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태 중국주재 한국대사가 2년 6개월간의 대사직을 수행한 뒤 최근 귀국했다.황대사는 「꾀주머니」로 통한다. 3당합당의 실질적인 주역이면서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었다. 지금은 김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에 접어든데다 내년 4월의 총선을 낙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황 대사의 귀국에 일반의 관심이 쏠리고있는 것이다.그는 대사 재임시절 중국과 항공기 자동차 통신위성HDTV(고선명TV) TDX(전전자교환기) 등에 관한 산업협력협정을 체결하여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한단계 높였다. 양국간의 관계를 정치사회 문화 등으로 확대하는데도 기여했다. 대사재임시절 리펑총리와 차오스 전인대 상무위원장, 장쩌민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향후 양국간의 경제협력 전망과 대사직 사임이후 진로에 관해서 들어봤다.▶ 지난 4월말 버클리 대학 박사논문 「유학과 현대화-중 한일 유학비교 연구」를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어로 번역, 출간했지요. 이 논문의 골자를 소개해 주시지오.한 중 일 3국의 유교가 근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논문 주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유교와 근대화란 서로 상충되는개념으로 인식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일본 명치유신의 주도세력은 유학자들입니다. 유학중에서도 양명학이죠.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양명학은 일본의 근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어요. 반면 조선에 유입된 성리학은 사변과 관념을 중시했는데 결과적으로 조선의 산업화를 뒤처지게 한 요인이 되지 않았나하고 생각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무한 경쟁시대에 대사는 일국을 대표하는 비즈니스의 야전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주중대사로 재직하면서 중국과의 통상외교를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2000년대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EU(유럽연합) 등과 같은 기구가 확산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에도 그와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경제적 입지도 강화될 수 있지요. 자동차 항공기 HDTV TDX 등에 관한산업협력협정의 체결은 다면적 경제협력의 출발입니다.▶ 중국 고위층과 어떻게 교제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물론 중국과의 거래에서 관시(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법령이나원칙에 근거한 사업을 경영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요즘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정책의 투명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중국과의 거래관행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경제관련 법률이 다수제정되고 있는 것은 이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동양문화권에서 지연 학연 등을 완전히 무시하긴 힘들겠죠.▶ 중국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들의 얘기도 적쟎게 들립니다. 국내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요.소규모 투자라 하더라도 중국의 저임금만 활용하면 한몫 볼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생각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중국에 진출하면 백발백중 실패해요. 장기적 안목에서 대규모로 투자할 때가 온 것같습니다. 최근 현대 삼성 LG 대우 등이중국투자를 대형화하는 것은 중국시장의 변화추세와 관련,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재임기간중 리펑총리와 차오스 전인대 상무위원장, 장쩌민 국가주석의 방한이 성사됐습니다. 이들의 방한에 얽힌 뒷얘기를 들려주시죠.장쩌민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전단계로 리펑총리의 방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는 중국권력구조의 특성상 국가주석 방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94년봄 김대통령의 중국방문시리펑총리를 한국에 초청했으면 좋겠다고 건의드렸습니다. 그런데김대통령이 환영리셉션이 끝날때까지도 리펑총리에게 방한초청에관한 얘기를 건네지 않아요. 할 수없이 주머니에서 8절지를 꺼내「총리 초청」이라고 한글로 적은후 이를 가슴에 붙였어요. 김대통령이 저를 바라보지 않아 대통령의 시선을 좇아 움직였어요. 저를봤는지 김대통령께서 리펑총리에게 방한을 요청했습니다. 리펑 총리는 방한후 중국지도부에 한국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이것이 장쩌민 주석의 방한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자주 들립니다.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중국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까요.최근 북한은 <노동신문 designtimesp=20005> 사설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밀착을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연간 1백만t에 달하는 중국의 식량원조를거부할 정도죠. 중국지도부는 이같은 북한의 반발을 애써 외면하고있습니다.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반도의 안정을 누구보다 바라는 입장이죠. 과거처럼 한반도 전쟁발발시 북한에 대해 무기를 제공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만큼 북한에 대한 발언권은 예전보다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덩샤오핑 사후 장쩌민 체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게 외교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 체제가 어떤 노선을 가리라고 예상하는지요.덩샤오핑 사후에도 현지도체제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덩샤오핑이 10년 이상 장쩌민체제를 후원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꾸려왔어요. 현 중국정치는 1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지도자의 협의로 움직인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덩샤오핑의 사망으로 중국권력구조에 큰 동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으로서는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부각되고있습니다. 후임 중국대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한중산업협력협정의 체결이나 국가원수의 상호방문 등 양국간의 기본틀은 갖춰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 기본틀의 골격위에서양국협력관계를 세분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산업협력협정을 원자력발전 석유화학 등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문민정부 탄생에 적지 않게 기여했는데 한동안 개혁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본 김영삼 정부의 개혁정책에 관해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개혁에는 2단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을 주도하는 단계와 관리하는 단계로 나눌 수 있어요. 문민정부가 많은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음에도 국민 다수의 지지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의욕적으로 추진한 개혁의 안정적 관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대사로 재직하면서 가장 뜻깊었던 일은 무엇입니까.한중산업협력협정을 체결한 일과 리펑총리의 방한 그리고 중국을떠나올 때 중국인들의 따뜻한 환송이 인상깊습니다. 특히 요녕성성장은 밤새 기차를 타고 와 아침을 함께 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습니다.▶ 황대사께서 대사직을 사임할 때 중국지도부도 많은 아쉬움을 표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장쩌민주석이 저의 이임소식을 듣고 지난 방한중에 제주도에 저를초대, 조발백제성이란 이태백의 시를 손수 써 주었습니다. 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의 표시죠. 이임인사차 방문했을 때도 장주석이30분 이상 환담해 주었습니다. 중국 외교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죠. 장주석 이외도 많은 관료들이 저의 이임을 아쉬워했습니다.중국 고위 관료 23명이 저를 환송해 주었고 특히 박희래 대련시장은 저에게 명예시민장을 수여해 주었습니다.▶ 중국대사라는 막중한 업무를 뒤로 하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이유는무엇입니까.현 재외공관장중 저만 유일하게 정치인 출신입니다. 특임대사의 임기는 보통 3년인데 2년반 이상을 근무했기 때문에 물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번 연말에 외무부 정기인사가 있어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고위관료 학자 그리고 국회의원 중국대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있습니다. 본인의 적성에 가장 적합한 분야는 어느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요.딱히 어느 분야가 적성에 맞다고 말하기 곤란합니다. 다만 끊임없이 저를 시험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면 분야를 제한하지 않아요. 지금 저의 도전욕을 자극하는 것은 정치입니다. 국민이 신뢰하는 정치를 만들겠다는 것이 현재의 바람입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왔는데 인생의 좌우명 내지 삶을 살아가는 원칙이 있는지요.자기일에 충실하고 자기한테 이긴다는 것이 좌우명이라면 좌우명이라고 할까요. 한가지 예를 든다면 중국대사로 부임하면서 1천7백여페이지 분량의 중국어 사전을 다 외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매일3~5시간 동안 노력해서 끝내 2년만에 다 독파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외우는날 대사관 직원들이 축하해 주더군요.▶ 건강해 보입니다.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이 있습니까.내놓을만한 건강관리 비법은 없어요. 다만 줄넘기를 하루도 거르지않고 있지요. 요가도 하고 있습니다. 줄넘기를 못하는 날이 저의인생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줄넘기를 계속할 작정입니다.정리·박영암기자