에 안되어 억울한 마음에 친구와 둘이 취하도록마셨더니 하룻밤 술값도 못되었다.어느날인가 우리 직원이 영천 금호강변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사건이 있었는데 신문에서 세금을 가혹하게 매겨 맞아 죽었다고 하는 바람에 청와대에서까지 조사나오게 되었으니 현대판 「암행어사출또」였다. 우리들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묻는 말에 제대로대답도 못하자 『썩은 놈들 모조리 파면시키겠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내가 나서서 몇 달밖에 안 썩었으니 얘기를 들어 달라하고는 우리 직원이 죽은 것은 꼭 세금때문이 아니라 술에 취해 싸우다가 얼어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장면 한그릇에1백40원인데 하루 출장비가 1백50원이고 사무용품도 우리가 사고전화요금은 월급에서 떼어내고 하숙비에도 못미치는 직원들의 월급등 어려운 관정(官情)을 하소연하고는 관대한 처분을 요청한 끝에무사하게 되었으니 그때 민정(民情)을 살피던 청와대 그 사람이 지금도 고맙게 생각된다.그러던 어느날 「서정쇄신」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더니 우리직원 여러명이 돈을 먹었다고 줄줄이 검찰에 붙잡혀 갔다.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반은 데려나오고 반은 징역살이 가고 말았다.총각생활이었지만 부모형제에게 사람노릇 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어 빚만 늘어가 공사간에 어둡고 우울한 나날속에 구정물 마시고토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초겨울날 나는 홀연히 이곳 남산 골짜기 옥룡암 추성각으로 오게 되었다. 저녁에는 촛불밑에서 책을 읽고 주말이면 부처바위로 가득한 남산에 올라 때로 해질녘까지 명상하면서 분노하고 좌절하여 공직을 그만 두겠노라고 생각하다가도달리 대안도 없었고 또한 내가 그만 두어도 누군가 이 멍에를 메어야 하니 불나방처럼 맴돌다 불타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멍에를 벗기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기로 하고는 겨울이 지나자 다시 시내로 되돌아왔다.노태우 전대통령이 5천억원이라는 엄청난 비자금사건으로 구치소에갇혀있는 지금 지난 25년전과 오늘의 공직사회가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왜 이리 왜소해지는지. 지금까지공직자들은 대통령에서 서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 볼 때다. 모두들 윗물이 그랬으니 아래물이야 하고 말한다. 문민정부들어 새대통령께서는 한푼의 부정한 돈도받지 않으니 이제는 아래물이 맑아져야 할 차례다.낙엽지는 가을소리를 들으며 추성각 툇마루에서 일어나 산길을 내려오면서 25년전 그 갈등의 언저리에서 아직도 서성거리는 스스로의 모습에 연민을 느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새롭게 출발하여야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셨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돌로 치라 하시고… .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여자만남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